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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29. 2020

(4) 당신과 뽀뽀는 상상이 안가요.


"이모 여기 순대모듬 소(小)자 하나랑 소주 한 병 주세요!"


그 날따라 신의주찹쌀순대집엔 사람이 없었다. 비교적 규모가 큰 지점이었는데, 우리 포함 단 3테이블만 있었을 뿐이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였으면 했다.  틈에 휩쓸려 머쓱한 웃음만 오가는 우리 테이블 분위기 상쇄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순대집 특성답게 순수 "식사"를 하러 온 옆 자리 손님들로 이곳은 고요했다. 몇 번의 달그락 접시 소리와 호로록 대는 사운드 뿐, 독서실이나 다름 없다. 곧 호구 조사가 시작되었다.


"어디 사세요?"

"무슨 일 하세요?"

"그렇구나. 하는 일은 어때요? 재미 있어요?"

"취미가 뭐에요?"


소개팅남1은 번듯한 남자였다.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 "올~"소리 나오는 학교에서 대학 과정을 마친 후 S모 대기업에 근무중이라 했다. 가끔 아버지 회사 일도 돕고 있고, 아. 스키는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해온 취미라. 덧붙여 현재 다니는 직장에 만족은 하지만, XX공사에 일해 보고 싶다고도 했다. 뭐라뭐라 자신의 포부 밝혔던 거 같은데, 기억은 안난다. 르방오빠 말대로 괜찮은 남자이긴 했다. 다만, 나와는 한 박자 어긋난 시점에 웃는 바람에 알 수 있던 다른 개그 코드를 제외하고. 윤기나는 피부 사이 자꾸만 거슬리던 BB크림 자국을 제외하고. 당신과 하는 뽀뽀는 상상이 안간다는, 연애는 어렵겠다는 짧은 판단을 제외하고. 그러나 나는 열심히 대꾸하고, 호응하고, 박장대소했다. 소개팅남 만나기 전 했던 나와의 약속 지키기 위함이다. 르방오빠에게 폐를 끼쳐선 안된다, be nice! 그리고 소개팅남1은 그런 내가 싫지 않은듯 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을 어필하고 있었다.



2차로 이자카야에 갔다.

순대 거나하게 얻어 먹었으니, 2차는 내가 사야 마음 편하겠다 싶다. 배가 불러 샐러드 비스무리한 일본음식 하나와 맥주 두 잔을 시켰다. 서울의 밤, 어둑어둑한 그곳에 진솔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남자는 진지했다. 몇 번 개그 치기도 했는데, 이번에도 난 한 박자 늦어 웃음 지었다. 힝. 재미없어. 누가 했던 말이 맴돌았다. "한 세 번은 만나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세 번까진 지켜 보려 했던 거 같다. 무엇보다 르방오빠에게 폐를 끼쳐선 안 되니까.


알딸딸한 기운으로 드디어 이자카야 밖을 나섰다. 소개팅남1도 취기가 오른 것 같았다. 어설프게 혀가 꼬였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나 보다. 나와 친해졌다고. 대뜸 어깨에 손을 올려 길을 걷는데, 이러시면 안되지만 이러셔도 되요,같은 기분 말고, 헐 왜이러시나 이분,따위의 기분이. 팔을 어떻게 떼어낼지 방법을 몰라 엉거주춤으로 길을 걸었다. 그리고 제발, 치워 달라 말하지 못한 게 당신과의 교제를 허락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길 바랐다.


"안녕히 가세요. 오늘 잘 먹었습니다."

"조심히 가! 연락 할게.^^"


보통 인사치레로 연락한다 말 한다던데, 소개팅남1에게 다시 카톡이 왔다. 한결 나를 가깝게 대했다. 때때로 말을 놓았으며, 다음주 시간 언제가 괜찮은지, 밥을 먹자 했다. 그리고 기억 나질 않는다. 정신차려 보니 그와의 두번째 만남이다. 근처에 일하던 우리는 점심시간을 내 카레를 먹었다.


그와 톡을 주고 받았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를 간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바빴다. 대기업 야근이야 말 안해도 알지만, 공사 면접 준비로 한참 분주한 날을 보내는듯 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소개팅남1의 아침 인사가 끊겼다. 매일 아침, 출근 잘 했어? 혹은 잘 잤어?로 시작하던 9시 전후의 카톡이 더는 오지 않는 거다. 잘 됐다 싶기도 했다. 아무래도 당신과는, 뽀뽀 할 자신 없다,싶었으니까. 오거나 말거나 하던 시간도 일주일이 흘러 자존심에 스크래치 났다.


나도 예의 바르던 스물다섯은 아니었지만, 이건 좀 아니잖아. 최소한 잘 지내라, 정도 인사는 하고 마쳐야 하는데. 똥 달린 강아지마냥 끝난 것도, 끝나지 않은 것도 아닌 이 사이가 여간 찜찜했다. 결국 내 차례가 왔다는 생각에 그에게 처음으로 선(先)톡을 보냈다.


오빠 잘 지내세요? 면접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바쁘셔서 연락 못하셧을 거 같아요.

르방오빠 덕에 소개팅도 해보고, 만나서 반가웠어요.

원하시는 곳, 꼭 합격하시길 바라요.

잘 지내세요!


"전송"을 누르고. 달려있던 똥이 떨어졌다는 생각에 상쾌했다. 어줍잖은 썸도 아닌 게 공연히 마음에 성가심만 남아있던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는 소위 읽씹을. 아직도 이유는 모다. 삽식간에 꼬르륵 잠수 타 버린 이유도, 누가 차인 건지도. 궁금하긴 하다.


아주 먼 시간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남자친구가 생겼다. 더는 소개팅 할 일이 없어졌다. 그 후로 한 번의 남자친구가 더 있었고, 다시 솔로가 되었다. 감정이 사인 그래프처럼 요동치던 연애때와 달리, y=0을 수렴하던 날중 하루.


(카톡카톡)

"쟈스민! 소개팅 할래?"

(To be continued)



미안합니다. 계속 쓰고 싶은데, 시간 나는만큼 최대한으로 쓰고 있어요.ㅠ_ㅠ

추석 때 소개팅 하러 가시나요?

이번엔, 다르겠지요?+_+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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