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실험 : 단식(1)
*1차, 단식 개시 2022/10/3 21:00 ~ 단식 종료 2022/10/5 11:30
나는 Gym종국이 유별스럽다 할 정도로 깐깐하게 음식 챙기는 이유를 알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운동함으로 몸에 자존감이 올라서인데, 함부로 몸을 대할 수 없게 된 그라 깐깐징어처럼 구는 것이다. 그러나 Gym종국은 깐깐징어가 아니다. 마땅한 식이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 좋은 것 채워주고 싶은 주인의 마음이 돼서 그렇다.
그렇게 Gym은경도 운동(헬스)을 하다 비건(채식)이 되었다. 처음엔 종국과 같았다. 몸을 아끼는 마음으로 닭가슴살 샐러드를 주로 먹었고 음료나 스낵 따위는 가렸다. 주말 빼고(일종의 치팅ㅋ). 그러다 인간 질병 대부분이 육식에서 기원함을 존 맥두걸 박사 <어느 채식의사의 고백>을 통해 알게 되고 비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운동도 한다. 최근엔 단식에도 관심 갖기 시작했다. 내면이 정화(정신은 아직 멀었고 적어도 몸만은…) 되길 바라는 자라면 단식을 생각해보지 않았을 리 없다.
단식을 하게 된 계기
단식.
간헐적 단식, 연예인 다이어트, 1일1식이다 하며 사내 단식 열풍이 불 때, 휩쓸리지 않으려 나무 뒤에 숨어 그들을 질타한 적이 있다. 잘못된 예들이 대다수였다. 식욕과 식탐을 누르다 누르다, 주어진 하루 한 번의 식사를 대폭식의 장으로 여기는 모습 마치 수단이 목적보다 커버린 오류 같았달까. 쫄쫄 굶다 위를 터뜨릴 기세로 폭식하는 식습관은 결코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단식에 귀를 쫑긋 새운 계기가 있었으니, 개인마다 동기로 작용하는 동력이 있음은 자명하다. 그게 내겐 ‘건강’과 ‘정화’다. 딱히 앓고 있는 병이나 꾸준히 복용해야 하는 약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건강한 몸과 마음은 활기찬 생활의 기본기라 믿는다. 존 로크도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고 말했고. 그래서 단식이 다이어트 개념이라기보다 ‘몸의 노폐물을 제거해 세포의 활동성을 높여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단식에 크게 반응했다. 뭐시? 세포가 살아나고 어쩌고 저째? 그날로 비건 도서를 덮고 단식 도서를 파기 시작했다. 허벅지와 팔뚝과 배떼기에 붙은 지방은 모두 간이 어쩌지 못하고 저장 돼버린 독소라는 것도 알게 된 뒤, 단식의 갈망은 날로 높아만 갔다.
단식의 목표
그러나 나의 결심은 이토록 1차원적이지 않고 다차원적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정화(자가포식을 이용한 노폐물 제거)’뿐 아니라 단식을 통해 깨고자 한 바가 있었다.
‘파블로 개처럼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서 자동 반응하는 뇌의 관성(호르몬 작용)을 깨고 싶다. 촤하.’
책을 읽을수록, 권수로 조질 수 있는 속도(속독)가 붙을수록 결코 내 손에 붙을 것 같지 않던 책들이 마구잡이로, 정말이지 자석 끌리듯 잡다하게 달라붙는다. 그러며 통념이라 진리인 줄로 알던 나만의 틀이 존재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어려서 우유를 잘 안 먹어(느끼했음) 키가 안 큰 줄 알고 ‘엄마가 챙겨줄 때 잘 먹을걸’ 하던 후회가 무쓸모라는 사실도 후에야 안 것이다. 어딘가, 미디어 매체가 아니라 책에만 도사리고 있을 그 진리들을 발견한다면 34년 살이 인생은 모두 거짓이었구나 하고 깨달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뇌의 관성을 깨겠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들이 매우 철학적이고 개념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고, 그저 생체 실험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배고파서 배고플 수도 있지만, 배고픔을 관장하는 호르몬이 분비될 때 배고픔을 느껴왔더라는 걸 몸으로 경험하고 싶었다. 배고프다고 항상 먹을 필요 없다는 것도. 도서 <잠시 먹기를 멈추면>과 <독소를 비우는 몸>에서 나는 또 적잖은 충격에 휩쌓였다. 더불어 공복의 즐거움을 온전히 몸으로 체득하고 싶어서였다. 가뿐한 몸이 좋다.
그렇게 계기와 목표가 모였으니 첫 단식을 모의한다.
이 생체실험이 부디 효과적이기를 바라며,
계획은 이러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