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 있는 내내 긴가민가 했다. 남자에게 나는 필 충만한 여자였는가, 그 남자는 나에게 한 번은 더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는가. 자유분방한, 불 같은, 감정에 더딘, 성형남은 분명 내 취향과 깡깡 멀다. 그럼에도 말이 통하는, 소통이라는 게 가능한 몇 가지 주제가 있어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다. 그때까지 나는 소개팅남3이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도 캐치하지 못했다. 즐거우면 크게 웃고, 공감되면 백번 맞장구 치며, 내가 좋을 땐 눈에 하트가 줄줄 흘러 나오는 게 사내라 알고 있는데. 명명백백한 게 남자라던데, 소개팅남3은 내내 묘했다. 내가 괜찮은 여자인가보다,확신 하다 그 생각 도로 집어 넣게 만들기도. 그게 마성의 매력은 아니었지만, 내가 느낀 나는 호구같긴 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켜 테이블 사이 남자와 마주보고 앉았다.
식당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약 1시간의 대화로 간신히, 아주 가까스로분위기 맹글어 놨는데 이곳에 와 모든 게 리셋이다. 남자는 다시 입을 닫았고, 먼저 질문할 에너지와 소재가 고갈 된 나는 옆 테이블만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가장 소모적인 크리스마스날이었다. 그러다 본인이 안되겠는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기억에 남는 건 그 분 취미 이야기다. 취미가 다양했다. 커피에 빠져 한동안 학원을 다녔고, 집에 커피숍에나 볼 수 있는 머신도 들여놨다 했다. 그러다 커피가 지겨워져 뭘 했고, 뭘 했고. 요즘 하는 건 책 읽는 것과 연기라 했다. 반면 나의 취미는 아주 심플했다. 운동을 좋아하고, 짬을 내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할 말이 다시 동 나고, 이번엔 나도 한 마디 꺼냈다.
"저는 사실 소개팅하는 거 꺼려했어요. 자연스런 만남이 저랑 제일 맞더라고요."
"그렇죠. 그렇긴 한데 주변에 기회가 없으니까. 그래서 소개팅이라도 하는 거 아닐까요?"
소개팅에 대한 주제에 가장 열을내 대화 했다. 기억나는 건 나와는 조금 다르던 소개팅관이었다는 거. 그리고 말의 뉘앙스에서 남자는 눈치 챈 모양이었다. 어느 순간, 말이 없어 지더니 "일어 날까요?" 한 마디만. 남자나 여자나 사회생활이 늘며 눈치가 자란다. 능구렁이가 자리잡는 다는 우리 차장 말은, 진리다. 서른 넷의 남자는 확실히 알았을 거다. 커피 마시는 동안 명확해진 내 입장을. 마지막 세번째 소개팅에서도, 연애는 할 수 없을 거 같다는 걸.
조심히 가라는 인사도 아니었다. 안녕히 가세요,한 마디 남기고 남자는 뒤도 돌지 않고 제 길로 갔다. 지금에 와 남자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한다. 서로가 내키지 않았겠지. 그래도 조심히 가라는 메세지는 건넬 줄로 알았다. 그럼 나도 쿨하게 답장해 주려 했다. 만나서 반가웠다고, 조심히 가시고 좋은 분 만나길 바라겠다고. 그래도 인연이었고, 적어도 김언니와 김언니 남편을 생각해서라도 그래야 되는 거라 생각했다.
남자는 카톡 프사를 자주 바꾸던 사람이었다. 나와 만나기 전에도 하루에 두 번은 바꼈던 거 같은데, 나보다 옷이 많은 남자다. 매번 다른 옷을 입고 프사에 등장했다. 아참, 나를 만나러 오는 30분 전에도 한 번은 더 바꼈다. 그리고 요란스럽기도 해보이던 그의 프사가, 나와 헤어지고 20분도 지나지 않아 또 바꼈다. 본인의 등을 배경으로 카톡에서 제공하는 천사 날개 모양의 일러스트가 그려있었다. 당신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헤어짐의 인사 대신 카톡 프사를 교체하는 사람. 그렇구나, 그랬었구나. 남자로부터 어떤 메세지도 받지 못하고 그게 끝이다. 남자 등에 달린 천사 날개가 마지막으로 본 그의 모습이다.
종교는 없어도 습관처럼 특별한 크리스마스 날, 기가 쪽쪽 빨려 기진맥진한 상태로 버스에 올랐다. 몸살이 날 것 같다. 버스 유리창에 기대다짐했다. 오늘 저녁은, 지난 이틀간 참았던 고칼로리 음식을 양껏 먹겠다. 쏘맥도 한 잔 걸치고, 그렇게 남은 내 크리스마스를 회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