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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14. 2020

#4. 1년이 고비


11번의 월급을 받는 동안, 꾸역꾸역 버텨 나갔다. 아마 매달 들어오는 급여가 나를 한 달씩, 한 달씩 버티게 해준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입사 1년차도 머지않았다.


하루하루는 고됐다. 퇴근 후 집에 와 정장바지 벗을 힘도 없을 만큼 녹초 된 상태였으니까. 그때마다 호출했던 건 동생이었다. “언니 잠옷으로 갈아입혀 주라.” 졸지에 말하는 종이인형이 되어버렸다.


출근이란 걸 시작하고 3개월, 하는 일이라곤 회사 매뉴얼 읽기, 오는 전화 몇 통 받기, 교육 받기 정도. 특별히 맡겨진 일도 없었지만 그냥, 지쳤다. 아침부터 저녁나절까지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더듬이 바짝 세워 듣고, 보고, 새기고, 어줍잖은 미소와 함께 인사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내 본캐는 이게 아닌데. 본캐 집에 두고 사캐 데리고 다니려니, 이거 쉽지 않았다.


3개월간의 인턴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일이라는 게 맡겨졌다. 이와 동시에 새로운 스트레스가 찾아왔다. 일 못하는 서러움은 두말 할 것 없었다. 아니, 일을 해봤어야 알지. 어떻게 처음부터 다 알고, 다 잘해. 누구나 시작은 있는 거 아닌가? 더욱이 어리다는 이유로 받는 무시가 나를 끝까지 화나게 했다. 전화 걸어오는 업체 아저씨. 어쩔 도리 없이 목소리에서 드러나는 액면가에 대놓고 아랫사람 취급하기를, 동방예의지국에 예의는 어디다 팔아먹은 거지. 차라리 일만 상대했으면 속 편했을 거 같던, 사람 관계가 제일 어려운 시절이었다.


“욱”하고 올라오는 오바이트를 1년 정도 참았다.

‘1년이면 족하다. 더 이상은 내가 죽겠다.’


월급 12번이면 됐다 싶었다. 어디가 이직할 때도 1년의 경력은 인정해 줄 것 같았고, 아마 월급x12 동안 모아둔 아주 작지만 또 아주 귀한, 당장 몇 개월 라면은 끓여먹고 살 수 있을 그만큼의 돈이 안심하게 만들었다. 굶어 죽기야 하겠냐며.


사람살이 거기서 거기구나 싶다고 느꼈던 건 친구들 덕이었다.

서울에 소재한 어느 회사에 취업했다고 알렸던 친구들이, 1년 만에 혹은 그 즈음으로 다시 연락을 해왔다.


“회사 나가고 공무원 하게.”


웃기는 건 각기 다른 회사, 다른 분위기, 다른 복지, 다른 사람들과 근무했음에도 불구하고 10에 9.5는 같은 이유로 퇴사를 결정했다는 거. 내가 겪어 본 그것 말이다. “고롬 잘 알지. 네 마음 이해한다. 축하한다. 퇴사!” 시원히 외칠 수 있었던 이유. 직장 초보자 매일 같이 느끼는 ‘이건 아니잖아!’와 같은 떠오름이 너희들 그렇게 만들었으리. 그리고 신기하게도. 동기 대부분 차선으로 선택한 일이 공무원이었다는 거다. “안정적이잖아” 혹은 “적당히 일하고 싶어”, 그도 아니면 “그냥 사기업 문화가 싫어”. 여기서 받은 시달림이 그곳에서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나라의 직원으로 일하기. 새로이 각광받고 있는 유토피아인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아이들은 하나 같이 공무원이 되었다. 저 멀리 영국으로 교환 학생을 다녀온 친구도, 호주로 유학 갔다 온 친구도, 대기업에 취업해 우리 모두의 부러움을 샀던 그 친구도.


유학 간다는 친구를 보며 그랬다.

“우와. 가서 몇 년 공부하고 오는 거야? 대단하다.”

오직 공부를 위해, 아마 그 끝도 좋은 곳 취업을 위해서였겠다만, 그렇게 멀리 떠나는 친구를 보며 생각했다. 넌 잘 될 수밖에 없겠다. 부럽다 기지배. 감히 외국에서 공부할 꿈도 꾸지 못하는 형편에 한국과 8시간이나 차이나는 그곳에 오직 미래를 위해 간다니. 그런 친구가 부러웠고, 그 사이 또 뒤처지고 있는 것만 같아 내심 불안했고, 괜한 형편 탓을 하기도 했던 때도 있었다. 물론 돌아온 친구는 남부럽지 않은 회사에 취업을 했다. 축하한다고, 잘 될 줄 알았다며 응원의 메시지 보낸 게 어제 같은데. 거기까지였나 보다. 1년쯤 지났을까. 더는 못 다니겠다며, 공시 준비하기로 했다는 연락이.


“그것도 못 버텨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는 너는 참 잘 버텨 좋겠다.

버틴다는 것. 버티지 못한 누구를 나약한 사람 취급해 버리는 것. 참을 만큼 참았고, 버틸 만큼 버틴 세월에 대한 결정을 오직 이겨내지 못한 나약함으로 평가해 버리는 까닭에 분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입사 1년차. 고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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