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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28. 2020

(3) 순대 좋아해요?


뜬금없던 르방오빠처럼 곧장이라도 올 것 같던 소개팅남 카톡은 오질 않았다.


나에겐 첫 소개팅이었다.

처음은 늘 그렇다. 알 수 없는 것 투성이. 주선자 통해 연락처 교환하고, 이후로 얼마가 지나야 소개팅남에게 카톡 오는 것이며, 호기심 가득 차 있어도 적당히, 아주 기본만 묻고 답하는 게 만남 전 카톡이라는 걸 몰랐던 거다. 차마 만지지는 못하겠어 한참 핸드폰만 쳐다봤다. 핸드폰 두 손에 쥐어 오물딱 조물딱 거리다 갑자기 톡이라도 와 "읽음" 눌러 버릴까봐. 보내자 마자 읽는다는 건, 어쩐지 "네 연락만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임마!" 내 맘 들켜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어시간 지나도 깜깜 무소식이다. 르방이에게 묻고도 싶었다.

내 전화번호 제대로 가르쳐 준거 맞느냐고. 이렇게 사람 애닳게 해도 되는 것이 소개팅이냐고. 첫 소개팅의 설렘에 차분함이란 없던 나는 화만 삭히고 있는데, 그때다. 낯선 번호로부터 톡이 왔다. "안녕하세요."


피하하하. 이거구나! 나에게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진작 읽었으나 한 20분은 읽지 않고 방치했다. 조급한 여자가 아님을, 강조해 보이고 싶었다. 소개팅남1(편의상 첫 번재 소개팅남을 소개팅남1이라 하겠다)은 모를 것이다. 내 입가에 퍼지던 실소를. 인생 첫 소개팅, 드디어 실감나는구나. 20분도 간신히 버텨 답장을 보냈다.


"아 안녕하세요! 르방이오빠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쟈스민이라고 합니다."


답장만 보고 있다는듯, 소개팅남1은 즉각즉각 메세지에 호응해 왔다. 소개팅남1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뭐해요? 어디 살아요? 연애 안한지 얼만 됐어요? 나는 그에 대해 너무도 몰랐다. 이름, 나이, 전화번호, 르방이 친구. 오직 네개의 단서만으로 낯선 그와 대화 중인 거였으니까. 그런 내 마음을 그는 또 너무 몰랐다. 짧은 인사만 주고 받고, 주말 몇 시 어디에서 보자는 대화를 끝으로 다시 미궁에 빠졌다. 만남 전 너무 친해지면 안된다는 소개팅 불문율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게다. 그래도 소개팅 당일까지 간단한 메세지는 주고 받았다. 안녕하세요, 출근 잘 하셨어요, 오늘도 화이팅 하세요. 상투적이며 진부한 말씨가 25살 나와 27살 소개팅남1 사이 오고갔다. 자꾸만 일정 거리 두려는 소개팅남1이었다.



D-day.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스키복에 쌓여, 고글에 가려 알 수 없던 소개팅남1을. 오늘에야 만나는 거다.

낮보단 저녁나절을 좋아하는 남자인듯 했다. 오후 5시경, 삼청동 근방에서 만나기로 하고 일찌감치 장소에 도착했다. 아침나절부터 들썩였다. 적어도 차이고 싶지는 않아서, 르방이 난감하게 하고싶지는 않아서 내 최선으로 꾸며 길을 나섰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외다시피 했다. 르방이에게 폐를 끼쳐선 안된다, be nice, 사근사근 친절하게, 많이 웃고 리액션 잘해주자. 소개팅남1에게 전화가 왔다. 처음 목소리를 들었다.


"어디세요? 저는 도착 했는데."

"앗 저도 도착했어요. 어디 계시나요?"


사방을 둘러봤다. 주말 삼청동, 동양인 서양인 할 거 없이 여러 인파로 가득차 전화받는 27살 남자를 식별하기 어려웠다. 누구야, 누구,라며 속으로 수군대다 속물스런 마음 하나가 솟아났다. 이왕 내 마음에 쏙 드는 외모면 좋겠다. 어디가 눈 높다는 소리 거-의 듣지 못 하지만 적어도 나만의 지향점은 있으니까. 그래, 나도 외모를 보는구나,하는 스침에 어쩐지 속물 같아 미안했어도, 남자를 찾음과 동시에 제발제발 거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아주 높은 확률로 소개팅남1인듯한 상대방 저 분.


"아, 찾았다!"


남자는 전화를 끊더니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단정하고도 깔끔한 옷차림과 단아하게 멘 백팩 하나. 뽀얀 얼굴엔 윤기가, 얼핏 보이는 BB크림의 자국이. 영국 귀족에게서 보일듯한 모습이 소개팅남1에게 보였다. 나 못지 않게 꾸미고 왔음을 티나게 알 수 있었다. BB크림 바른 제 멋의 댄디가이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는 데 차가 엄청 막히더라구요. 저는 아빠 회사에서 오는 길이에요. 일이 좀 있어서. 뭐 드실래요? 배고프시죠?"

"네네. 뭐 드실까요?"

"혹시 순대 좋아하세요?"

"네 좋아해요! 순대 먹으러 가요."


보통은 아무와, 아무렇지 않게, 아무 말이나 잘하는 게 나의 특장점인데. 첫 소개팅만큼은 어려웠다. 숨막히는 이시간, 식사라도 하면 조금 나아지려나. 그렇게 영국귀족남과 신의주찹쌀순대집에 들어 가 자리를 잡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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