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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nne Nov 05. 2024

뉴스는 안 봐도 이 이야기 한 번 읽어볼래?

[유진과 유진]-이금이 작가


아이들이 호르몬에 휘청 휘청대는 시기 ‘사춘기’

부모들은 이미 다 지나왔지만 사실 기억이 희미하기도 한 그 ‘사춘기’

휘몰아치는 격정적인 시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소설이 있다.

그리고 부모라는 타이틀을 손에 거머쥔 당신이라면 꼭 읽어줬으면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바로 이금이 작가님의 [유진과 유진]이다.


이 책에는 제목처럼 두 명의 유진이가 나온다. 키가 큰 유진이와 키가 작은 유진이. 둘은 유치원 동창이었는데 헤어졌다가 운명처럼 고등학교 때 작은 유진이가 큰 유진이의 반으로 전학을 왔다. 신은 평등한 걸까? 성적은 키 큰 것과는 정 반대였다. 작은 유진이는 전교 1등, 그렇다면 큰 유진이는? 이미 알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우리네와 같다.


이 소설은 어린이 성폭행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분명 두 유진 어린이는 같은 유치원을 다녔는데 작은 유진이는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두 아이 모두 유치원 원장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었는데 작은 유진이는 그조차도 알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같은 아이가 아닌가 보다 했지만 작은 유진이가 점점 마음속 깊은 곳에 지워져 있는 척 잠재워있던 기억들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래, 공부 좀 못하면 어떠니. 건강이 최고지.”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인식이 충동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이라는 점이다. 나는 어른들이 일상에서도 그 사실을 까먹지 않으면 좋겠다. 종교를 떠나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구절을 어른, 특히 부모들이 지켜야 할 제1 수칙으로 삼기를 바란다. 장담하건대 그러면 청소년 문제가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어린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을 왜 어른들이 모르는지 모르겠다. - [유진과 유진] 이금이 작가

공부는 못하지만 밝고 긍정적이고 말 한번 똑 부러지게 하는 아이로 자란 큰 유진이에 반해 작은 유진이는 공부는 전교 1등이지만 부모님이 특히 엄마가 새엄마라고 느껴질 정도로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큰 유진이의 절친 소라까지 등장, 그리고 이내 큰 유진이의 첫사랑이었던 건우까지 마치 비엔나 소세지처럼 이야기가 줄줄이 엮어진다.


“느이 식구들은 니가 영영 잊어버리길 바랐지만 내 생각은 달렀어. 늙어서 노망난 것도 아닌데 파릇파릇하니 자라는 것이 지가 겪은 일을 기억 못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니냐. 다 알고, 그러고선 이겨 내야지. 나무의 옹이가 뭐겄어? 몸뚱이에 난 생채기가 아문 흉터여. 그런 옹이를 가슴에 안고 사는 한이 있어도 다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 중략

“유진아, 기억난다고 해서 지난 일 때문에 괴로워할 거 없어. 안 일어났으면 좋았겄지만, 기왕 치른 일이니 그저 나한테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지, 마음먹고 지금처럼 하면 돼. 알겄지?”
외할머니가 내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더 조심하래요?”
나는 할머니에게 쏘아붙였다. - [유진과 유진] 이금이 작가


하지만 기억이 돌아오고 있는 작은 유진이가 외할머니에게 사건의 전말을 은근슬쩍 물어보면서 오고 간 대화 내용 중 작은 유진이의 잘못이 없는데 왜 더 조심하라고 당부하는지 할머니에게 따져 묻는 그녀의 마음에 나는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중.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위로받았다.


살다 보니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약자(어린이, 여성, 노약자, 장애인 등)라는 이유로 조심을 강요받을 때가 많았었다. 당연한 듯 벌어졌던 학교 선생님들의 체벌, 엄마 아빠의 체벌 그리고 직장을 다니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


지금은 알고 있다. 내가 잘못한 일도 있지만 내 잘못이 아닌 일도 상당히 많다는 걸. 그리고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마치 그 일들이 나 때문에 벌어진 일처럼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내가 억울하게 학교 선생님에게 맞았던 시절, 내가 맞은 일 따위는 열 손가락 순위에 들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체벌이 난무할 때였다. 고무장갑 낀 손을 내 등짝과 머릿통을 향해 수시로 치켜들었던 우리 엄마도 그때 왜 때렸는지 잘 모르겠다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물론 내가 혼날 짓을 했겠지만 그때는 다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나 보다 했다는 말에 지금도 헛웃음이 나온다.


