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세 원로학자'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7일 '질서국가'에 속하는 선진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는 좌·우가 진보·보수로 발전하지 못한 채 '법치국가' 단계에 30년째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권의 '이중성'이 촉발한 '내로남불식 정의'의 습관화에서 벗어나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인간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자유민주주의적 정의관'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친윤(親윤석열)계 주축 공부모임인 '국민공감' 첫 모임에서 '정치가 철학에 묻는다-자유민주주의의 길'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진보와 보수가) 공존할 수 있겠는가" "열린 사회, 다원사회를 위해 어떻게 이끌어갈 수 있겠는가" 등을 화두로 던졌다.
1920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나 평안남도 대동군 송산리에서 자란 김 교수는 "학생들이 '북한에 계시지 않고 왜 (남한으로) 왔느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저는 '북한이 잘못돼 가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돼 가는 국가'에서는 국민들 생활에서 ▲진실과 정직 ▲정의 관념 ▲인간애(humanism) 순으로 없어진다며 "공산당에서 하는 건 정의, 거기서 어긋나는 건 불의가 돼 정의가 없어진다" "인간애가 없어진 사회는 없는 편이 낫다" "그래서 유엔이나 선진국가가 북한 동포를 구출해야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가 ▶독재국가·군사정권 등 권력정부가 이끄는 '권력국가' ▶'법치국가'▶도덕과 윤리가 발달해 국민이 자율적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선진국가인 '질서국가' 순으로 이어지는 국가 발전단계 중 '법치국가' 단계까지 성장했지만 "앞으로 20년간 (질서국가로 도약할) 희망이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좌우로 나누던 냉전시대는 끝났다. 자리 잡힌 국가 안에는 좌우가 진보와 보수로서 공존한다. 그런데 우리는 남북관계와 대중관계 때문에 늦어지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연장돼왔다"며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의 노예'로 과거에 사로잡혀 있고, 보수는 '열린 보수'가 되지 못하고 '반공'을 내세우는 '폐쇄적인 보수'가 장악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우리 민족이 지금과 같이 분열될 때는 없었다. 통합이 가능하겠는가 싶을 정도로 분열됐다"며 김영삼 전 대통령 때는 질서가 유지됐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때 북한과 교류하며 공산당 조직이 들어왔고 국내 자생 좌파조직이 모습을 드러내 혼란이 발생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사회 분열이 심화했고 이를 계승한 게 문재인 정권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나타난 '대학 운동권의 잔재'가 성장해 정권을 차지해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지 못하고 좌우로 갈라졌다고 꼬집었다.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는 '국민통합'을 강조했지만 '운동권 청와대'를 운영하며 '적폐청산'을 추진한 점 ▲동포와의 통일이 아닌 '김정은 정권과의 통일'을 추진한 점 등의 '이중성'을 '극한 분열'의 원인으로 꼽으며 "정부와 국민 간, 여야 간, 심지어 한 정당 안에서도 '진실'과 '정직'이 없어진 것이 이중성이 남겨놓은 '차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법치질서가 질서국가로 변하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건 '국민 가치관'이다. 국민들은 지난 5년 동안 정부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해석하게 됐다. 그게 습관화돼서 야당은 여당의 얘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내로남불'이라는 개념이 사전에 남게 됐다. 지난 5년간의 제일 큰 불행은 '내가 하면 정의, 상대방이 하면 불의'가 상식화됐다고 말할 정도가 된 것이다. 이렇게 살다 보면 '내로남불'이 습관화되고 생활개념이 되면, 정의가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지면 희망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법치국가의 핵심은 정의의 가치다. 정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정치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며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책임'인 '인간에 대한 책임'을 의미하는 '자유민주주의적 정의관', 진실을 가지고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을 찾는 자유민주주의, 그 방법론으로서의 영국 '의회민주주의'와 미국 '실용주의(pragmatism)'를 강조했다.
그는 "세계 역사의 방향은 자유민주주의로 갈 수밖에 없는데, '좌우가 보수와 진보로 발전했고, 보수와 진보가 개방사회로 한 단계 더 올라가야 한다'는 하나의 약속이 있다. 우리가 선진국가로 가려면 개방사회가 돼야 한다. 이걸 역행하면 폐쇄사회가 된다"며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은 '대화'다. 민주주의는 투쟁과 혁명이 아닌 대화를 통해 개선한다. 대화하지 않고 투쟁부터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주체사상처럼 냉전시대에는 유일한 가치만이 있었다. 그러나 절대가치는 없다. 상대가치만이 있다. 이제 전 세계가 다원화한다. 종교, 민족, 직업이 달라도 공존할 수 있다"며 "공존하는 사회가 성장하려면 '정신적 자유'가 있어야 한다. 질서를 무시하는 자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교도소가 필요 없는 사회'로 갈 때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진로다. 그 길을 택한 나라가 미국이고 일본이다. 우리도 그렇게 택해왔다. 자유세계가 전부 그랬다"며 자유민주주의를 성공시키는 것이 대한민국의 행복이고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운 국가로 올려놓는 유일한 길"이라며 "자유와 인간애가 우리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가장 소중한 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