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이가 선물이라며 해맑은 얼굴을하고서 엄마에게 자신이 아끼던 왕애벌레를 줍니다. 그 애벌레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가 너무 좋아하는 곤충의 유충입니다. 유충 중에서도 가장 큰 녀석을 골라 엄마에게 선물한 아이의 마음은 참 기특하고 고맙습니다. 잘 돌봐야 한다는 신신당부를 하며 아쉬운지 계속 유충을 쳐다봅니다.
반면 제 마음은 아이가 소중한 것을 선물해 줘서 고맙지만 사실 너무 징그럽습니다. 작은 건 귀엽 기라도 하지, 손바닥만 한 애벌레는 조금 무섭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없기에 일단 고맙다고 잘 받아놓았습니다.
때론 선물을 받아도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차라리 선물을 받지 않는 것이 더 좋을뻔했다는 생각이 들만큼이요. 상대방이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을 선물로 주면 너무 좋겠지만 많이 친한사이가 아니라면 선물 고르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됩니다. 잘 고른 선물은 상대와 더 가까워질 수도 있지만 예상과는다르게 상대에게 불편한 마음을 줄 수도 있습니다.(아이가 준 유충처럼요.)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다보니 물건과 옷에 대한 취향이 뚜렷해졌습니다. 미니멀리스트에서 선물은 감사한 반면 가끔 어려울 때가 생깁니다. 예쁜 옷을 선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참 예뻤습니다. 분명 나를 생각하며 골라준 마음이 너무 고맙고 소중한 반면, 무채색을 즐겨 입는 내 취향에는 아쉽게도 잘맞지않았지요. 그친구의 성의를 생각하면고맙고 소중해서 그 옷을 옷장에 잘 걸어두었습니다. '언젠가는 입겠지'라고 생각하며 고이 모셔두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듯합니다. 역시 취향의 옷이 아닌 옷은 손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 선물한 옷이 고맙다는 표현을 하기위해 마음먹고 입어보았는데 역시나 자주 입던 색이 아니라 그런지 불편하고 불안했습니다. 옷과 함께 매칭할 옷도 신발도 고르기 어려웠을뿐더러 이 옷을 입고 나가면 하루종일 옷을 신경 쓰느라 불편할 것 같았지요.고민을 하다가 결국 옷을 바꿔 입었습니다.그 친구에게도 선물 받은 옷을 잘 입고 있다는 표현을 못해서 그런지 마음속으로 괜히 미안함이 생겼습니다. 정리를 하면 친구가 서운해할까 봐 비우지도 못하고 입고 나가기엔 내가 불편하고 그랬던기억이 납니다. 그 옷은 결국 비웠지만 친구의 마음은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결국 선물은 물건 자체가 아니라 마음이니까요. 그 친구도 오히려 제가 고민하는 사실을 안다면 미안해할 수도 있으니 감사인사는 꼭 하고 그 물건은 빛을 나게해주는 새주인을 찾아줍니다(선물 준 사람은 최대한 모르게합니다. 가끔은 진실을 묻어두는 것도... )
취향에 맞지 않는 선물을 받아보니 선물이 상대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정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심지어 돈은 선물이 될 수 없고 성의 없는 선물이라며 생각했던 저에게 큰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돈도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다는것을요.
그동안 준 선물들을 곰곰이생각해 보니 상대에게 큰 부담을 될 만한 것들을 많이 안겨준것같아 미안해집니다.
내가 잘 쓰는 화장품도 상대방의 피부에는 맞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는 상대방의 취향이 아닐 수 도 있습니다. 내가 잘 쓰는 물건들이 상대방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물건일 수 있습니다.내 취향은 상대방의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선물은 상대방의 취향을 고려해야만 감동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그래서 요즘 지인들에게 선물을 해야 할 때는 내 취향은 과감하게 넣어두고 최대한 호불호가 없는 선물을 찾습니다. 만약 상대의 취향을 전혀 파악할 수없다면 슬쩍 물어보는 방법도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할 때 이 말을 덧붙입니다. 혹시 안 쓰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위에 필요할 것 같은 지인에게 다시 선물해도 좋아 라고요. 사실 이 이야기는 제가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선물을 받고 취향이 아닐 때 이것을 내가 사용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재선물을 한다면 선물을 준 상대방이 서운해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쉽지 처리하지 못하게 될 때가 많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말을 듣는다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부담이 줄어들고 나를 배려해준다는 생각에 기분도 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선물은 또 다른 의미로 상대방을 고려한 '관심'입니다. 혹시 상대방의 취향을 파악하기 어렵다면 직접 고르게 하거나 그마저도 어렵다면 봉투에 마음을 담아보는 것은어떨까요?
전 참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선물을 받는 자세는 '너무 좋아, 너무 감사해, 너무 고마워, 어떻게 이런 선물을?감동이야' 최대한 받을 수 있는 만큼의 감동은 다 받습니다. 선물은 그 물건자체가 아니니까요. 상대방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잘 사용하거나, 잘 처리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