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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멀리스트 귀선 Jun 21. 2024

헬스장에서 엿들은 진부한 이야기

역시 건강이 최고야

동네 헬스장은 언제나 북적북적하다. 각종 이야기들로 말이다.

특히나 사람이 많은 날에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되는 이야기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미칠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들도(예를들면 부부싸움 이야기같은) 들려온다. 평소에는 이어폰을 끼고 혼자만의 공간인 듯 운동을 시작하지만 그날따라 헬스장 안의 활기가 가득한 사람들의 소리가 듣고 싶어서  가방 안에 이어폰을 두고 나왔다. 구석에 서서 한참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꽤 흥미로운 대화가 들려왔다.


-할머님은 젊어지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꽤 빠른 속도로 자전거를 열심히 타는 중년의 어머님이 속도는 느리지만 꽤 열심히 자전거 바퀴를 굴리고 계신 할머님께 질문을 했다. 그 순간 내 짧은 스트레칭은 끝났지만 할머니의 대답이 너무 듣고 싶었다. 할머니는 뭐라고 대답하실까? 무엇이 하고 싶으실까?  그 대답이 너무 궁금해서 다시 스트레칭을 하는 척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그쪽으로 조금 더 다가갔다.


-젊어지면? 건강할 때 건강을 더 잘 챙겨야지!

(내가 보기엔 할머니는 건강을 열심히 챙기신 듯했다. 지금도 매일 헬스장을 나와서 열심히 운동하시는 것을 미루어보아)


건강? 물론 중요하다. 모든 것을 이루어도 건강을 잃으면 필요 없어질 만큼 중요하지. 그런데 할머니의 대답을 듣는 순간 나의 작은 흥미는 사라졌다. 그런데 그날따라 운동하는 내내 곱씹게 되는 대답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대답에서 무엇을 바랐던 걸까?


-젊었을 때 내 사업을 좀 더 확장시켜야 했어.

-더 좋은 집을 사놨어야 했는데 말이야.

-몸매 관리를 좀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다네.

-새벽기상을 하고 열심히 살아야지.

-친구를 많이 사귈 거라네.

-맛있는 빵을 더 많이 먹고 싶다네.

-예쁜 옷을 입고 화장도 잘하고 싶네.

라는 대답을 하길 원했을까?


건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참 진부하다. 누구나 받아들일 만큼 그것은 당연한 거고 머릿속으로도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오늘 대화는 더 이상 내게 진부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은 비단 건강이 최고라는 이야기뿐만이 아닐 것이다. 세상에 많은 진부한 진리들이 존재하지만 그 이야기들에 쉽게 공감하는 한편 쉽게 와닿지 않을 때가 있다. 그냥 당연한 이야기니까.


체육과 학생들과 견주어도 자부심이 넘쳤던 내 체력이 요즘 바닥나고 있다.  잠을 자도 자도 피곤하고 커피를 마셔도 졸린다. 식습관도 엉망이 되고 면역력이 떨어진 것인지 안 나던 뾰루지도 생겨 속상하던 때였다. 그래서인지 건강을 좀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말은 더 이상 진부하지 않았다.


80년 인생을 (사실 할머님의 정확한 나이는 잘 모르지만) 잘 살아오신 할머니께 들은 소중한 이야기를 새기며  만약 훗날 누군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해온다면?

-귀선할머니~ 할머니는 젊어지면 뭐 할 거예요?

과연 훗날 귀선 할머니는 뭐라고 대답할까?


새벽기상을 열심히 하면서 갓생을 살아야지!

멋진 몸매를 위해 살을 좀 더 빼야지!

열심히 내 사업확장 해야지!

책을 더 많이 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야지!

감성 가득한 영상을 더 열심히 찍어서 유명한 유튜버가 될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아닐 것 같다. 나 또한 진부한 이야기를 늘어놓겠지.

매 순간이 기적이니 행복하게 지내야지.

나를 더 잘 챙겨야지.

아무리 바빠도 운동을 포기하지 않아야지.

산책을 많이 하고 과식을 하지 않아야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야지.

너무 많은 말은 하지 않고 많이 들어줘야지.

하지만 내가 힘들 만큼 너무 애쓰지는 말아야지.

너무 참지도 않고 후회하지 말고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야지.

세상의 소리보다는 내 안의 소리에 집중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 기준을 세워야지.


여러 가지 대답의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내가 미니멀리스트는 되길 참 잘했지.라고 이야기할 것 같다.


요즘 헬스장 할머님 덕분에 내가 80세가 되는 상상을 자주 한다. 나는 자책을 자주 하는 편인데 계획은 잘 세우지 않지만 가끔 세우는 계획 중에서 못 지키는 날이 있다. 예를 들어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피아노를 연습해야지 계획하고 다음날 새벽기상을 못한다던지 다이어트하다가 빵의 유혹에 못 이겨 먹었을 때  이렇게 생각한다. 귀선아, 네가 80세가. 되었는데 귀선할머니 무엇을 후회할 거 같아요?라고 질문을 받는다면 그날 내가 다이어트 중에 빵을 먹지 말았어야 했네, 새벽에 일어나서 피아노를 연습해야 했네와 같은 이야기를 꺼낼까? 물론 아니겠지. 대신에 이미 지난 후회는 훌훌 털어버리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잘 살면 된다. 빨리 잊자는 말이다. 80세가 되면 분명 아무렇지도 않을 괜찮을 일들을 오래 갖고있지 말자는 것이다. 후회를 하는 것만큼 아까운 시간을 보내는 일이 없다. 틀어진 계획과 그 이유만 알면 그 잘못을 발판 삼아 다시 해보면 되지 뭐.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도 아까운 이 시간에 지난 일을 후회하는 건 너무 안타깝고 아쉽다.

내 꿈은 80세가 되어서 후회를 덜하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이상 헬스장에서 엿들은 진부하지만 더 이상 진부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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