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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20. 2020

#7. 아흑, 오늘 휴가였으면

(이미지출처 : 익스피디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우나하♬

뭘 해도 쉬고 싶은 날이 있다.

이유를 찾자면 끝도 없지. 의도치 않게 전 날 과음해서, 유튜브 본다고 새벽 2시 잠에 들어 피곤한 나머지, 남자친구“였던” 사람과 헤어지고 멘탈 가출해서, 늦잠 자고 싶어서, 낮에 혼영(혼자 영화보기)하고 싶어서. 핑계는 많아도 사실 이유 없이 무단결근하고 싶은 날 중 하나일 뿐이다.


지이이잉-.

알람이 울렸다. 일어나란다. 아흑, 듣기 싫어. 알람소리와 함께 무언의 압박이 시작됐다. 이번에 일어나지 않으면 너, 회사로부터 어떤 불이익 당할지 모른다고. 경보다.


무시하고 싶었다.


‘악. 오늘은 정말 출근하기 싫다. 이유는 없지만, 늦잠이 간절하다. 어제 연차 낼 걸.’


전 날 연차내지 않은 아쉬움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어쩐지. 하루 쉬어줄 때가 된 거 같긴 하더라. 아주 찰나였지만 지난 3분에도 많은 생각이 오갔다.


‘왠지 배가 아픈 것 같아. 병가를 낼까? 아니야. 너무 진부해.’

‘급히 볼 일이 생겨 오후에 출근한다고 할까? 그런데 급히 볼 일은 무엇?’

‘솔직해져 볼까? 눈 떠보니 늦잠이 자고 싶어졌다고. 그런데 그렇게 말할 용기가 없다.’

‘됐다. 거짓말하고 마음 불편하게 쉬느니, 얼른 씻고 출근준비나 하자.’


몇 가지 상상에 “출근하는 날은 출근이 답”이라는 결론으로 몸뚱아리 부여잡아 화장실로 향했다. 평소라면 조금의 여유는 있었겠지만, 뭉그적, 뭉그적, 거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이미 이불에서 충분히 게으름 피웠으니까. 전에 없던 분주함으로, 제 시간엔 도착해야 한다는 의지로 분노의 양치질울 시작했다. 중간고사 기간. 시험 2시간 앞두고도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전공과목 생각에 마음엔 안달이나 양치하는 시간마저 아까울 때 있었다. 바드드드드득 바드득. 미친 속도로 칫솔질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동기가 그랬다. 네가 차인표냐고. 그때의 민첩함은 따라잡을 수 없겠지만, 아무튼 그때가 떠올랐다. 상황만 달라졌을 뿐 꼴은 같네.


간신히 제 시간 맞춰 버스에 올라탔다. 연차 쓰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와 함께.


‘진짜 써야지. 이번엔 꼭 써야지. 그리고 평일 하루, 아무조건 없이 쉬어야지.’


단단히 벼뤘더랬다. 덕분에 출근 후 책상에 앉아 맨 먼저 한 일은 달력 펴기. 적당한날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언제가 좋을까. 이왕 쉬는 거, 최적의 날을 찾아야겠다. 일단 금요일은 무조건 탈락이다. 금요일은 출근길도 즐겁거든. 금요일 그 자체로 주는 신성함이 있거든. 월요일도, 적당히 탈락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은 쉬어줬으니 다음 날 출근할 맛 나쁘지 않지. 그렇게 월요일까지 탈락시키니 후보군이 정해졌다. 화, 수, 목. 최고 중 최고의 날을 고르는 거다. 사실 뭐하나 거를 것 없이 연차 쓰기엔 완벽한 날이지만, 그래도 하나만 골라 보기로.


‘오케이 수요일! 수요일 콜!’


수요일, Wednesday 말고 Hump day라고도 불리는 건 아마, 일주일 중 가장 넘기 힘들만큼 높은 날이라 그런 걸 거다. 낙타의 봉처럼 불쑥 튀어나온 산과도 같은 이런 날, 하루 쉬어줘야지. 더욱 완벽한 건 단짠단짠의 조합처럼 월요일 화요일 열심히 일하고, 수요일 하루 쉰 뒤, 목요일 금요일만 출근하면 다시 연휴이니까! 황금 같은 연차가 이 날이로구나. 그때 울리는 전화소리. "따르르르르릉" 다음 주 수요일 무조건 연차를 내기로 마음먹자마자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다. 전화며 메일이 밀려 들어왔다. 헛둘헛둘. 와다다다다닥 정신없이 처리하고 나니, 어느덧 퇴근시간. 이제는 우리가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내일 뵙겠습니다.” 퇴근에 정신 팔려 잰걸음으로 건물을 빠져 나오는데, 뭔가 허전하다. 뭐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수고 했어 오늘도.


집에 가는 길. 생각났다. 연차 낸다는 걸 깜빡했네. 내일은 출근해서 꼭 내야지.

...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수요일. 출근이다.


‘그러지 말고 아무 때나 마음 내키는 대로 쓰기 힘든 연차, 조금 아껴두었다 써야겠다. 간절할 때 요긴하게.’


아끼다 똥 된다던데. 올해도 연차 다 못 쓰고 지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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