가진 색깔이 다른 아이들만큼이나 부모들이 가진 색깔도 달랐다.

유치원 원장 성폭행 피해 사실이 밝혀졌을 때 큰 유진이 엄마 아빠는 아이부터 끌어안았다. 동생이고 더군다나 아들이어서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동생 때문에 늘 사랑이 배고팠는데 이때만큼은 넘치는 사랑을 받아? 아니 느껴서 아주 특별하게 좋은 기억으로 생각날 정도라고 했다. 한편 작은 유진이는 그렇지 않았다. 마땅히 받아야 할 위로와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옳고 그름을 따지기는 힘들었다. 지금의 나는 청소년 기를 지나 성인이 되었고 어느새 책 속에 등장하는 부모를 마주하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아픈 아이들의 마음과 그와는 조금 다르게 또 아픈 부모들의 마음에 읽는 중간마다 울분이 올라오기도, 두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함께 엉엉 울어주고 싶기도 했으니까. 큰 유진이를 부둥켜안고 울며 맞서 싸운 부모와 나약해서 자신들은커녕 아이조차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작은 유진이의 부모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우리에게 멀리 있는 모습들이 아니다. 아니 지금 부모가 된 너와 나의 모습이다.


나는 들숨 날숨이 모두 긴 한숨처럼 들리는 엄마의 가슴 위에 조심스레 손을 올려놓았다. 망설이다 만진 젖가슴은 작고 물컹했다. 유선과 유미가 엄마 품에 안겨 젖 먹는 모습을 얼마나 부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던가. 하지만 나 역시 그 애들처럼 이 젖에 매달려 엄마의 사랑을 파먹었을 것이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나도 분명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는 작은 아기였을 것이다.
- [유진과 유진] 이금이 작가


평생 알아왔던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조금은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가는 시기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그것은 사춘기 일수도 있고, 가족이 분할되거나 또는 합쳐지거나 하는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부모’가 이래야 한다는 정의는 없지만 적어도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바램은 품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 않을까?


큰 유진이와 작은 유진이 그리고 소라는 호르몬이 미쳐 폭발하는 불구덩이 속에서도 서로를 바라보며 인생을 배워나갈 것이다. 비록 상처를 보듬어주지 못하는 부모였지만 분명 자신도 사랑을 받았던 아기라는 것을 다시금 기억해 내는 작은 유진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이들은 배운다. 어떤 상황에서도 배운다. 좋은 경험으로도, 때로는 좋지 않은 경험으로도 아이는 배우며 성장한다. 나도 그렇게 성장했고, 내 아이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100점 만점을 받을 수 있는 부모가 존재하기나 할까? 아이들마다 가진 색도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다를 텐데. 부모가 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줄 순 없다. 하지만 부모라는 울타리 안에 아이가 살고 있을 때 꼭 알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네 잘못이 아닌 일도 있다고. 세상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고. 그러니 이 울타리 안에서는 마음껏 울라고. 괜찮다고.


‘네 잘못이 아니야.’

‘네 탓이 아니야.’

‘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먹 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 [유진과 유진] 이금이 작가


큰 유진이 마음을 두근두근하게 만들었던 첫사랑 건우에게서 자기 엄마가 유치원 때 있었던 일 때문에 만나는 것을 반대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만 같았다. 큰 유진이 엄마가 분노로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에 마치 내 주먹이 떨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도 함께 울어 주는 엄마가 되겠노라고. 판단하고 비판하기보다 함께 부둥켜안고 울어주겠노라고.


언젠가 이꽃님 작가가 이런 말을 했었다.

‘아이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것들을 책에 씁니다. 뉴스는 안봐도 이야기는 보니까요.’


이게 바로 어른인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아이들이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바르게 판단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일. 그런 일을 멋지게 해내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책을 읽는 내내 마음속에 꼭꼭 새겨보았다.


엄마는 내가 건우 때문에 상처받고 그 충격으로 가출을 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엄마 아빠가 턱없이 관대한 이유도 짐작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관대함의 의미가 퇴색하지는 않았다. 내 마음이 수시로 변하는 것처럼 어른들도 그럴 것이다. 때로는 오늘처럼 구름이 하늘을 가리더라도 그 속엔 언제나 환히 빛나는 태양이 있음을 의심치 않듯이 엄마 아빠 가슴속에 있는 나에 대한 사랑을 믿기 때문이다. 느끼기 때문이다. - [유진과 유진] 이금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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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YES24,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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