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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17. 2020

#21. 여기선 사장, 밖에선 아저씨 아니유?


우리 사장 올해로 쉰아홉, 내일 모레면 6학년 입학이다. 나이로 따지면 부모 뻘 즈음의 사람. 나의 엄마에 비하면 2살 뿐이 많지 않고, 돌아가신 아빠보다는 1살이나 덜 산 그분. 그럼에도 마음껏 칭얼댈 부모는 아니고, 깍듯이 모셔야 하는 직장 최고위 상사, 사장. 직장 내 서열이 그렇다. 과장보단 차장이, 차장보단 부장이, 부장보단 사장이 더더더 어렵고 훨훨훨 불편하다. 아빠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사람이, 내게는 그렇다.


문득 비상한 생각이 든다. ‘사장님 여기서나 사장이지, 밖에서 만난 사이라면 그냥 아저씨 아니야? 맞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와 당신 만난 곳 단지 당신의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사장”과 “직원”이 된 거니까. 퇴사라는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라도 아저씨라 불릴 수 있는 게 그 자리니 말이다. 불현듯 상식적인 상상을 한 후, 사장을 보는 시선 어쩐지 편안한 건 뭘까. 그러고 보니 옆 집 아저씨랑 닮은 거 같기도.


사장의 변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직원 가족과 함께한 대대적 저녁식사 자리였다. 사장 이따금 식사 자리를 추진하는데, 다른 날과 다른 점이라면 그 날은 과장의 독자도 참석했다는 것. 어쩐지 낯익은 네다섯 살쯤의 남자 아이었다. 다 늙은 과장 다섯 살로 돌아간다면 꼭 그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과장 주니어는 귀여운데 과장은 안 귀엽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과장 주니어는 과장과 달리 천진난만했다. 무엇을 위한 만든 자리이며 왜 때문에 한데 모인 건지는 모르고 엄마가 가자고 해서 나선 길임이 분명했다. 차분한 우리와 달리 똥그란 두 눈을 하고 연신 소리치며 웃었는데, 그런 그 애 때문에 나는 식겁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오랜만이네. 할아버지가 용돈 줄까?”


‘하..하하..하하할..아버지? 사장님이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가 이 할아버지?’


감히 나는 할 수 없는 부름이 그 아이 입에서 나온 거다. 묘한 쇼킹이었다. 아직 부모로부터 그 분 존재 일러듣지 못한 탓일까. 모르는 게 용기라고 아이는 몹시 당당히 할아버지라 외쳤고, 그런 자신을 뿌듯이 여기기도 했다. 반면 나는 아찔했다. 아저씨에 불과하다는 상상은 해봤어도 입 밖으로 낼 깜냥은 없으니까. 그런 내게 사장이 “할아버지”로 불린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랬다. 사장은 아저씨였고,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과장 주니어를 향해 할아버지 미소를 뿜어냈다. 지갑 열어 오만 원 권 신사임당 한 장 쥐어주며, “맛있는 과자 사먹어.”라며 넘치는 과자 값도 지불했다. 사장이 할배가 된 순간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는 거다. 늘 공손해야 하고, 잘 보이면 이왕지사인, 가장 부담스러운 존재가 산타클로스와 같은 존재가 되어 있다니.


직장이라는 전투지에서 만난 이유로 우리는 또 다른 탈을 쓰고 있었나 보다.

경미에게 불리는 ‘까불이’라는 내 별명 이곳 사람들 확인할 길 없는 것처럼, 우러러 보기만한 사장도 어쩌면 한없이 평범한 사람일지 모르는 일이다. 내가 그냥 동네 언니인 것처럼, 사장도 그렇게 이웃집 할아버지.


여기서나 사장, 밖에서는 아저씨 아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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