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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11. 2020

#18. 헤어졌어도 출근은 해야하니까(3일차)


말라가는 눈물과 함께 극강의 슬픔도 잦아간다. 이것도 적응이라면 적응이고.


지난 이틀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눈물로 지샌 밤이다.

실컷 짜고 나면 아침이 밝아왔다. 밤이 지나 아침이 오듯, 나 또한 습관처럼 제 시간에 일어나 간단히 물 한 잔을 마시고, 씻고, 출근길에 올랐다. 그러길 오늘로 3일차. 단 이틀로도 바지가 헐거워질 수 있음을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도 물은 마셨고,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땐 주스도 한 잔 들이켰는데, 살이 빠진다. 빼고 싶어 안달일 땐 빠질 기미조차 안보이던 살이 드디어 덜어진다. 다이어트엔 마음고생이 최고라는 누구 말이 스쳐간다. 가뿐히 들어가는 바지에 몸은 가볍지만, 이런 식의 다이어트 더는 원치 않아.


안색이 똥이 되어간다.


“어디 아프니?”

“괜찮아요. 별 일 없어요.”


별 거 없거나, 별 일 없거나, 괜찮다는 말엔 숨겨둔 의미가 있다. “더는 묻지 마세요.” 와도 같은 대답엔 사실. ‘며칠 전 사귀던 놈한테 차였고, 그래서 몇 날을 꼬박 울고 있는데, 가슴이 먹먹해 결근하고 싶다가도 먹고 살아야 돼 어쩔 수 없이 나와요.’ 모든 속내 다 들어낼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아 그저 괜찮다고 했을 뿐이다. “안 괜찮다” 말하는 순간 화장실로 뛰쳐 갈까 겁이나 그런 거기도 하고.


가출한 영혼으로 사무실 육신은 책상 오른 편 놓인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다. 이미 두 눈과 온 마음 폰에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이 없다. 그리고 그런 내가 나는 참 싫다. 애써 부인하지만 또 다른 관계로써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니까. 삭제는 했지만 차단은 하지 않은 사이. 마지막 미련의 틈이다. 젠장. 그래도 이 짓은 피했다.


카카오 프로필 대화명

“돌아오r주ㅓ.......ㅠㅠ”


시간에 한 번씩 바뀌는 모 양 프사 보고 참으로 “청승맞다”는 단어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해가 부족한 건 아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었겠지. 수정 또 수정하며 그가 알아봐 주기를, 재회를 기다림이 전달되기를 바라던 순수함이었겠다만. 그건 좀 아니었다.


업무가 잡히지 않는다.

당장 해야 할 일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흘려보낸다. 미루고 미룬다. 마음과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더는 곁눈질로 핸드폰만 바라보지 않을 때까지. 아무래도 공과 사의 철저한 구분이 나에겐 불가능 한가봐.


나도 잘한 건 아니니까. 미안한 것도 많고 고마운 게 더 많은데.

미안하다고 하면 받아 줄까.

아니야, 됐어. 끝난 건 끝난 거야.


다른 말 같은 의미로 반복하는 세 생각에 갇혀 이번주 업무를 마치지 못했다. 월급을 훔쳤다는 괜한 죄책감에 다음 주는 조금 더 나아진 무드로 출근하기를 바랄 뿐이다.


당장 이번 토요일부터 한량이다. 나의 주말은 자연스레 너였는데, 도로 내 것이 되었다.

어쩐지 낯선 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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