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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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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리파토스 Jun 24. 2023

구독자 82명에 대한 예의

'스치듯 안녕' 말고 걱정과 염려를 담아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사이

<잠수의 변辯>

2022년 3월, 한번 쎄게 아프기 시작하더니 1년 내내 아프다 말다를 반복했다. 긴긴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고 새 마음 새 뜻으로 사업도 다시 시작했으나, 솟구치는 열정을 부담스러워하듯 비루한 몸뚱이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3년 전 사고 후유증인가? 사고 난 지가 언제인데? 아이 낳고 애지중지 나를 돌보았기에 제대로 된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었는데, 지난 8년간 패스 한 온갖 종류의 감기가 일시불로 지급되었다. 그뿐인가? 전혀 넘어질 일 없는 곳에서 툭하면 넘어지기를 수차례. 결국은 양쪽 발목 인대가 늘어나고 양쪽 엄지발톱이 빠져나갔다. 반깁스를 하게 되었고, 운전이 불편해서 택시를 탔는데, 허허 이 그것 참. 그 택시를 다른 차가 들이받아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사업은 또 어떠한가?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지하 기지를 형성할 기세로 곤두박질쳤고, 새로 오픈한 가게는 6개월 동안 파리만 날렸다. 이쯤 되면 신의 장난이 도가 지나치다 생각되지 않겠는가?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불운을 모두 선불로 당겨 받은 것만 같았다. 암튼 지간에 당최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2022년 내내 몸도, 마음도, 통장도 주야장천 욕 나오게 아팠다.


천재 작가들은 각혈을 하면서도 글을 쓴다던데, 브런치 작가 흉내나 내는 초짜 나부랭이는 몸이 아프니 어떻게 해도 읽고 쓰는 일에 의지가 생기지 않았고, 먹고 노는 일에만 눈이 반짝거렸다.


나의 브런치도 2022년 2월 28일에 멈춰있었다. AI 브런치가 눈치도 없이 '작가님의 글을 못 본 지가 벌써 00일째라며' 수시로 뻐꾸기를 날려도 '내 너를 잊은 지 오래다'라며 바람난 사내마냥 야멸차게 고개를 돌렸드랬었다. 그런 나에게도 고작 5개월 브런치 활동으로 감사한 50명의 구독자가 있었으니, 5만 유투버가 부럽지 않은 선물이었다. 그런데 다시 찾은 브런치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1년 동안 놀랍게도 서른두 분이나 구독자가 늘어 있었다. 더러는 게으른 작가를 등지고 떠나신 분들도 있었지만, 더러는 주인장이 가출한 브런치에 찾아와 살포시 인연의 끈을 얹어두고 가신 분들도 있었다. 먼 이웃이라 생각했던 분이 진심으로 안부를 물어주기도 하셨고, 느슨하지만 강한 연대를 지향하는 가까운 문우들의 출간소식도 올라와 있었다.


나는 멈춰 있었으나 내 글은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가끔씩 브런치 앱에 빨간 알림이 떠 있으면 뭔지 모를 부채감이 느껴졌다.





쉰이 넘으면 하루하루 가는 게 아쉽다고 하던데, 나는 징글징글했던 2022년을 어서어서 가라고 등 떠밀어 작별하며 3재를 끝내는 마음으로 2023년을 기쁘게 맞았다. 신의 장난이 멈춘 건지 나의 건강이 회복돼서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차츰차츰 모든 지표가 그린라이트를 보여주고 있다. 할렐루야! (3재 운운하는 여자가 이 대목에서는 '할렐루야' 라니!)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내 안의 티끌만큼 남아 있던 작가적 욕망이 자꾸 옴싹거리며 불씨를 일으키려 한다. 여전히 생업에 치이고 늦은 육아에 멘털이 들락날락하지만, 널브러져 티브이를 보며 시시덕거리다가도 그 주제로  글이 쓰고 싶어 진다. 같이 일했던 "좋은뇬, 나쁜뇬, 이상한뇬"에 대해서도 손가락이 근질거리고, 그뇬 귀는 분명히 당나귀 귀일 거라고 막 브런치 숲에 소리치고 싶어 진다. 무지개다리 건넌 내 새끼는 강아지 별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사무치는 그리움도 절절히 흘려내려 보고, 좌충우돌 아들의 기록도 놓치지 말아야지 싶다. 한 번쯤은 '희희낙락' 살아볼 법도 한데, 무슨 놈의 인생이 이리도 노노애애(怒努哀崖)이고, 365일 산티아고 순례길이냐고 심술 고약한 신에게 막, 막 대들고 싶어 질 때면 브런치가 몹시 그립다.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나 보다.


