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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12. 2020

#2. 화장실 갈 때 마음, 나갈 때 마음 다르더라


퇴사욕(退舍慾) [퇴ː사욕/퉤ː사욕]

[명사] 회사 따위에서 나가기를 바라는 일.


나에게 이런 욕구가 있었다니. 전에는 알지 못했던 감정이 생겨났다. 그렇-게 취업이라는 게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퇴사라는 걸 하고 싶다.


누구도 그랬다. 출근과 동시에 퇴근하고 싶다고. 아마 출근이 있기에 퇴근의 마음이 생기는 거겠지만, 뭐 여튼 그렇다고 했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이거였다. “취업했더니 퇴사하고 싶다.” 취업조차 하지 못했다면 알 수 없던 욕망 이었겠지만 아무튼. 시원한 사직서 한 방이 간절하다.


호시절도 있었다.


“입사를 축하드립니다.”

“감사함미다! 열심히 하겠슴미다!”


또 한 번의 만세 삼창이었다. “됐어. 이번엔 정말 됐다구! 드디어 인생의 완성이다!” 이 순간을 위해 끝없이 달려왔구나 생각했다. 짜릿한 지금을 위해 나 여태 공부해서 대학도 가고 생존하려 아득바득 거리고 그런 거였나 봐. 고3 수험생 시절이 마지막 관문인 줄로, 그렇게 통과한 대학 문에서 취업만 하면 진짜 끝이겠지 하는 심정으로. 그래서 기뻤다. ‘되어야 돼. 합격해야 해. 통과해야 해.’라며 매일 채근만 해대는 나를 만날 일 더 이상은 없어졌다 생각했으니까. ‘먹고는 살 수 있겠구나’와 같은 안도 받았으니까. 딱 그뿐이었겠다만, 어쨌든 취업이라는 그 자체가 나를 기쁘게 했다.


“뭐 먹고 싶냐? 내가 사줄게.”


넘들 보다 조금 일찍 취업했다고 꼴에 부리는 허세마저 유쾌했다. 끽해야 치킨에 피자, 맥주. 그 정도가 다였지만 어쨌든 배고픈 동기 배는 부르게 해줄 수 있다는 넉넉함도 그랬다.


막내라는 이유만으로 받을 수 있던 취급도 제법 좋았다.

“올해 몇 살이에요? 아유 어리다. 그러고 보니 아이유 닮은 거 같네. 앞으로 아이유라고 불러야겠다.”


사원시절, O대리나 O과장 대신 아무렇게나 불리기 쉽던 내 처지에 지나가는 대리님 우리 회사 아이유라며 놀려댔지만, 얼굴은 빨개질지언정 거울 보며 드는 생각. ‘닮긴 닮았나? 흠. 좀 닮은 거 같기도?’ 은근 즐기기도 했더랬다.


쩝.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스멀스멀 생각이라는 게 피어오른다. ‘아. 퇴사하고 싶다.’


취업문 뚫기가 인생 종착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사 이내 깨달았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으니까. 또 다른 경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도대체 언제까지 허덕이고만 살아야 하는 걸까. 취업의 순간, 모든 것 해결될 줄로 단단히 믿고 있던 나에 대한 배신이었다. 또 다른 알아챔도 있었다. 매 달 꽂히는 월급으론 오직 먹고 살기밖에 할 수 없다는 것. 월급 받고 일주일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잔액 부족이래. 이래서 다들 신용카드 하나씩 만드는 건가. 스쳐가는 월급, 찰나를 위해 나, 한 달 꼬박 출근과 퇴근을 반복한 거 생각하면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살기 왜 이리 퍽퍽한 거야. 그럴수록 자꾸만 커지는 원망이, ‘이러려고 죽기 살기로 20년 살았나요.’ 내친김에 한 마디 더 하자면 아이유는 개뿔. 저 좋을 때만 아이돌이고 저 짜증날 땐 애꿎은 나한테 신경질이야. 말할수록 승질이.


목에 걸린 사원증 내치고 싶어졌다. 진정 출근이 하기 싫어졌다.

쥐어 진다면 거북목이라도 앓겠다는 그 다짐은 어디로 가고, 취업했으니 퇴사가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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