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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11. 2020

#1. 아싸 취업!

(쓰고 있는 책 미리 연재)


취업을 했다.

취업난 속 1,0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드디어 입사다.

그리던 기업의 문을, 내가 뚫은 거다. 말 그대로 “아싸, 취업!”이다.

취업하기 조올라 힘들었다.


졸업과 동시에 취준(취업준비)이 되었다.

졸업 전엔 학생이라는 신분이라도 있었지만 이젠 나를 소개하는 일이 ‘무직’이다. 4년이라는 학사과정, 이도 모자라 어학연수에 봉사활동으로 보낸 시간 2년까지. 결국 나에게 주어진 신분 백수. “백수란 뭘까.” 나를 자극한 호기심에 찾아 본 그 의미, 어이가 없다. 나더러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이래. 돈 한 푼 없는 건 맞지만, 놀고먹는 건달은 아니라고요. 나도 놀고먹고 싶다고요! 취급 한 번 서럽지만, 어쩌다 백수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의과대 생도 아닌 게 어쩌다 대학교 6년. 공부하는 동안 우리 부모님 나에게 투자한 돈 얼마인지 가늠도 안되지만, 그렇게 탄생시킨 위대한 백수 딸이다.


백수가 되는 것, 이렇게 고된 일이었다면 아마 하지 않았을 거다.

“어차피 될 백수인데 뭣 하러 공부해요. 공부 그만 시켜주세요. 그 돈, 차라리 부모님 노후 자금으로 쓰세요.”


그래도 꿈이 있었고, 나는 될 줄 알았고, 내 밥벌이는 내가 해낼 줄 알았다. 그래서 했던 거다. 경쟁, 공부, 입학.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런 건 아닐지라도 발밑 빼곡한 상어 떼에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든 발버둥 쳐 동아줄이라도 붙들어 잡아야했다. 문제는 동아줄에 안전하중이 있었던 것. 견딜 수 있는 하중에 포함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쟁이라는 걸해야 했다. 어려서 부터였다. 경쟁에 익숙했던 건. 이번엔 전교 10등 했다. 자랑도 못된다. 아직도 넘어 서야 할 경쟁자 아홉이나 있으니까. 그럴수록 쉼이란 없었다. 학생의 본분 충실히 다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그렇게. 단 한 숨도 쉬지 않고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 매일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열라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어딘가 서러운 유전자 혹은 금 두른 수저. 그 밑에 발발대고 뛰어다니던 나, 어쨌든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은 했다.


정확히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 까지는 성공한 듯한 착각에 살았다.

“됐어. 이제 됐어! 탄탄대로라고!”


이 감정도 오래 가지 않았다. 곧 불안에 휩싸였다. 선배 언니오빠들 보면 알 수 있었다. 다시 경쟁이구나. 동아리 모임에서도 4학년은 보기 힘든 존재였다. 보이는 건 새내기, 그리고 2학년, 3학년 언니 오빠들, 동아리 장이라는 4학년 오빠 한 명. 나머지 언니 오빠는 취업 준비로 정신없다 했다. 동아리 총회날도 보일까 말까 했으니까. 이번에 새로 공고 난 회사 지원을 위해 자소서 쓰기 바쁘다고. ‘4학년은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그리고 3년 후. 나도 똑같은 절차를 밟고 있었다. 새로 고3이 시작되었다.


하나의 자소서를 두고 몇 날, 몇 주를 지웠다 썼다 했는지 모르겠다.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단 말이지. 조사하나에 주는 어감도 영 다르고. 그나마 다행인 건, 경력은 없었다는 거다. 이력 란에 쓸 공간이 텅 비었다. 빈 공간은 없어야, 이제 갓 스무 살 초중반이 된 나에게 A4용지 한 장으로는 모자란 경력이 있어야 뭔가 있어 보이는 건, 괜히 배부른 건 한국인 타고난 병과도 같은 건가. 그거 채우려 어학연수 가는 친구도, 내키지도 않는 봉사활동 하는 친구도 많았다. 한 줄 채우려 반년의 세월 보내던 아이들. 밥도 고봉밥으로 주는 게 미덕이고, 술잔도 찰랑찰랑하게 채우는 게 정이라고 여기는. 아마 한국인의 병인 것 같았다. 병이야 병.


나름 최선의 성의를 다해 준비한 자소서와 이력서를 제출했다.

한 두 번은 까일만했다.


“그래, 나도 그 회사는 사실 후보군 밖이었어. 뽑아줘도 안 갔을걸.”


실패 끝 성공이 더 달달 하다고, 이까짓 까임 쯤이야.

이것도 한두 번 까지였다. “다음 좋은 기회로 인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서너 번이 되고, 그렇게 열 번, 스무 번, 오십 번이 되니. 여기저기 멍투성이가 되어버렸다. 원하는 대학교 입학하는 일이 세상 가장 좁은 바늘구멍인 줄로 알았다. 거기 한 번 통과하겠다고 10kg나 쪄가며 학업에 몰두했는데. 그래. 고된 학창시절이었지만 어쨌든 원하는 대학교 입학은 했는데. 10배 더 힘든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하면 된다 라는 자신감은 어디로 가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더는 취업 준비생도 아니다. 기간이 길어지니 그냥 백수다. ‘정도가 심하다’는 의미의 접두사 개를 붙여 개백수. 그때. 정말 갖고 싶던 게 하나 있었다. 아니, 꼭 하고 싶었던 거랄까. 사원증 목에 걸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며 동료와 웃고 떠들기. 그냥 그게 너무 너무 부러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반드시 사원증 목에 건 채로. 사원증이 무거워 거북이 목이 되도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그랬다. 그리고 지금 그게 내가 되었다. 누군가의 부러움을 사고 있을 사람.

사실 가성비로 따지면. 잘 모르겠다. 유치원까지 합치면 족히 20년은 공부만하며 살아온, 오직 취업. 닥치고 취업. 이 순간만을 위해 준비해온 그 시간, 비용, 노력. 그에 비하면 지금 나의 취업이, 과연 가성비 좋다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봐도 백 번 손해 보는 장사 같지만.


아아.

이럴 때가 아니다. 어쨌든.

아싸! 취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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