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셨나요?
5살의 하루는 유치원에 가서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우리가 보는 유치원 생활이란 유치원 신발장에서의 모습뿐이니, 고작 작은 신발을 정리하는 것으로 5살의 삶의 무게를 얕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치원에서 따라야 할 규칙들, 식사 예절, 선생님과의 관계, 친구와의 갈등 등. 수많은 날들의 수많은 사건사고를 5살 인생에서 견디고 있다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5살 아이가 겪는 하루는 어떨까?
같은 반 친구 한 명은 무슨 말만 하면 선생님께 고자질이다. 그 친구가 세상에서 제일 밉고 다시는 놀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다음 날 그 친구가 다가와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놀이를 하자고 하니 그래 주겠다고 후한 인심을 쓴다. 싫은 친구와도 견디고 놀이하는 것, 그 싫은 마음을 참아보는 것도 배워본다.
체육시간이 되면 훌라후프도 돌려야 한다. 훌라후프가 몇 개 되지 않아서 차례를 기다리며 연습한다. 문제는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스꽝스럽게 엉덩이를 흔드는 모습을 친구들 앞에서 보여 줘야 한다는 거다. 이미 친구가 하는 모습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었던 터라, 자신의 차례가 되어도 훌라후프를 돌리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그 때문에 선생님에게 참여하지 않는 아이로 낙인찍혀 또 한소리 듣고야 마는 것이다. ‘친구를 보고 놀리지 말 걸..’ 뒤늦은 후회도 해본다.
-하물며 등원 첫날이란?
처음 와본 장소에서, 처음 보는 어른들, 처음 보는 아이들과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지낸다. 물어보면 대답도 해야 하고, 좋아하지 않는 반찬이 나와도 밥도 먹는다. 성인 20명을 한 공간에 앉혀놓고 이렇게 하루를 보내보라고 하면 마음 편히 지낼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이들은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해내는 것이다. 등원하기 싫은 마음도 당연한 것, 유치원이 힘들었다는 마음도 당연한 것. 등원 첫날은 정말이지 기적 같은 날이다.*
-'뭐가 부족한가요?' 대신 '뭘 잘하나요?'
이렇듯 유치원 가서 큰 문제없이 잘 지내주는 게 고맙고 대견하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사소한 잘못을 가지고 다그치고 혼낸다. 아이만의 세상에서 엄마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아이를 다그치고 속상하게 하고 오해할 일이 많다는 걸 우리는 모르고 있다. 인생 5년 차에 신발정리 외에도 해야 하는 수많은 일들을, 그것도 꽤 잘하고 있다는 것을 우린 상상조차 하지 않는 거 같다.
부모들은 선생님과 상담할 때 ‘우리 아이가 무얼 잘하나요?’라고 질문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요? 무얼 더 보완하면 될까요?’라고 물어본다고 한다.* 나 역시 우리 아이를 맡아주는 선생님이 행여 힘드시진 않을까 아이가 고쳐야 할 문제만 주시하였던 거 같다.
시현이 유치원 원장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엄마가 잘잘못을 따지고 감시하는 cctv일 필요가 있을까요? 엄마는 그 아이만의 가장 따뜻한 반창고이자 한없이 포근한 이불이면 돼요."
아이가 유치원 현관에서 엄마에게 쿨하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들어간다면 (설령 쿨한 인사가 아니었더라도) 그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봐 줘야겠다. 그리고 짧은 헤어짐 끝에 우리가 다시 만나면, 오늘 그가 겪은 솜털 같은 좌절에 대해 존중을 표할 것이다. 그에게는 결코 솜털만 한 무게가 아니었을 테니까.
*글의 제목과 일부 내용은 유치원 원장 선생님이 부모교육에서 해주신 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