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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초록 Sep 01. 2023

#독일. 스스로의 만행을 기록하는 용기

홀로코스트 추모비, 공포의 지형학, 브란덴부르크 문을 걷다


“얼마나 처절했을까.”

- 이순재 배우, 꽃보다 할배에서



한국과 독일은 이상하게 연결되어 있다. 비슷한 점이 많은데, 직접 연관된 적은 없는 묘한 평행선의 국가들이랄까.


학살과 분단. 한국인으로서 베를린에서 가야만 했던 장소들이 있다. 유대인 학살을 반성하는 홀로코스트 추모비, 학살 과정을 설명한 전시관 공포의 지형학, 분단의 상징에서 통일의 상징이 된 브란덴부르크 문이 그러하다.


갈 때만 하더라도 큰 의미를 갖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둘러보는 게 아쉬워 유튜브로 설명 영상을 들으며 걷기로 했을 뿐이다.





*홀로코스트: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유대인 및 사회 소수자를 학살한 사건 (1941-45)


홀로코스트가 여느 학살보다 소름 돋는 이유는 광기나 야만 대신, 철저한 ‘경제적 계산과 이성’에 의해 일어난 인종 집단살인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사회경제가 불안정했던 상황에서 대부분의 상위 경제 관련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은 히틀러의 작업 대상이 되었다.


강제 노역으로 시작해 쌍둥이를 꿰매는 인체 실험까지, ‘유대인은 열등하다’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허용한 6백만 명의 죽음은 베를린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역에서 내려 유대인 추모 공간으로 유명하다는 공원에 가는 길. 유대인 학살이 일어나게 된 과정을 에어팟으로 듣지 않았다면 이 홀로코스트 추모비는 칙칙한 콘크리트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했을 것이다.


독일의 끔찍한 자행을 들으며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렸다. 축축해진 바닥을 밟으며 2,711개의 기념비 사이를 걸었다.


높낮이는 다양하지만 상하좌우 일렬로, 스도쿠 표처럼 세워져 있던 비들. 깊숙이 들어가면 보이는 것은 답답한 콘크리트와 구름 낀 하늘뿐이었다.



글자 대신 콘크리트가 빽빽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역사를 추모했다. 유난히 말이 없는 일행, 대화를 주고받으며 콘크리트를 손으로 쓸어보는 일행. 낮은 비 위에 앉아 역사를 설명하는 가이드도, 기차놀이 자세로 아이들을 한 줄로 인솔하는 교사도 보았다.


찾기 쉽도록 도시 한가운데에 만들어져 있음에 감사하며 나도 기도를 올렸다.






그렇다면 나치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저지른 걸까?

힘든 줄도 모른 채 베를린 장벽이 있는 위치로 걸었다. 나치의 만행이 적힌 전시관에 가기 위해서다.



공포의 지형학. 놀랍게도 전시관 이름이다. (이름 한 번 무섭게 잘 지었네..) 이전에는 대부분의 나치 범죄가 계획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실외와 실내로 나뉘는데, 폐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실내부터 들어갔다.


햇빛이 잘 드는데도 왠지 차가운 느낌을 주는 공간이 나를 맞았다. 입장료도 무료인 이 전시는 주황색 스티커로 어디서부터 내용을 짚어봐야 할지 표시되어 있었다. 독일의 당시 정치적 상황, 히틀러의 첫 집권, 나치가 행한 유대인 차별의 흔적이 다 읽기 힘들 만큼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히틀러의 정책만큼이나 무서웠던 것은 독일 국민의 무지성 수용적 태도를 발견했을 때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학살을 가능케 했던 것은 그들의 무한한 지지였다.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들은 ‘애국심’이라는 안경에 가려져 옳은 일로 여겨졌다.



혐오감을 자아내는 충격과 별개로 긍정적인 충격을 받기도 했다. 바로 ‘가해자에 대한 묘사’다. 공포의 지형학은 ‘독일’이라는 소속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자국의 가해 행위를 육하원칙으로 담담히 묘사했다. 가해자들의 사진을 일일이 오려낸 뒤, 이름과 행위를 꼼꼼히 라벨링해놓았다.


특히 거대한 벽을 가득 채운 인덱스 카드 전시는 잊을 수 없다. 강제 수용소와 학살 수용소를 운영한 SS 요원들의 인적사항이 각 인덱스 카드에 적혀 있었고, 높은 등급일수록 강렬한 색깔과 입체적인 높이로 표시해 둔 벽. ‘까발린다’라는 표현이 떠올랐던 공간이었다.







그렇게 외부에 상처를 준 독일은 내부적으로도 곪아 있었다. 40년간 지속된 동독과 서독의 분단이다.


홀로코스트 추모비에서 머지않은 곳에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어 보러 갔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기준으로 동쪽은 동독으로, 서쪽은 서독으로 나뉘었었다. 공산주의였던 동독에서 탈출하려는 탈동자들 때문에 생긴 것이 베를린 장벽이고. (역사만 알면 이해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성전 같은 문 위에 올려진, 승리의 여신이 말을 끄는 동상을 콰드리가라고 한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나폴레옹이 뺏어갔던 이 동상부터 되찾아올 정도로 독일인에게 자부심 있는 상징이었던 콰드리가. 통일 이전에는 아픔의 흔적이었던 콰드리가를 보며 상징이란 참 가변적인 거구나 생각했다.



브란덴부르크 문이 40여 년 만에 다시 개방되는 걸 바라봤던 10만 명 시민의 기분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왼쪽 첫 번째 문을 통과하던 발걸음에 괜히 힘이 들어갔다.    






베를린 = 베를린 장벽

이지만 따로 이야기를 빼지 않은 것은 장벽이 한 공간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에 장벽이 있었던 라인을 따라 걸으면 공포의 지형학 외에도 체크포인트 찰리, 장벽 기념관 등 역사의 중추 공간들을 만나볼 수 있다. 중간중간 고즈넉한 향수 가게나 시민들이 사는 아파트도 나오니, 쭉 따라 걸어보기를 권장한다!






한 뉴스에서 추모비를 찾은 관광객 총 6명에게 해당 공간이 유대인들을 존중한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


탈주자들이 성벽을 넘지 못하도록 전기와 총으로 쏘아 죽이던 당시 정부를 비판하는 벽화들 역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독일은 그런 점이 놀라운 나라다. 인류애를 상실하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스스로 죄를 낱낱이 고함으로써 세계의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고 있다.


학살과 냉전의 아픔을 가해 당사자에게서 듣는 경험은 한국인에게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각자의 주장이 난무하던 환경에서 자라다, 군더더기 없는 독일의 태도는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진정한 사과는 비굴이 아닌 비약으로 이어짐을 증명한 독일. 정면으로 사과하는 방법을 아는 베를린의 역사 장소들은 칙칙한 회색이 아니라 반짝이는 은색으로 느껴졌다.






42일간의 유럽 여행을 기록합니다.

5개국 11개 도시의 여름을 다이어리에 담아왔어요.


독일, 프랑스, 체코,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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