17. 모국어와 외국어
해외에서 밥벌이 한지 7년째,
'와, 이게 문화차이인가, 언어가 달라서 이렇게 이해하기가 힘든가' 할 때가 왕왕 있다.
영국에서의 직장생활은 당연히 영어로 했다.
독일로 넘어와서도 이전, 그리고 현 회사에서의 의사소통은 모두 영어로 하고 있다.
차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회사에선 비즈니스적인 효율적 소통 스킬을 더 많이 요한다는 점이다.
이전과 달리 프레젠테이션 할 일도 많고 (나는 프론트앤드 개발과 product design을 겸업하고 있다) 중간 규모의 스타트업이다 보니(30명남짓의 직원 보유) 타 부서와 의견 조율해야 하는 일도 많다.
한 마디로 매일 미팅이 잡혀 있다.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쌓은 경험은 나의 인간스트레스 역치를 높이고 말하는 스킬 향상에 큰 도움을 주었다(인수인계라는 탈곡기에 털리고 나면 남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 의미는, 지금의 내가 어느 직종, 어떠한 업무 스트레스에서도 조금이나마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해외 직장생활에서 아주 유용하다.
하지만, 한국에서와 같은 방식을 200% 해외 직장생활에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국어로 대화할 때 나는 언어유희나 비유와 은유를 즐겨 쓰는 편이다(충청도 사람은 아니지만 충청도식 화법을 구사하길 좋아한다). 물론, 이런 나의 화법은 영어를 쓴다고 홀랑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외국어로 소통할 때는 많이 덜어내게 된다. 특히 업무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당연히 casual 한 구어체를 회사에서 그대로 쓸 수는 없지만 때로는 유머를 한 스푼 곁들이고 싶은 욕심이 든다. 대부분의 그런 욕심은 안 하느니만 못하는 상황을 만들 바에 입에 빗장을 걸자로 귀결된다.
아무래도 회사에선 효율을 따지게 된다. 그리고 독일 사람들은 꽤나 직설적이다. 요지의 핵심을 단번에 파고든다고나 할까. 지금 회사에 들어와서 의사소통을 잘하는 법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된다.
어느 시니어 개발자가 말하길, '회사 생활에서 시간 안에 업무를 완수하지 못하거나 해당 업무를 맡을 기술적 스킬이 부족한 것보다 치명적인 것이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이라고. '그건 진짜 답이 없다'라고 했다.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은, 설명을 잘하고, 타인의 설명을 찰떡 같이 알아듣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말을 잘하고 설명을 잘하는 사람은 듣는 이가 뇌를 덜 쓰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는 영상을 봤다. 그 말인 즉, 간결하고 명확한 정보 전달로 상대로 하여금 내 말을 이해하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들이지 않게끔 하는 것, 타인의 뇌 효율성까지 고려하는 이가 바로 말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말에 공감했다. 나 역시도 미팅에서 지리멸렬하게 늘어지는 설명을 싫어한다. 간결하고 확실한 표현을 선호한다. 그 때문에 나도 그러한 의사전달 방식을 연습하고 미팅 전엔 대력적인 bullet point를 적고, 확실한 confirm을 받으려고 한다.
내가 거의 모든 미팅에서 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Could you please confirm ~.'
'Okay, let me recap this..., is this correct?'
'To recap, here’s my understanding...'
'If I rephrase this...'
해외 생활을 해보겠다고 내 손으로 덜컥 영어를 잡은 순간에는 몰랐다. 이 공부는 내 눈에 흙이 들이 올 때까지 하게 될 공부라는 사실을.
언어는 계속해서 관심과 애정을 쏟고 쓸고 닦아 주지 않으면 금방 녹슬어 버린다.
새로운 단어나 표현을 의식적으로 내 전두엽에 입력시키지 않으면 단어들은 매번 쓰는 것들로 대체되고 표현의 범위는 한정된다(이건 모국어도 마찬가지 일테지).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소통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고 자란 땅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습득한 역사, 문화, 관습 같은 배경들을 외국인인 내가 다 이해하려고 하는 건 과한 욕심이다. 어떤 건 노력한다고 형성되지 않고 다시 태어나야 가능한 것도 있는 것이다.
예전엔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애초에 완벽하지 않는 존재로 태어났는데 완벽해지려고 하니 고통스러울 때도 많았다. 욕심이 과한 놈이었던 거다. 이제는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이 생긴 것도 같다.
소통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준비하고 저렇게 준비해도 말이 안 통할 때가 있을 수 있다.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먹냐? 하고 답답해서 가슴을 내려칠 때가 분명 있다.
그럼에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소통한다면, 언젠간 통할 거라고 생각한다.
교차점 없이 평행선으로 달리는 대화에선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결국엔 소통도 가능한 것이다. 외국어든 모국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