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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Oct 01. 2020

(6) 소고기는 사양하겠어요.


해가 뜨듯, 에스컬레이터에 남자 하나가 떠 올랐다. 점점 상승하던 남자는 두리번 대며 통화중이었는데, 짧은 시간 나를 발견하곤 전화를 끊었다. 초롱이씨였다.


"안녕하세요. 오늘 엄청 춥죠?"

"안녕하세요. 미안해요. 안경을 못 찾는 바람에. 근처에 고깃집 있는 데 거기로 갈까요?"


고기는 내가 정한 거였다. 음식 뭐 좋아하냐는 소개팅남2 물음에, 파스타 좋아하냐는 추상적 질문에, 아니. 난 고기를 좋아한다 했다. 그래서다. 근처에 위치한 하남돼지집을 가게된 건. 자리에 앉고, 드디어 소개팅남2 정면 조우다. 사진으로 보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렌즈를 통과한 얼굴과 그렇지 않은 얼굴은 판이하다. 사진빨은 들어봤어도, 실물빨은 들어본 적도 없다. 남자는 나보다 오빠였는데, 앳된 외모였지만 제 나이로는 보였다. 그랬다.


아주 편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첫 소개팅과 달랐던 건 기대가 짧았다는 거다. 오늘 압구정역에 도착한 45분이 설렘의 전부다. 어차피 잘 되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대충 인지하고 있었고, 정말 편하게. 즐겁게 밥 먹고 오자는 심사로 나간 것도 그때문이다. 소개팅남2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수수한 청바지 차림에 걸쳐 입은 셔츠 하나로 오늘의 패션을 완성한 나처럼, 면바지에 심플한 맨투맨 하나를 입고 나온 걸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최소의 기대로 최고의 만남을 바랐는지 모른다.


춥고 배고팠다. 식전 맥주 한 잔에 한결 배가 찼다가 곧 심하게 허기가 졌다. 고기가 나오고 얼마나 열심히 먹었는지 모른다. 깨작거리며 먹는 건 어딘가 밥 사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같아. 풍성하게 쌈 하나를 싸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정말 고기 좋아하시나봐요. 홍홍."

"ㅋㅋ 네. 잘 먹죠? 고기 좋아해요. 진짜 오랜만에 먹어요."


소개팅남2는 게임회사에 근무 중이었다. 관심도 없는 게임, 다니는 회사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알수는 없었어도 적어도 그 회사에서 만든 게임 이름은 알았다. 주로 질문을 했다. 전혀 알지 못하던 필드, 그곳이 궁금했다. 몇 가지 들었던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건, 경기도 판교(Pan-gyo)를 그곳 게임사 직원끼리는 팡요(pang-yo) 또는 팡요 마을이라 부른다 했고, 게임회사 다니는 직원 전부가 게임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것과, 직원끼리 "님"이라 부르는 호칭이다. 흥미로웠다. 특히 팡요는, 참신하기까지 했다. "팡요마을 하니 뭔가 버섯돌이가 뛰 다닐 것만 같아요. 파핫."는 나의 말에 소개팅남2는 한껏 반응했다. 놀러 오라고, 구경시켜 주겠다고.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갈 수 있을까. 더욱이 당신과 함께.



연애가 느낌으로 시작하는 거라면 이번도 어렵지 않을까,하는 내 마음을 금세 알아차렸다.

최선을 다해 즐거웠다. 단지 주고받는 말에 티키타카란 없어 신나게 질문하는 내게 돌아 오는 건 맥 빠진 답뿐. 그래서 였는지 모른다. 가는 시간이 아쉽다거나 다음에 또 만났으면 하는 바람은 들지 않았다. 45분 밖에서 벌벌 떠는 바람에 약간의 오한까지 찾아왔고,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도 때론 들었다. 소개팅남2와의 첫 만남 종료 되었다. 집에 가기 위해 다시 압구정역으로 걸음을 돌렸다.


"오늘 반가웠어요. 조심히 가시고요. 연락 할게요."

"ㅎㅎ네. 저도 잘 먹었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우리는 같은 호선, 다른 방향에 살고 있었다. 묘하게 다행이었다. 집에 가는 길은 좀 편하게 가야지. 전철 타자마자 김언니가 생각났다. 언니에게 오늘 고맙다고, 좋은 분 같다며, 소개시켜 주어 감사하다는 메세지를 고 있는데, 소개팅남2에게 톡이 왔다.


"조심히 들어가요. 오늘 반가웠어요. 다음엔 소고기 드실래요?"


내가 아는 애프터가 이것이 맞다면, 남자는 소고기로 두 번째 만남을 데쉬하고 있었다. 사실 김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필두로 아마 잘 안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나와는 인연이 아닌 거 같다고. 약속 늦을 때 부터 심통나 있었는데, 딱히 티키타카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연애가 필(feel)이라면, 그 분에게 받은 느낌이 내 느낌은 아니라고. 언니에게 톡을 보내고, 소개팅남2에게도 하지 못한 답장을 보냈다.


"저도 오늘 고기 잘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편한 동생으로 봐주실 수 있다면 소고기, 언제든지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소개팅남2는 나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것도 아주 "쏙". 무엇이 그를 사로잡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초롱이씨는 소개팅한 날로 한동안 꾸준히 내 이야기를 하고 지냈다는 것까진 안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감사한 일에 매번 보답 못하는 일이 남과 여 사이 아닐까. '고마워, 나도 너를 좋아할게.'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보태어진다. 소개팅남2에게도 그랬다. 감사한 마음과 보답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 인생 두번째 소개팅도 이게 다 다. 다음 날 감기에 걸렸다.



김언니는 나를 아낀다. 날 좋은 주말, 혼자 보내지 말라며 한 번의 추가 소개팅을 제의해 왔다. 또 해보라고, 이번엔 만날지 모른다고, 다를지 누가 아느냐고. 남편 말에 의하면 착한 동생, 키도 크고 잘 꾸미는 남자라했다. 그 분의 최장점 몇 개를 솎아내 김언니에게 전한듯 다. 언니는 남편에게 들은 말 고스란히(어쩌면 조금 과장해) 전하며 일단 만나나 보라고 부추겼다. 두번째도 실패한 소개팅에 기대치는 이미 바닥이었다. 꼴랑 두번이지만, 나에겐 두번이 전부니까. 이걸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만 하고 있는데.


"하는 거야. 알았지? 연락처 준다?"


등 떠밀라디시피 세번째 소개팅남 연락처를 받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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