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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15. 2020

#20. 퇴사욕구와 이직의 계절


이별 후 한 번의 거센 후폭풍과 함께 퇴사욕구라는 것이 떠밀려 왔다. 입사하고 1년, 강하게 일던 그때 그 욕망 다시 찾아 온 거다. 몇 년 만의 조우인지. 불평 없이, 만족하며, 적응하며, 잘 물들고 있다 생각했는데. 반항이 생긴다. 나가고 싶다.


내게 아무 일 없을 땐, 회사생활도 아무 탈 없었다. 보기 좋게 적응해 꼬라지 같던 상사 모습 나에게 깃들었을 때도, 핵노잼이던 아재 개그에 이제는 피식 거리는 나를 보면서도, 더는 매슥거리던 속과 함께 출근하지 않게 되었다는 일상에 감사했을 뿐이다. 매 달 꽂히는 월급도 한몫했고.


반발이 생긴 건 회사가 원망스럽기 시작할 즈음이다.

슬픔에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해 출근하기 죽도록 싫지만, 심지어 썩어가는 얼굴 미소로 화답해야 하는 자유 없음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회사는 아무 죄가 없으나, 그 자체로 잘못인 셈이다. 불똥이 엄한 회사로 튀었다. 전처를 밟아 훨훨 자유의 영혼이 된 임 오빠가 떠오른다. 입사 6년차, 퇴사를 고하던 사수가 그랬다. 가을이란 이직의 계절이라고.


“왜요?”

“나도 몰라. 보니까 가을에 이직이 잦더라고. 많이 나가고, 나간 만큼 뽑고. 오빠도 곧 나간다.”


사수의 경우 이직대신 유학이라는 점만 달랐을 뿐, 시원하게 퇴사욕구를 성취한 케이스다. 여친이랑 헤어지더니 안하던 공부가 하고 싶어진 모양이었다. 인생은 love myself, 자기계발 핑계로 저기 노란머리 나라에 가 반년 지내고 올 거라 했다. 사수는 내게 고민 상담하려던 참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 어지간한 사생활, 사적인 생각은 노출하지 않는 게 이곳 불문율이니까. 언제 하는 퇴사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이 될 수 있을지를 숱하게 고민 했을테고, 인수인계까지 염두에 둔 적기가 지금이라 이제 말한 것 뿐 일 테다. 진작 내린 결론에 한껏 차분한 사수와 달리 들썩인 건 주변이었다.


“네 인생 네 선택이지만, 잘 생각해. 옳은 선택인가. 서른 중반 다 되고 영어 공부하러 가는 호주가 웬 말이냐.”


어른들은 그랬다. 격한 축하 대신 재고의 기회를. 잘 다니고 있는 직장 때려 치는 게 웬 말, 호경기도 아닌 데 귀국 후 어디하나 받아주는 곳 없으면 뭐 먹고 살 거냐고. 그러고 보니 곽 동기 퇴사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전공 버리고 마음 가는 일 찾아 떠나겠다는 동기에게, 지나가던 차장, 부장, 상무, 사장은 말했다.


“잘 생각해. 옳은 선택인가. 이제와 쌩 판 새로운 길을 택하겠다니. 생각보다 세상 호락호락하지 않다.”


둘은 가볍게 무시했고, 실행에 옮겨 곧장 퇴사를 밟았다. 한 발치 뒤 나는, 용감한 사수와 장한 동기를 존경과 시샘의 눈으로 훔쳐볼 뿐이다.


“뤼스펙트.”

“잘 있어라. 오빠는 간다. 놀러 올게.”

“믿지는 않지만, 네. 언제든 사무실 오세요. 연락 주시고요.”


회사를 떠나겠다는 욕구와 욕구를 실행한다는 것. 누구에겐 쉬운 일이 나는 왜 어려운 건지.

올해로 9번째 가을을 맞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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