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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18. 2020

#5. 점심시간만큼은 내버려 두세요

(이미지 출처 : 구글)


사장님이 정해준 내 점심시간은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딱 1시간이다. 그럼에도 10분의 여유는 인정해 주는 덕에 11시 50분이면 이미 식사시간 시작이다.


제일 먼저 일어나 앉아 있는 우리를 불러일으키는 건, 문에서는 가장 먼, 모니터 창밖을 향해 있어 그 무엇을 보더라도 게 아무도 알 수 없는 그 자리의 주인공. 부장님이다.


“오늘은 뭐 먹나?”


쌩-. 아무도, 그 누구도 대답이 없다. 엄마 매일 “오늘 저녁은 뭘 해먹지” 하던 고민과 같이, 뭐라도 결정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 있었지만, 말해봤자 “그건 좀 별론데” 하실 거 아니까. 다들 누구라도 뭐라도 제안하기를 바라는 눈치 속에 그나마 싹싹하다는 재무팀 대리언니 한 마디 꺼냈다.


“김치찌개에 계란말이 먹으러 갈까요?”


‘그래그래그래. 아무거나 먹자. 점심밥 별거 있냐.’ 메뉴 제안 압박을 언니가 해결해 준 것 같아 마냥 고마웠다. 후. 그 길로 부장님1, 부장님2, 차장님, 대리1, 대리2, 그리고 나. 다 같이 김치찌개 집으로 향했다.


그렇듯, 숟가락 젓가락 세팅은 막내 몫이다. 사람 수대로 냅킨 착착착 뽑아 들어 각 자리에 한 장씩 뉘어놓고, 숟가락 뭉텅이, 젓가락 뭉텅이 집어 들어 짝 맞춰 내려놓는 일. 너무나 자연스레 내 일이었다. 어른을 향한 예우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김치찌개 집에서도 일의 연속이구나. 세팅을 마치고. 아무도 말이 없었다. 3명씩, 3명씩 마주 앉아 각자 팔짱을 낀 채, 조용하다. ‘매일 보는 사이 무슨 할 말이 또 있다고.’ 약간 이런 느낌? 막내인 나라도 나서 재롱이라도 부려야 할 것 같은, 이때도 압박이 나를 꾹꾹 누르고 있었지만 그때 할 수 있던 건, ‘밥아 빨리 나와라.’ 밥이라도 나오면 이 어색한 분위기 해소될 것 같았다. 다들 식사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고개한 번 들지 않고 반찬만 쳐다보는 게, 잘못된 행동이 아니게 될 테니까.


“식사 나왔습니다.”


자리에 앉은 지 5분도 되지 않아 나온 시큼한 김치찌개. 구세주와도 같았다. 잘 먹겠습니다 한 마디 외치고 밥에 코를 박은 채 들이키기를. 한 입, 한 숟갈, 두 입, 두 숟갈. 여섯 숟갈이나 떠먹었을까. 맞은 편 앉아 있던 부장님 한 공기 뚝딱 하시고 물 한 잔 비우며 우리를 내려 보고 있었다.


‘에..에에?@_@’

뭐 이렇게 빨리 마셔. 시간이 흘러도 적응되지 않던 부장님 식사 속도. 나보다 이빨이 2배는 많으신 건가. 아니면 사모님 아침 안차려 주시나. 뭐가 이렇게 급하신지, 우리가 절반 정도 먹었을 때 늘 다 드신 상태였다. 그리고 그 눈빛에 밥이 들어갈리 없었다. 그만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다 먹었다는 무언의 신호로 공기 밥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시고는.


“그거 밖에 안 먹어?”

“(눈빛이 따가워 더는 먹을 수가 없어요.)네, 별로 배고 안고파서요.” 


실은 I am still hungry 상태였다.

밥을 마셔보려고도 해봤다. 한국인 빨리빨리, 점심식사도 빨리빨리. 대충 씹다 적당히 삼키자. 그렇게 간신히 속도 따라잡았다 생각 들었을 땐, 남은 건 더부룩한 속뿐이었다. 부채표 한 병이 간절했다. 점심식사 참 고되다.


점심시간만큼은 자유롭고 싶었다. 내 시간이니까. 퇴근시간까지 버티려면, 중간에 브레이크 한 번씩 가져줘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뻥치는 수밖에.


“저는 오늘 약속 있습니다.”


뻥이고요. 사실 약속 따위 없었다. 없는 약속 만들어냈을 뿐. 친구 회사 앞에서 기다리는 척, 거래처 누구로부터 식사 초대 받은 척, 11시 50분 땡 치자마자 헐레벌떡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단 1분이라도 편히 쉬고 싶던 마음이었다. 그래봤자 갈 데야 회사와 20분 남짓 떨어진 곳 프렌차이즈 빵집 어디겠지만. 빵 한 쪽, 커피 한 잔, 그게 점심밥 다 이겠지만. 그래도 혼자 하는 이 시간이 좋다. 신입 패기, 쉼이란 없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 그런 거 대신 잠시나마 주어진 자유에, 느긋함에 이제야 숨통이 트인다.


점심시간만큼은 사원 말고 ‘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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