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5번의 인터뷰
약 80통의 이력서 제출 후 연락이 온 회사 중에 인터뷰까지 진행한 회사는 총 5군데였다.
모두 영어로 진행됐고 모두 화상면접이었다.
화상면접이라도 한국식 면접을 생각한 나는 다소 프리 한 면접관(CEO와 CTO)님들을 보고 놀랐다.
다들 편안한 티셔츠 차림에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면접을 진행했고 심지어 어떤 CTO는 경적이 울리는 자유로운 야외에서 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에겐 오히려 새로 다림질한 깔끔한 셔츠를 입고 머리를 틀어 묶고서 경직된 모습의 동양 여자애를 보는 게 더 놀라웠을까?
서로 놀란 기색은 표하지 않았지만 한 면접관으로부터 이런 준비된 모습(?)에 대한 긍정적 피드백을 받은 적은 있다. 목 늘어난 티셔츠보단 반듯한 셔츠가 면접에 적절한 법이겠지.
총 5개의 인터뷰를 하면서 그중에 기억에 남는 두 명의 면접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메디컬 리서치 회사의 CEO, L 그리고 패션 회사 CTO, P에 대해서 말이다.
먼저 메디컬 리서치 회사의 CEO, L에 대해 회상해 보자면,
그는 의사였는데 본인은 환자를 다루는 임상보다 학문적 연구와 분석하는 일이 본인에게 맞는 일이라 여겨 의사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후에 data science와 analytics 관련 공부를 하면서 지금의 회사를 설립했다고도 덧붙였다. 그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어쩌면 나와 다른 듯 비슷한 길을 가는 사람인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가 인터뷰 말미에 내 구직에 대한 절박함을 꼬집었기 때문이다.
그가 인터뷰 말미에 내게 한 말은 이랬다.
"당신이 이 자리를 간절히 원한다는 걸 알겠어요. 그래서 질문할게요.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당신에게 어떤 것 같은지 그리고 그 일이 당신에게 정말 맞는 것 같은지 대답해 주세요. 그저 일자리를 찾고 싶어서 내놓는 좋은 대답은 말고요. 내 말을 며칠 생각해 보고 당신 답을 이메일로 보내줘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얼굴이 화끈해지면서 쥐구멍을 찾아 숨고 싶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일자리'가 필요한 나를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보낼 답을 며칠을 생각했지만 내가 쓸 수 있는 답은 '그저 일자리를 찾고 싶어서 내놓는 좋은 대답'이었다. 절박함이 그 무엇보다 앞선 상황에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대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았다. 그게 내 최선이었다.
추가 답변을 보낸 몇 주 뒤, 인사부로부터 L의 답변을 받았다. 나의 다음 구직기를 응원하다는 말과 함께.
패션회사 CTO, P는 기울어져가는 패션회사의 단 하나뿐인 개발자이자 CTO였다. 그는 내게 무보수 인턴직을 제안하면서 생신규 개발자인 내가 자기 옆에서 성장할 수 있게 힘껏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자신을 도와주되 다른 곳에 이력서를 넣어도 되고 그중에 좋은 자리를 찾으면 홀연히 나를 보내주겠노라라고까지 했다.
무엇보다, 그는 정말 나를 키울(?) 마음이었는지 이것저것 내게 교육적 자료와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당시엔 React의 R자도 모르는 내게 배우라며 직접 강좌까지 골라 소개해 주었다. 또, 내 이력서를 보면서 Full stack이란 말은 주니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내가 주력하는 쪽을 선택해서 주니어를 붙이라고 팁(?)도 알려주었다. 거기다가 훗날 내가 조금 성장하고 나면 본인 인맥을 토해 내게 적합한 개발자 자리가 있으면 적극 추천해 주겠다고도 했다.
(P의 피셜에 의하면, Full stack은 말 그대로 backend와 frotend를 모두 다룰 줄 안다는 건데, 그 둘을 모두 다룰 줄 안다면 이미 주니어가 아니라고 했다.)
P의 제안은 정말 솔깃했다. 일 도주고 가르쳐주기까지 한다니. 돈은 못 벌어도 나 자신에게 초기 투자라고 생각하면 좋은 기회였다.
아마도 P만 봤다면 나는 이 제안을 승낙했을 터였다. 그러나 며칠 뒤 이어진 CEO와의 면접이 정말이지 별로였다. 아니, 사실 CEO는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23살이라는 영 보스께서 약속을 잡고 두 번씩이나 인터뷰 시간에 밑도 끝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찰나에 다른 회사와 인터뷰를 보고 긍정적인 대화를 주고받던 나는 P와도 그렇게 안녕을 고했다.
여담으로 그는 알지 못하는 나와의 인연이 있는데, 우리는 이웃사촌이다. 그는 우리 집에서 두 블록 밑의 건물에 살고 있었다. 인터뷰 때까지만 해도 그와 내가 이런 인연이 있는 줄은 몰랐다. 가끔 동네 마트나 카페 주변에서 그를 마주친다. 물론,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 역시 단 한 번도 아는 채 한 적 없다.
그는 여전히 영 보스와 기울어져가던 그 패션회사의 CTO로 근무 중이다.
전반적 독일 개발자 면접 후기
거창히 내세울 후기는 단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훗날 이 글이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1. 간단한 자기소개는 필수
면접관 중에 아예 이력서를 안 본 사람도 있었다. 면접 보면서 그 사이에 이력서를 읽고 내게 궁금한 걸 물어보고 딱히 그런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다.
'아, 미안해요. 이력서는 읽어보지 않았는데 대략적인 본인 소개 좀 해주세요.'라고 이야기한 CTO도 있었다.
그러니까 짧고 간결하게 요약한 본인의 커리어와 자기소개는 필수다.
내 생각엔, 내게 짧은 소개를 요구하는 건 이력서를 보는 시간을 벌기 위함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본인 커리어에 조금 특이점이 있다면, (내 경우엔 간호사로 일하다 갑자기 이 분야에 뛰어들게 된 것) 당연히 그 부분에 대한 스토리도 미리 생각해 놓아야 한다. 100% 물어볼 테니까.
2. 달달달 외우는 면접? NOPE!
고작 5번의 면접이 다 이긴 하지만, 5번 면접 다 새로웠다. 똑같은 질문은 받은 적이 없다.(자기소개 빼고)
정형화된 틀이란 없고, 내게 이론적 지식을 묻는 사람도 단 한 명도 없었다.
암기식으로 외운 지식을 테스트하는 면접은 이 분야에서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내게 물어본 건
이거 할 줄 알아요?
이거 다뤄본 적 있어요?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해요?
이런 코딩 과제는 어떤 식으로 구현해요?
같은 실무 중심에서 내가 무엇을, 얼마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물어보는 질문이 많았다.
경험이 없는 나로선 사실 '아니, 해본 적 없어요. 들어보긴 했어요.'같은 대답이 주를 이루니 채용이 안된 거겠지..
그나마 머리 싸매고 만들어 놓은 포트폴리오용 웹사이트가 있어 몇몇 질문엔 대답할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결론은, 이론 지식 자체보다는 이론 지식 바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구체화와 그에 대한 설명 -말로 잘 풀 수 있는 능력- 준비가 필요하다.
3. 너무 간절한 마음은 숨기도록..
내 경우가 그랬다. 취직하고 싶은 너무 간절한 마음이 면접관 눈에 훤-하게 들여다 보인 케이스.
그렇다고 아주 쿨내 진동하는 면접자도 썩 달가울 것 같진 않으니, 그 중간 어디로 마음을 잘 조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