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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13. 2020

#3. 사회 초년생 70%, "우울해"


하나부터 열까지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도통 감춤이란 없는 내게,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 버리는 나 때문에, 어느 날. 상무님 나를 불러 세워 이야기 좀 하잔다.


“요새 무슨 일 있나?”

“아니요. 별 일 없습니다.”


말하면서도 울렁이는 속은 어쩔 수가 없었다. 뱃속에도 바다가 있다면 파고 5m 수준. 눈 뜨는 아침이나, 일하는 중이나, 퇴근해서나, 그렇게 앉으나 서나 멀미였다. 그럼에도 이게 사회생활이라며. 최대한 괜찮은 척, 잘 적응해 나가고 있는 듯 짧게 대답하고는 상무님 마지막 한 마디를 듣고 회의실에 나왔다. “앞으로 잘 해보자.”


속으로 생각했다.

‘겁나 티 났나보다.’


가장 괴로웠던 건 기대와 현실 사이 괴리였다.

잘 살기 위해 열심히도 살았다. “좋은 대학교 입학해야 인생이 달라진다.”라거나 “취업 잘해야 시집 잘 간다.” 라는 말. 귀에 박히다 못해 결국 주입된 인식. 잘못된 교육의 결과가 나였을지 몰라도, 어쨌든 그것이 인생 참맛이고 성공이라 하니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이기겠다 다짐해 놓고도 불쑥 찾아오는 지침의 순간도 있었지만. 그리고 그때, 유일하게 나를 지탱해 줬던 건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이번엔 진짜겠지’하는 바람 뿐. 그렇게 나를 다독여 가며 이 앙 물어가며 어떻게든 통과해 내긴 했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 나에게는 그런 일이었다. 취업을 위해 버텨온 시간. 열심히 살아냈다.


‘이정도면 어디 가서도 인정받을 각이지.’


내가 나 과대평가 한 거야? 이곳에서 나는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거 같지? 전공 지식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 저 하기 귀찮은 일만 다 나를 주는 꼴이. 짜증 싹쓰리 끌어 모아다 내게 던지는 꼬라지가, 온종일 눈치만 보고 있는 처지가, 싫어도 좋은 척 좋아도 좋은 척해야 하는 억지스러움이 현실이었다.


내가 그리던 이곳은 유토피아였다. 자아실현의 장이 바로 직장이었고, 그리고 그것은 잘 살아온 나에게 주는 보상과도 같을 거라 생각했다. 이만큼 준비된 탓에 저만한 대우는 받을 줄로 알았는데. 기대가 큰 탓에 현실과의 괴리, 딱 그만큼 마음에 파도가 쳤다. 울렁울렁. 이러려고 공부한 건 절대 아니었는데. 어디서부터 차오르는 억울함인지. 억울해도 참아야 하는 게, 사회생활이라는 게 이런 건 줄은 미처 몰랐다.


사원으로 사는 게 그런 건가보다.

유일하게 알고 있던 푸는 방법, 먹기. 퇴근 길, 집 앞에 위치한 빵집에 들러 밤 식빵 한 봉지 사들고 가는 일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옷 갈아입기 바쁘게 봉지 뜯고는 한 겹, 한 겹 결 따라 파먹기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다. 티비 틀고 앉아, 생각 없이, 앞에 놓인 밤 식빵 쥐어파 먹는 일. 그렇다고 멀미가 사라 질리는 없었지만, 울렁거리는 속 잠시 눌러줄 수는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얻은 건 빵빵해진 얼굴과 늘어난 뱃살 뿐.


한 많은 초년생이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건 저도 잘. 차장님께 여쭈어 봐야 할 거 같아요.”


입사하고 채 5개월 되지 않은 나에 대한 배려 따윈 없었다.

그들은 나에게 5개월 만에도 모든 걸 알아내기를, 프로페셔널이 되기를 바란 듯 했으니까. 어떻게 하라는 설명 없이 ‘해와’ 한 마디에 할 줄 알아야 했으니까. 그럼에도 할 수 있던 말 “네? 네. 알겠습니다.” 이상한 사원부심이 있어 모르는 것은 없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에 연신 “네”만 하고 자리에 돌아오기 일 수. 그리고 하는 일 사수에게 물어보기. 실수가 무서워, 그렇게 듣게 될 꾸중에 자존심 상해, 그나마 만만한 사수에게 하나하나 다 묻는 길 밖에 없었다. 의지한다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실감하던 사원 반년 차였다.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뭐.”


처음엔 친절히 대꾸해주던 선배가 시간이 지나고 변해갔다. 자꾸 묻는 나 때문에 귀찮아진 모양이었다. 질문이 죄가 되어버린 탓에 더는 묻기가 미안해졌다. 동시에, 사수는 내게 더 이상 선배가 아니게 되었다. 사수새끼다.


크. 그나저나 나 어떡하지. 내 멘탈이 더 버텨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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