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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Feb 07. 2024

그것이 인생이다

c'est la vie

오늘은 아침부터 마음과는 다른 일들이 펼쳐지는 하루였다.


아침 일찍부터 영어 수업이 있었고, 수업이 가장 많은 날이었다. 게다가 통계학 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눈을 뜨자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월요병보다 무서운 시험병이라고나 할까.


하필 이런 날, 남편도 없다. 평소에는 남편이 아이들의 등교를 맡아주곤 했지만 오늘은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이런 와중에 딸내미는 피곤한 모양인지 아침부터 징징이다. 겨우 아이들 챙겨 학교에 들여보내고 황급히 달려간 지하철역, 그러나 환승을 하려 할 때 또 다른 어려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철 고장으로 지연,

30분을 사람들 속에서 기다린 후에야 비로소 전철에 발을 디딜 수 있었지만,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사람들이 서로를 밀고 또 밀며 온통 짜증스러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지각,

어렵게 도착한 영어 수업에서 반자리가 보이는 대로 앉았는데, 그게 옆에 앉은 학생을 불편하게 한 모양이다. 아마 같이 앉으려던 친구가 있었는지 벌떡 일어나 다른 책상으로 간다.


아침부터 피곤함이 극에 달한다.

하루를 견딜 인내심의 반을 이미 다 쓴 느낌이다.


이렇게 힘겨운 하루를,

이 힘겨운 사투를 누가 알까.

그리고 이 모든 건 언제 끝날까.





터덜터덜 캠퍼스를 거닐다 나도 모르게

툭 내뱉은 말

"c'est la vie."

이게 인생이지!


문제를 만날 때면 프랑스 사람들은

이 말부터 내뱉고 보던데,  

지겹도게도 들은 그 한 마디가

그렇게 입 밖으로 흘러나오고 나자

갑자기 묘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모든 게 뒤엉킨 것 같고 무겁게 느껴지던 하루가

그저 흘러가는 삶의 한 순간,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는 인생의 한 단면이라

생각하니 그 무게가 갑자기 훅 줄어드는 것 같다.



그랬다.

내가 그토록 문제라 여겼던 그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그저 인생이었나 보다.


그리고 모두들

크고 작은 문제들로 가득 찬 인생의 순간들을

나름대로 견디며

나름대로 애쓰며

나름대로 해석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c'est la vie.

이게 인생이다.


모든 게 다 제대로 굴러가기를,

그래서 조금 더 편하고, 조금 더 뿌듯하고,

조금 더 잘 해내고

조금 더 친절할 수 있길 바라던 욕심을,


살포시 내려놓는다.


그래, 이만하면 잘 살고 있다.



오늘도 이 하루 동안,

몰아치는 문제들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이게 뭐냐 원망하지 않고

담담히 나만의 걸음을 걸었던 나에게,

그 하루의 무게를 온전히 견디고도

이게 인생이라

받아들였던 나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소심하고도 수줍은 응원을 보낸다.

이만하면 잘 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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