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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Nov 16. 2020

E16. 디로딩, 충전


Deload(동사)

1. 운동 강도를 낮추다. 2. 운동 강도 저하


운동 방식 중 “디로딩”이라는 게 있다.

평소보다 가벼운 운동 혹은 운동 중단을 통해 리커버리하는 기간을 말하는 데, 지친 몸의 회복을 도움으로써 장기적으로 훌륭한 퍼포먼스를 얻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누적된 피로를 풀고, 정체되었던 수행능력을 끌어 올린다. 들고 쪼는 대신 내려놓은 채 휴식한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이겠다. 어쩌면 반드시 요구받는 시간일 테지만, 사실. 우리 꾸준히 땀내 족에게 있어 디로딩은, 말처럼 쉬운 결심이 아니다. 채우고, 쌓는 것에만 능한 사람들이라 쉼에 익숙하지 못하다. 대신 어색하고, 심지어 미숙하여 불안을 느낀다. “성장을 멈추어 쉰다.”는 것은, 어쩐지 그런 것이다.


몸과 머리로 알고는 있다.

로딩과 다시 로딩과, 어김없이 로딩만 해온 탓에 여기저기 피로하지 않은 부위가 없다. 하루 멀게 조직에 생채기 내는 반면, 아물 시간은 단 하루도 주지 못한 까닭에 근육에 염증 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몸은 아픔을 신호하여 멈춤을 부탁한다. 호소겠다. 이런 날도 있는 데, 에너지 전부를 운동에 써 버린 날이면, 무기력한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좀비로써 낮을 보내다 밤 9시도되기 전 잠을 청한다. 몸져누웠다. 때문에 머리로도 알게 된다. ‘열혈한 주인 만나 고생인 몸을 위해, 쉬어야 하는 구나. 하루쯤 운동 하지 말아야겠다.’ 문제는 협조하지 않는 마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에는 각오가 필요하다.

늘 뭐라도 하고 있어, 무엇도 하지 않는 내가 불편하다. 특히나 습관과도 같은 “퇴근 후 헬스장”을 거른다는 것은, 밥 먹고 양치 안한 찝찝함이 존재한다. 놓친 게 있는 것만 같아 마음엔 안달이 난다. 때문에 모처럼 쉬고자 운동 거른 날도, 30분 채 못 견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할 것을 찾는다. 집안을 배회하다 결국엔 글을 쓰거나, 몇 가지 밑반찬을 뚝딱이거나, 빨래를 개어 빈 건조대 위에 다시 빨래를 넌다. 해야 할 무엇을 계속해 창조해 낸다. 먹거나 마시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고, 그 길로 짤막히 동네 산책까지 했다. 돌아온 나의 밤은 어느새 11시를 맞았다. 재생산을 위해 자야할 시간이다. 이젠 마음 편히 잘 수 있다. 발발대거나 총총대며 사는 내게 있어 오직 휴식은 이런 일이다. 시간을 생산으로 전환해야 하는, 좀체 가만히 있지 못하는 현대 쟈스민에게, 로딩 말고 디로딩은, 곤욕이다. “발발”과 “총총”이에게 “얼음”은 그렇다.


*

결국 강제 디로딩을 맞았다. 물론 자발적이지 않다.

전국에 퍼진 코로나가 원인이었는데, 2주를 쉬기로 했다. 매일을 전화해 “집에만 있어”라는 엄마와, “코로나 옮기는 사람, 나쁜 사람”만드는 정부의 닦달이었다. 그들 성화에 두 손과 두 발을 들어,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멈추었다. 쉬는 내내 꺼림칙했다. 근육을 잃을까 염려했다. 여성 호르몬과 싸워가며 가까스로 채운 근육을, 간신히 만든 라인을 흔적 없이 흘려보낼지 모른다는 겁이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든다.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는 바보가, 내가 아닐까. 때로 모든 것을 노력에 부친다. 몸 따위는 잊기로 노력 한다. 찌면 빼고, 줄면 늘리면 된다. 2주 뒤 새로이 시작하는 리셋의 힘을 믿기로 애써 본다. 즐겨보기로 한다. 그리고 자문과 설득을 한다. 양껏, 질껏 몸의 휴식을 취해본 적 있느냐고. 기회삼아 휴양삼자고. 닭찌찌 대신 비빔라면을 끓여 먹고, 곧장 누워 자기를 14일간 반복했다. 낯선 시도였다.


*

“오! 잘 지냈어요? 왜 이렇게 오래 못 본 거 같죠, 선생님?”


운동 수행능력이 좋아졌다.

힘에 부쳐 당해내기 어렵던 무게도 어쩐지 가볍게 들어 쪼기가 가능해졌다. 목표 근육에 딱딱 꽂히는 이 느낌과 오랜만의 조우다. 이 맛이다. 실제 약 2주 정도의 디로딩은 근육 조직에 변화를 가져 오지 않는단다. 다만 가둬둔 수분이 빠지며 생긴 탄력을 잃었다는, 일시적 착각일 뿐이라고. 기우였다.


가뿐한 움직임을 가져간다. 오늘은 씨와 발을 읊을 필요도 없이, 사뿐사뿐 잘도 들고 쪼인다. 충전한 탓에 얼굴에 생기마저 돋는다. 활력이 넘친다. 이깟 무게쯤이야, 거침없다. 간만에 만난 땀내 아저씨가 반갑다. 알아채지도 못할 눈인사를 나 혼자 건네고 있다.


멈추어 갈 줄도, 쉬어 갈 줄도, 휴식할 줄도 알아야 함을 배운다. 디로딩이 필요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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