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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레이첼 Oct 09. 2023

새벽 선물

날마다 새로워지는 설명서 

새벽은 어둠 속에서 오지만 빛을 동반한다.  

빛이 있으면 어둠은 사라진다. 치유의 빛이 있기에 비로소 사람들은 부스스 일어나 그 빛을 향해 걸어 나간다. 무의식의 공간이 의식의 공간보다 상상할 수도 없이 더 깊고 넓은 공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은 무의식의 공간너머에 있는 빛에 힘입어 비로소 가둬 두었던 상처들을 드러낸다. 그 빛이 없다면 사람들은 언제나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감히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공간은 내가 처리하지 못했던 온갖 감정적 앙금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쌓여 있는 곳이다. 이해를 할 수 있는 설명조차 듣지 못해 당황스러워 숨겨 놓았던 이야기들의 집합소. 그것들이 꿈속에서 마음껏 앙탈을 부리며 후유증을 남기고 떠나면 나는 그저 휘둘리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남처럼 나를 대하며 살았었기에 "왜 나를 모른 체하냐"며 '울부짖는 어린 나'를 좀처럼 알아차릴 수 없었다. 나에게 나는 손님이었고 원래 손님이었어야 하는 사람들이 나의 주인들이었다. 파리처럼 손을 싹싹 비비면서 비굴한 생존 방식을 택한 것은 나를 존중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게도 중년이 넘는 나이가 될 때까지도 그렇게 스스로를 방임했다. 자기 비하를 겸손으로 여기곤 했었는데 그런 연유로 겸손하다기보다는 억울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나에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했다고 생각했던 존재들은 유령처럼 어디로 다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단지 그것들의 명령에 죽어라 복종했던 내가 나에게 가해자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이야기였다. 그것은 내가 나를 배신한 것 같은 굴욕감과 함께 허무감을 남겨 주었다. 거울 속의 내 눈동자가 너무도 슬프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나마도 다행이었다.     


나는 친절하지 않은 손님을 대하듯 나를 대하며 살았다. 나는 왕자가 와야 구원받는 존재였으므로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왕자처럼 여기고 그들이 나를 구원해 줄 것을 믿었다. 백설 공주처럼 관속 안의 시체가 되어 언제 올지도 모르는 왕자님을 향해 텔레파시를 쏘아대며 살아가던 내 모습은 소녀적의 현실성 없는 마법적 믿음이 가져다준 결과였다. 새벽빛이 없었더라면 가엾게도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른이 되기까지 고군분투했던 나의 열심과 열정은 가짜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허수아비에게 옷을 입히며 멋지게 모델처럼 워킹하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나를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온전하게 존중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욕구는 용광로보다 더 뜨겁게 불타올랐기에 그저 알고 있던 대로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열심히'라는 것은 내가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을 뿐 노력만큼의 보상을 가져다주기는커녕 나를 부려먹는 지주 같은 존재였을 뿐이다.  


누구나 새벽을 맞이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새벽은 나에게 특별했다. 나는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새벽 독서모임부터 찾았다. 그리고는 나보다 훨씬 이성적이며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나를 향한 호기심이 나를 바꾸어가기 시작했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처럼 신비스럽고 달콤한 여정은 없다. 달라지지 않고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을까?  나에게 새벽이란 시간이 없었더라면 내 안에 상처받은 채로 웅크리고 있는 어린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아예 몰랐을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지 못해 뗑깡쟁이가 되어 버린 어린 나의 손을 잡고 비로소 나는 함께 여행 중이다. 마치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의 비행사처럼. 나는 어릴 때는 아이 어른이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어른 아이이므로 우리는  어리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많아 서로 꽤 잘 통한다. 


나무를 비추는 햇살이 없다면 나무가 어떻게 자신의 그림자를 볼 수 있을까?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시간은 내 불안과 걱정, 염려, 두려움을 활자 하나하나로 밝히기 시작했다. 원래 자세히 들여다보면 덜 무서운 법이다.  내 안의 불안은 오히려 나에게 요깃거리가 되어 주기도 했다. 그 요깃거리를 글로 만들어 책으로 내며 어떨까? 새롭게 나를 이끌기 시작한 책에 대한 열정 덕에 나는 새벽시간을 선물로 여기게 되었다.


지속되었던 새벽 글쓰기가 나에게 가져다준 행운은 특별하다. 그 행운은 나를 캐나다 밴쿠버에서 1인기업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노인들의 자서전과 인플루언서들의 이야기들을 글로 만들어 전자책으로 만들어 주는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것으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나에게 평안을 가져다주는지 몰랐다. 이제 나는 가짜 열정이 아닌 진심 어린 열정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즐기며 한다. 


그렇게 나는 새벽에 시작한 독서로 인해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이는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여행에서 진정한 발견이란 새로운 경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라고 프루스트가 말했다.  


새벽이라는 거룩한 능력이 운행하는 시간에 그 영광스러움에 동참할 수 있음으로 나는 충만하다. 그러므로 그것을 기록하는 거룩한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새벽은 신이 주신 특별한 선물이므로 그 영광스러운 선물을 누구나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새로운 눈만 있다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함께 떠나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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