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불타오르네 Firrrrrrre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완전히 연소시키는 열의를 가져본 적이 언제였던가?
아니, 그런 적이 있기는 했던가?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 나름의 최선과 노력을 기울였고 그 때문에 후회나 미련이 많은 날들을 보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무언가를 위해 나를 불태워 본 적이 없는 사람이란 사실을.
갖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나를 송두리째 내던져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건 어릴 때부터였다.
부모님이 말씀하시길 나는 흔히 말해 '철이 좀 일찍 든 아이였다'라고 했다. 고집 센 동생과 달리(동생의 태몽엔 거대한 황소가 나왔다. aka 미스터 황소고집) '너는 뭐 하나 사달라고 조르는 법이 없었다'라고. 그래서 그게 '때때로 마음에 쓰였다'고도했다.
무엇이 나를 일찍 철들게 만들었을까? 이유가 뭐가 됐든 딱히 열망이 없었던 건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아니다. 열망의 유무가 아니라 그것을 누르는 것이 비슷한 것일지도.
원하는 바와 목표가 뚜렷해서 그곳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가진 것을 다 쏟아붓는 저 찬란하고 순수한 의지와 투지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나름대로 안주하기 싫다는 이유로 내 삶에 불편함을 일부러 끌어들이는 선택과 도전을 하기도 했고 계절마다 위태로운 고비의 능선을 넘으면서 의지를 불태운 적도 있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완전히 연소하지는 않았다. 나는 늘 적당히, 어느 정도로 열심히 했고 보통은 실패해도 돌아갈 곳을 정해두고 있었다.
한 번은 완전히 연소해보고 싶다. 한 번은 나를 연소시킬 무언가를 찾고 싶다.
그러면서도 '이제 와서 순수한 열정으로 무언가를 하기엔 현실적인 문제와 수지타산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동시에 한다. 가진 게 많지도 않지만 그마저도 잃을 걱정을 하면 두려움에 떠는 겁쟁이가 된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최근 코딩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이 부분을 배우고 실력을 더 갈고닦고 싶다는 욕심은 있지만 AI발전과 더불어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혹은 '이렇게 애써놨는데 한순간에 인공지능이 내 자리를 빼앗으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배부른 고민일 것이다. 험난했던 재취업의 시간을 되짚어 보면 지금 하는 생각들은 분명 자기 연민적 사고이다.
나는 연소할 무언가를 찾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 그 대상을 찾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니라 연소시키는 주체의 마음, 내 마음이 근원적 문제라는 걸 알고 있다. 결국은 나를 불태울지 말지 결정하는 건 나 자신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