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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눅히 Sep 25. 2024

전공 개발자를 쳐낸 비전공 개발자

05.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

지난날 험난한 독일 개발자 구직기를 회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래서 인턴을 했던 삼 개월, 그리고 정규직 전환으로 노동허가 비자까지 모두 해결되던 그때를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력서를 제출했던 수많은 회사 중 나를 데려가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아무래도 나의 전무한 경력이 가장 큰 문제인 듯했다. 

절망에 빠져 더 이상은 아니란 판단에 이미 귀국할 마음의 채비를 마친 내게 손을 내민 건 내 가장 가까운 지인의 지인이었다.


지인의 지인, 새삼 인맥이란 게 얼마나 중요하고 큰 영향력이 있는 것인지 깨닫게 됐다.

아무튼 그 지인은 의료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의 CEO인데 내가 경력이 없어 취직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인턴직을 제안해 왔다. 여기서 몇 달이라도 실무를 경험하고 그걸 이력서에 써보라고 말이다.

그 기회를 어떻게 놓칠 수가 있을까? 마음씨 좋은 그 지인덕에 나는 그곳의 (무보수) 인턴이 되었다. 




무보수 인턴직 첫째 주.

CEO와 팀원들과 함께 서로에 대해 그리고 업무에 대해 소개하고 소개받는 일이 이루어졌고 그런 건 단 하루면 충분했다. 그리고 쭈욱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신세였다. 아무도 내게 일을 주지 않았다.


(내가 인턴으로 소속(?)된 분야는 Frontend인데, 이 회사는 이 쪽을 외주로 돌리고 있었다.

외주라는 표현이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회사 내에서 Frontend 개발을 하지 않고 외부 다른 회사에 소속된 개발자들이 전담해서 맡는 식이었다. 나는 내부 소속이라 그 외부 회사 사람들과는 일절 왕례가 없었다.)


내게 주어진 작은 일거리도 없지만 아무렴 어때, 이건 내게 주어진 실무경험의 기회니까 일을 주든 말든 나만의 출퇴근 시간을 지키며 메신저에 늘 온라인으로 머물렀고 혼자 코드 베이스를 공부하고 연구했다.


둘째 주.

여전히 망부석이다. 

여전히 아무도 내게 일을 주지 않는다. 메신저에서 말도 걸어주지 않는다.


실무 경험의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 일을 주겠다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지금 내 위치는 그런 위치니까.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마음이라도 편안해지는 형세였다.  


결국 또 코드 베이스를 혼자 연구하고 터미널에 뜬 warning들을 살펴봤다.

그들이 개발한 전자 의무기록을 사용자처럼 이용하면서 개선하면 좋을 점들을 혼자 적어봤다.

괜히 병원에서 근무하던 때 생각이 나기도 했다. 이제는 사용자에서 개발자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말이다.


셋째 주.

유령처럼 떠도는 이 회사의 망령처럼 지내기를 3주째. 그저 메신저의 내 이름 옆에 초록색으로 활동 중이란 표시만이 내가 여기 있음을 알려줄 뿐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찾듯이 결국 CTO에게 먼저 물어봤다. 이런저런 것들을 고쳐봐도 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는 아주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그의 승인이 떨어지고, 나는 터미널에 뜬 warning들을 몇 개 제거했다. 

그렇게 나의 첫 commit이 이루어지고 MR(merge request)이 이루어졌다.


생각해 보니 첫 커밋의 긴장된 설렘이 벌써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커밋을 하지만 그날은 그 하나의 커밋을 만들고, 이름을 붙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였는지. 콩닥콩닥 하던 마음과 식은땀이 흥건했던 손바닥이 생각난다.




첫 commit 이후로 여러 번의 콩닥거리는 작은 커밋과 MR이 있었다.

나의 이런 능동적 움직임을 본 CTO가 하나둘씩 작은 업무들을 주기 시작했다.

UI/UX 팀에서도 작은 수정 거리들을 내게 주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게 업무를 주기 시작했지만 압박을 주는 일은 없었다. 이거 다 됐니?라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업무를 받고 어떻게 해서든 내가 해결해서 MR을 하면 고마워했다.

아무도 내가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해낼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날엔 향후 만들 진단 도구에 대한 회의에 참여하게 됐다.

내겐 익숙한 의학용어들이라 회의 내용 이해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임상에서 들어보고 써본 진단 기준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 이런 것도 만들면 좋겠다고 의견도 제시했다.

그때 CEO가 아주 좋아했다. 간호사 출신이 있으니까 도움이 된다며 말이다. 




대략 두 달이 넘게 그곳에서 작은 업무들을 해내면서 조금씩 일에 대한 재미도 늘어갔다.

당연히 그 기간 동안 여러 곳에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아무도 나를 채용하려 하지 않았다. 현실은 가혹하다.


그러던 어느 날 CEO가 미팅을 요청했다. 

미팅에서 CEO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을 내게 해왔는데 그건 바로, 

외주 개발자들과는 이제 안녕을 고하고 다음 달부터 나를 정식으로 채용하고 싶다는 것.


세 상 에

정말 내가 채용될 줄 몰랐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경력이 빵빵한 외주 개발자들을 제쳐두고 나를 채용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믿기지 않았지만 그게 그들의 제안이었다.

CEO와 CTO가 말하길, 그들은 내 가능성을 봤고, 간호사 출신의 개발자와 일 하는 게 그들 회사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거라고 했다. 우린 서로 윈윈이야. 라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에겐 제안과 도박 그 사이 어디쯤이었으리.


실제로, 지금까지 우린 윈윈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나는 개발자로서 매일 성장하고 있고 동료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회사 역시도 내가 처음에 입사했을 때 보다 더 성장했고 최근엔 펀딩을 아주 넉넉히 잘 받았다! 클라이언트들도 늘고 있고 말이다. 


이만하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고 잘 자리 잡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담.

나를 채용준 회사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 지지해 줬다. 혼자서는 못했을 일이다. 특히, 내 가장 가까운 지인, 짝꿍이 없었다면 이 모든 과정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그 시간들을 담는 이 글도 쓸 수  없었을 거다.


그리고 운도 따랐다. 분명하다. 운도 있다. 그렇지만 그 운이 왔을 때,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었던 건 노력해왔고 잡으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결코 타고난 머리가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노력형 인간으로 한 번 마음먹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무거운 엉덩이 자랑한다. 또 소심하고 눈치도 많이 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때면 소심을 달고서 어떻게 서든 행동하려고 한다. 


학창 시절 때도 그렇고, 대학병원에서 근무할 때도, 그리고 코딩을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도.

아마 그 근성이 내가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고 자리 잡을 수 있게 만들어 준 게 또 하나의 힘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코딩을 시작하고, 인턴직을 찾기까지 6개월. 그리고 정규직까지 3개월.

'개발자로 근무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까지 총 9개월이 걸렸다.


쉽지 않고, 만만하지 않은 여정의 시작이었고 그 여정은 부단한 노력과 함께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언젠가 나도 굴러온 돌에 의해 쉽게 빠지지 않으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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