무엇보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지난 1년 3개월 동안 글을 쓰지 않은 이유에 대한 구차한 변명인지 해명인지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다시 글을 쓰겠노라 다짐하는 이유는.


글 한편 올리지 않는 작가를 1년이 넘도록 무심히 기다려 준 82명의 구독자분들께 더 이상 무례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사실 구독자분들 입장에서는 무례를 논할 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뭐, 기다렸다기보다는 그저 처음에 구독해 놓고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세월이 흘렀을 수도 있다. 그러니 다시 조용히 글을 써서 올리면 될 것을, 굳이~~ 그동안 내 글을 기다렸을(?) 구독자들에게 그동안의 잠수에 대해 사과를 드려야 한다며 이 방정을 떠는 것은 어떤 두 분의 댓글 때문이다.


"글쓴이가 외출 중, 브런치도 외출할 땐…..."


며칠 전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브런치 앱을 열자 생각지도 못했던 신규 구독자와 생각지도 못했던 댓글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새로이 라이킷이 붙은 오래전 내 글들을 읽어 내려가며 아직도 내 글이 가끔은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놀라움도 잠시, 톱다운 구독자님의 댓글을 보는 순간 직무유기의 죄책감 비슷한 것을 느끼면서 단전에서부터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작가는 매일 쓰는 사람이라는데, 지 기분 따라서 쓰다 말다. 지 글을 읽겠다고 구독한 사람들을 뭘로 보고. 그러고도 죽기 전에 작가 한번 되고 싶네 어쩌네. 니는 자격도 없다!'


훅 들어오는 내면의 비아냥거림이 들렸다. 유료구독도 아니고 정기발행을 약속한 것도 아니지만 '글쓴이가 외출 중'이라는 표현에서 '당신은 무책임하군요'라는 구독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몇백도 아니고 몇만도 아닌 82명의 독자분들에 대한 책임감이라 하면 누군가는 비웃을 수도 있겠다. 오다가다 객이 던진 말에 뭘 또 그렇게까지 의미 부여하며 오버 떠냐 할 수도 있겠다. 허나 그 말줄임표에 담긴 꾸중 같기도 책망 같기도 비난 같기도 한 표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또 한분 JW작가님의 댓글이다.

"페리작가님, 무탈하심을 댓글로 보여 주소서. 염려&걱정하는 중입니다"


멀다면 먼 온라인 관계에서 작은 인연도 소홀히 않고 잠수 중인 문우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그것도 염려와 걱정을 담아.


뒤늦게 온라인 관계를 형성한 나로서는 트리플 A형답게 이 바닥에서도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웬만하면 '스치듯 안녕'의 관계를 지향해 온 바, 상대의 안부가 염려&걱정되어도 묻지 않고 경계를 지키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따뜻했다. 위로가 되었다. 얼굴도 사는 곳도 모르는 글친구가 나를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다.  


 꾸중의 댓글 하나와 걱정과 염려로 내 안부를 물어주는 JW작가님의 글 한 줄로 다시 나는 브런치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에게는 소중한 82라는 숫자에 이제라도 예의를 다하고 싶다. 얼마든지 그냥 한번 쓰윽 읽고 지나칠 수 도 있는 글에 번거롭게도 마우스를 옮겨 '구독' 버튼을 누르고, 또 한 번 옮겨 '라이킷' 버튼을 눌러준다는 것은 '다음에도 당신의 글을 읽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낼 터이니 힘내서 또 써 봐요'라는 응원일 터인데, 그런 귀한 응원을 받고도 1년 3개월을 먹튀 한 작가는 직무유기 맞지 않나?? 하하하. 자아비판은 여기까지!


  

주인장 부재 시에 살포시 얹어 놓고 가신 그 인연의 끈을 이제 내가 꽉 묶어봐야겠다.


"스치듯 안녕 말고, 걱정과 염려를 담아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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