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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19. 2020

#6. 내 자리

(이미지 출처 : https://www.fnnews.com/news/200711081929215596)

입사 첫 날이었다.

오늘을 위해 꼬까신도 사 신고, 평생 입어 본 일 없던 정장도 사 입었다. 직장인 코스프레를 위해 치장에만 얼마를 쓴 건지. 첫 월급, 빚내서 산 옷값으로 다 나가겠구나.

어쨌거나 새 옷 입는 일에 신이 났다. 새 옷, 그리고 첫 출근. 예술이다.

장롱 앞 고이 걸어 둔 자켓 걸쳐 입고, 전 날부터 나를 위해 대기하던 구두 신어 집을 나섰다. 밤새 뒤척이는 바람에 잠이 모자랐지만, 상쾌한 두근거림에 피곤한 줄 몰랐다.


약간 이르게 도착했다 싶었다.

여전히 닫혀 있던 사무실 문. 그렇게 누군가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보이는 실루엣.


“빨리 왔네요.”


기다리고 있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재빨리 비밀번호를 누르고는 사무실 안으로 안내하는 대리언니. 문을 열어 들어오란다.


‘크. 그래 여기였지. 불과 몇 주 전만해도 면접자 신분으로 방문했던 이 곳. 다시 만나 반갑다.’

감회에 젖어, 남다른 각오와 함께 사무실 한 바퀴 쭉 둘러보는 데. 다시 한 마디 들려왔다. “여기 앉으면 되요.”


내 자리! 내 자리!

나에게도 자리가 생겼다. 파티션 사이로 한 평 남짓 부여 받은 자리지만, 어쨌든 출근해 일 할 자리가 생겼다. 눈 뜨고 일어나 가야 할 곳이 생긴 거다. 자리에는 신입을 위해 준비 된 새 컴퓨터, 전화기가 놓여 있었다. 단촐 하게, 하지만 깔끔하게 딱 그 정도 준비되어 있었지만, 나를 위해 준비했다는 느낌은 져버릴 수 없어 가슴에는 뭉글뭉글 뭉클함이. 자리에 앉아 가져 온 필기도구 꺼내 구색을 갖추고 있자니 나머지 사람들이 출근했다. “안녕하십니까.”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선배들의 인사와 함께 하루 시작이다.


텅 빈 자리, 하나 둘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와 동시에 좌석 구도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이곳에는 이곳만의 룰이 있었다. 키 큰 사람이 맨 뒤에 앉는 거 말고, 공부 잘하는 애가 맨 앞에 앉는, 그런 거 말고. 사장님 제외, 가장 윗사람, 그 다음 윗사람, 그 다다음 윗사람, 그 다음 아랫사람, 그 다다음 아랫사람 순. 문에서 가장 먼 순서대로 할당된 자리였다. 먹이사슬의 최선에서 차선, 차차선 뭐 그런 거랄까. 그렇게 하나, 하나씩 차지하고 남은 자리, 문과 가장 가까운 자리가 내 차지가 되었다.


“네, 여기 앉겠습니다.”


아무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이 자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 곧 알게 되었지만.


들어오는 게스트 맞이는 온통 내 차지가 되었다. 처음엔 뭣 모르고 가만히 앉아 있었더랬다. 내 손님 아니니, 알아서 방문자 찾아 가시겠지. 그러나 문 앞자리 담당자 책무는, 고거이 아니었다.


“어디서 오셨나요? 어떤 분 만나러 오신 거지요?”


Welcome to my office! 들어오는 손님은 죄다 나를 거쳐야 했다. 회사의 얼굴이기도 한 자리, 상당히 잡무스러우면서 적잖이 까탈스러운 일이 나에게 맡겨진 거다.

찾아오는 손님은 버라이어티했다. 협력 업체 직원부터 사장님 손님, 상무님 손님, 그리고 관리사무소 아저씨까지. 심지어 이런 방문도 있었다.


“언니, 혹시 소녀시대 써니 닮았다는 말 안 들어 봤어요?”


살금살금 들어 와 문 맨 앞자리, 가장 동안스러워 보이는 나를 붙잡고 이야기하는 화장품 언니. 그리고 동시에 시작하는 신상 수분크림 홍보. 척하면 착인지 보자마자 어떤 피부타입이고, 평소 이런 고민이 있었을 거니, 그런 써니 닮은 우리 언니에게 이 제품이 딱 이라며. 덧붙여 평소 사용하는 화장품 종류 및 브랜드 호불호 조사까지. 됐고, 어쨌든 우리 화장품 한 번 써보라는. 샘플 몇 개와 명함 건네주며 정신 혼미하게 만들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 정말, 살 뻔했다.


그 후 때로는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때로는 신용카드 영업직원이 찾아오기도 했다. 흥미롭던 건, 그들의 시도는 나에게 그쳤다는 거. 이 좋은 거 뒷자리 앉아 있는 선배들에게도 공유하면 좋으련만, 나로부터 충분히 볼 일 마쳤다는 듯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문 바로 앞, 그 자리에는 의미가 있었다. 이 자리, 언제 물려줄 수 있을까. 헉. 또 손님 왔다.


“어떻게 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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