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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불꽃 Jan 07. 2021

내과 의사, 홍선생님

#4. 마음을 다해 진료해 주신 내과의사 홍선생님께 감사 드리며

언택트 추석으로 마음을 나눈 지난해 가을, 본가로 내려가신 엄마가 자주 다니시던 종합 병원의 5내과 간호사, 의사선생님께 작은 마음을 담아 추석 인사를 하고 싶다며 살짝 내게 의견을 물으신다.

마침 동네 맛있는 떡집이 있어, 송편을 주문해 소량을 선물박스에 담아 엄마를 대신해 전해드리며 감사를 표했다. 금방 지어낸 따뜻한 떡을 전하고 싶어 토요일 진료마감시간 5분전, 미션을 이행하듯 12시 55분 전달 완료후 엄마께 인증샷을 보내드리니 시간을 못 맞추면 어쩌나 안절부절 하시던 엄마도 그제야 안심하시곤 고맙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그러고보니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곳으로 이사온 뒤, 동네 종합병원을 주로 다니시던 엄마에게 의사는 세 부류로 나뉘었다. 

1. 평생 은인 5내과 선생님

2. 나를 정신병자 취급한 그 미친놈

3. 꼴보기 싫은 응급실 그 인간


병명을 찾는 과정에서도 동반되었던 증상들은 소화불량, 변비 등등 각종 내과계 질환이 늘 함께했다.

엄마는 동네 종합병원의 5내과 선생님께 진료를 주기적으로 받고 계셨는데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 대장내시경에서 발견한 종양제거 등 5내과 선생님은 귀찮을법도 한데 여기저기 엄마의 아픈 이야기를 차분하게 듣고 처방을 내려 주셨다. 엄마가 호흡곤란으로 하루걸러 응급실에 갔을 때 정중히 대학병원의 신경정신과 집중 치료를 권해 주신 것도 5내과 선생님이었다. 그동안 '정신이상자'로 낙인찍히는 것 같아 신경정신과 집중 치료는 줄곧 거부해 왔던 엄마에게 용기를 주며 소견서를 써 주신 분도 바로 5내과 선생님이셨으니.. 5내과 선생님에 대한 엄마의 신뢰가 엄마의 굳은 신념을 변화 시키고 한발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것이다.


엄마는 신경성 두통으로 신경외과도 주기적으로 내원하셨는데 어느날 엄마의 잦은 응급진료 차트를 본 의사가 말했다. 

"어머니 왜 이렇게 힘들게 사세요. 차라리 시골 한적한 요양병원 같은데 가셔서 계시는게..."

아뿔싸!!!!! 시골 한적한 요양병원이라니...ㅠㅠ젠장..

이후 일어날 엄마의 심경변화가 매우 빠른 나의 회로로 진입했다. 의사의 말을 차단하고, "네~ 네~" 라며 서둘러 진료를 정리하고 나왔다.

그 다음 진료에서 못내 마음에 걸린 엄마가 의사에게 그리 이야기한것에 대해 서운함과 불편함을 표현하자, 의사는 "제가 안타까워서 그래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를 했다고 한다. 

이후 신경외과의사는 엄마에게 '나를 정신병자 취급한 미친놈'이 되었다.

  



2018년 그 해 여름,

태풍이 한바탕 쓸고 갈 것 처럼 전국민이 태풍 솔릭에 대비하며 긴장했던 한주가 가고,

오랜만에 평온한 휴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아침 일찍 아이들을 목욜시키고, 돈까스가 먹고 싶다는 말에 배달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답답해 하는 아이들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며 남은 휴일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주말 오후면, 엄마도 조용히 쉬실겸, 아이들을 데리고 종종 공원이나, 실내 놀이터로 향하곤 한다.

물론, 엄마도 같이 가시길 원하지만 공황장애에 이석증으로 어지러움이 더해져, 엄마는부쩍 활동이 더 줄었다.  


어지러워 쓰러질까 불안한 마음이 움직임을 줄이고, 이것이 곧 운동량을 줄이다 보니 변비 또한 나아지질 않고,

변비로 배가 더부룩해 지면, 속이 불편해 갑갑함이 더해지고, 이내 불안증이 또 오고, 이는 과호흡으로 이어지길 수차례...


변비가 더 심해져 변기에서 일어나시다 쓰러질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끼는 일도 빈번했다.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아이들과 책 읽기를 시작한지 10여분 쯤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다.

외출해서 걸려 오는 엄마의 번호를 확인할때면 이제 으례 '병원에 가셔야 하는구나, 편찮으시구나' 싶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걱정스러운 마음보다는 그저 무거운 마음과 또 너무나 익숙해 진 반복된 일상 탓에 덤덤하기까지 하다. 

오히려 내 감정이 무뎌지기까지 하는 것 같아 가끔은 나의 공감력에 병이 생긴것은 아닌가 싶기까지 하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덤덤해야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애써 더 태연한척, 덤덤하려 한다. 

마치 관조하듯, 그렇게 상황과 조금은 떨어져 내마음을 관리해야 무너지지 않고 오래도록 버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역시나, 엄마는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가셨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고 있으라 하고,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운전 솜씨로 핸들을 잡고 시동을 건다. 


급히 가야 하는데... 자꾸만 꼼지락 거린다.

동네 종합병원은 응급실뿐 아니라 이제 그 병원 자체로도 내게도 멀리 하고 싶은 곳이 되었다.

그저 엄마의 아픈 기억이 가득한 이 동네를 떠나고 싶은 마음일까,

당시 2년을 넘게 살고 있는데도 이 곳에 정이 생기지 않는 이유에 대해 모든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내 마음때문이라 정리 해 본다.


