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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Oct 02. 2020

(7) 자유분방하며 불같은 세번째 만남


김언니 남편의 절친(소개팅남2)와 덜친(소개팅남3)은 서로 아는 사이었다. 대충 듣기로 셋은 같은 대학교 선후배 사이며, 가끔 밥도 같이 먹는다고. 셋 다 하는 일이 같아 팡요(pang-yo)마을에 한데 모여 산다고 했다. 그 말인 즉슨, 나는 친구사이인 둘과 연달아 소개팅하게 되었다는 거다.


"그래도 되요?"


하나랑 잘 안되 다른 하나 추가로 알아 보겠다는 건데, 뭐 어떻냐고. 괜찮다며 이번에도 응원한 건 김언니였다. 언니에겐 "일단"이 중요했다. 일단 밥이나 먹고 오라며 보내달라 한적 없던 사진 하나를 보내왔다. 소개팅남3이다. 사진만으로 인지할 만큼 남자는 키가 컸다. 그리고 잘 꾸몄다. 착한 것까진 알 수 없다. 김언니 남편이 강조해보인 3개의 최장점 중 2개는 찾았다. 다만, 형부가 말하지 않았던 성형인간의 모습도 보였다. 나보다 예쁜 인조미를 가진 남자는 원치 않는다.


소개팅남3에게도 메세지가 왔다. 일 잘 하고 있느냐고, OO형(김언니 남편) 소개로 연락했다고. 나는 소개팅남3에게서 이전 소개팅남들로부터 발견하지 못한 하나를 발견했다. 대화를 지속하고 싶어한다는 것. "안녕하세요."를 시작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얘기가 길어지니 자연스레 농담 몇 개도 오고 갔는데, 남자는 자유분방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톡이 길어져, 내가 업무 방해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는 질문에 "상관없어요 아무때나 하면 되요ㅋㅋ"라 했다. 그만하는 게 좋겠다 한건 오히려 나였다. 소개팅 전 너무 친해지면 안된다는 소개팅 불문율을, 지난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월요일, 일이 쌓여 있어 가봐야겠다는 나의 말에 불이 붙은 소개팅남3은 수요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당일 만남을 제안했다. 주말까지 너무 길다고. 자유롭고 게다가 불같은 남자였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혼자라도 소중히 보내고 싶었다. 두 번의 경험으로 소개팅이란 매우 시시하고 소모적인 일임을 배웠으니까. 크리스마스 소개팅을 피하고 싶던 이유다. 다만 보채는 남자 덕에 결국 12월 25일, 모 식당에서 저녁도 아닌 점심을 먹기로 했다.



소개팅남3과 대면 전 대화는 나쁘지 않았다. 제법 말이 통해 하나를 건네면 다른 하나가 날라와, 또 다른 무언가를 내보이게 만든 대화였다. 비록 연간 3권일지라도 책 읽는 남자기도 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내 이야기에 반응한 리액션일지는 모른다. 어쨌거나 공통분모가 있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다. 그 날도 교보문고 앞에서 기다릴테니 읽을 책을 추천해 달라가 마지막 대화다. 그렇게 이틀 뒤. 이번도 내가 먼저 도착했다. 쉽고 재밌게 읽힐 도서가 뭐 있을까,이 코너 저 코너 기웃대며 가끔 시계를 흘긋했는데, 전화가 왔다. 소개팅남3이다.


"저 도착 했는데 어디 계시죠?"

"아 저는 지금 G코너에 있어요."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사람이 너무 많네요. 문쪽으로 와줄래요?"


읽던 책 내려두고 가방 챙겨 정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누군가 기다리는듯한 한 남자. 소개팅남3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봤다. 머쓱한 인사를 나누고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날 교보는, 아수라장이나 다름 없었다. 카톡 대화할 땐 센스 넘치던 수다쟁이 남자가 말이 별로 없다. 하고 있던 교정장치 때문인가, 식당 걸어가는 길에 음소거란 없도록 나는 내 최선을 다했다. 에너지를 모아 질문해 내고, 또 다시 모았다 다른 질문을 했다. 만남 20분만에 기가 쏙 빨렸다. 실제로 만난 남자는, 완.전. 재미 없었다.



그래도 식당에선 좀 나았다. 남자가 나에게 질문을 하면, 나는 대답을 했다. 그 사이 나도 모르는 노력을 했던 거 같다. 소개팅남3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려고. 이 남자의 장점은 무엇일까, 나와 맞는 무엇도 있을 거 같은데. 두 눈 동그랗게 뜬 채로 듣고, 이빨 10개가 보이도록 웃었다. 틈을 내 남자 겉모습도 스캔했다. 왼쪽, 아님 오른쪽에 차고 있던 피어싱 하나, 그리고 스웨터 위로 빼꼼 보이는 레터링 문신. 스웨터에 반쯤 가려 있어 문구는 알지 못했지만, 이 남자. 보통 개방적인 남자임은 알았다. 매 년 3번에서 4번은 해외 여행을 간다 했다. 가지 않으면 몸에 병이 나는 거 같다고도 했다.


"아아 그러세요? 저도 해외여행 가는 거 좋아해요."


한껏 호응하는 나와 달리 남자 리액션은 거의 바닥 수준이었는데, 머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남자는 말했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게 고민이라고. 그래서 취미로 연기를 공부한다고. 다양한 역할을 통해 감정을 풍부히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작지만 큰 고민을 내게 건넸다. 덧붙여 이번에 맡은 역은 게인데 여간 이입이 쉽지 않다고도 했다. 노력은 하는데 뽀뽀신은 정말 죽고 싶단다. 여러모로 불 같고, 자유분방하고, 감정에 더딘 남자였다.


"다 먹었는데, 커피 마시러 갈래요?"


커피를 제안한 건 나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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