병원문을 들어서니 오늘은 평소와 달리 엄마의 심기가 단단히 불편하신듯 하다. 

평소에 놓아주는 안정제를 투여하는 방식이 달랐던 것, 그리고 환자가 누워있어도 의사와 간호사가 빨리 와보지 않아 관심이 없었다는 것,

혼자서 너무 자주 오다 보니, 그리고 공황장애 라는 늘 같은 병으로 특별한 검사를 요구하지 않다 보니,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사람이 들어와도 본체만체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응급실에는 엄마가 유난히도 싫어했던 의사가 2명 있었다. 

한 명은 까만 피부에 덥수룩한 머리, 삐쭉삐죽 난 턱수염, 펑퍼짐한 바지에 허벅지를 부대끼며 배를 한껏 내밀고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걸어와 검진 하는 그.

또 한명은 표정이라고는 딱 한가지, 미동 없는 굳은 얼굴로 기계처럼 환자를 대하는 그.

엄마의 성에 찰리 만무하다. 하필 이날은 엄마가 싫어한 2명의 의사선생님이 당직이었다.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마치 엄마를 벌레보듯 했다고 하니 얼마나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는지는 더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터, 


평소 외래에서는 천천히 맞는것이 좋다고 수액 안에 약을 섞어 맞는 방식이었다면, 오늘 응급실에서는 안정제를 한번에 주사 바늘에 꽂아 투여했다는 것이다. 

주사 투여방식이 평소와 다른것 같다는 환자의 말에 "원래 이 약은 이렇게 맞는 건데요. 뭘 해 드릴까요?" 라며 빈정댔다는 것이다. 


엄마가 간호사에게 불편한 마음을 내비치자 의사가 달려오더니 왜 그러냐고 한다.

엄마의 감정이 상하셨다는 것을 알기에, 

불편한 마음을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라셨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동안 여러차례 다니시면서 아무래도 병명이 같고 혼자 오시고 또 늘 처방도 같다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환자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리고, 관심을 덜 받는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 라고 말하며 나름대로 의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부디 그냥 "아~ 그러셨어요. 그렇지 않아요" 제발 이 한마디만 해 줘요!' 라는 내 마음의 텔레파시를 보내면서 말이다. 

젠장,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사는 되려 단호한 표정으로,  "친절을 바라시는데, 그럼 외래로 가세요" 라고 쏘아붙인다.

컨디션이 안 좋은건지, 때를 기다린건지, 의사는 마치 환자와 싸울 준비를 마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의 한마디 한마디에 "응급실은 위독한 사람을 우선 하는 곳이며, 이것이 상식이예요. 저도 여기서 월급 받고 일하는 직원이예요" 라는 말을 덧붙인다.

"위급 환자를 우선 하는 것이 응급실이라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예요. 환자는 누구나 본인이 가장 불편하고, 가장 힘들다고 느낄 거예요.  평소 생명을 다투는 위급한 환자가 없었을때에도 동일하게 느끼셨던 불편한 감정들이 오늘도 느껴지셨기에 이야기 하고 싶으신거예요" 라고  내가 나서보지만, 

여전히 전투적 태세를 갖춘 의사는 엄마의 감정을 살펴 줄 그 어떤 준비도, 마음도 없다는 신호만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 무엇을 더 바라리, 그냥 그의 소명이 거기까지 인 것을...


엄마의 화가 풀리시기는 커녕, 의사는 더욱 기름을 붓고 있었다. 

나 역시 화가 났지만 마음조차 없는 의사와 입씨름을 하며 휴일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는 않았기에 엄마의 증상이 호전되자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접수대 직원에게 (평소 엄마가 자주 내원하시는 것을 알기에, 늘 엄마에게 친절하고 걱정해 주는 직원이다.) 하소연을 하고서야 마음이 조금 풀어지신 듯 했다.


엄마가 그런 대우를 받는 다는 것, 누군가 나의 엄마를 그렇게 대우 했다는 것, 응급환자를 우선 돌보는 것이 응급실 의사의 사명이라면, 환자의 상태를 빨리 알아차리고 그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 또한 응급실 의사의 사명일터... 전자만 인지하고 있는 의사에게 그저 거기까지가 당신의 역량이며, 실력이라고 결론 내리고 그날의 불편한 마음을 정리하기로 한다. 설령 이런 나의 마음이 지극히 편향적일지라도 이날만큼은 전적으로 엄마편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오늘의 일을 계기 삼아서라도 엄마가 다시는 응급실에 가지 않을 만큼 불안 상황을 잘 이겨내 주길,

꼴보기 싫은 응급실 그 인간을 다시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런 오기가 생겨나길 바라는 마음을 더하며 말이다. 


썩 마음에 드는 수용은 아니지만 엄마 또한 어느 정도 상황을 받아들여 주시길 바랄 뿐이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고,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란 없다는 것, 누구나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것, 

그들 또한 직업인이기 이전에 사람이기에 충분히 개인의 감정을 어필 할 수 있다는 점.


삶이란 그렇게 인정하고, 수용하면 그닥 내 마음이 불편할 일이 훨씬 줄어들 텐데 말이다.

오늘의 경험이 과연 엄마에게 그런 변화를 가져다 주긴 할까 싶지만서도, 그래도 오기로라도 버텨나갈 힘은 최소한 주셨길 바라는 마음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겆이를 하며 '좀 더 엄마에게 따뜻한 딸이 되어 줄걸, 그런 딸이 되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씻은 그릇을 자꾸만 헹구어 낸다.

고단한 하루가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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