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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10. 2020

#17. 헤어졌어도 출근은 해야 하니까(1일차)


살면서는 벼라 별 일을 다 겪는 중이다.

남들 한 번쯤 해본 일도, 열에 하나만 겪게 되는 경험도, 그저 조금 빨리 아파본 사연도. 그래봐야 경중이란 버티느냐 못 버티느냐 정도의 일일 뿐이고, 처음인가 아닌가의 일만 있을 뿐이다. 인생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런가 하면 겪고 다시 겪어도 적응되지 않는 일도 있다. 매번 신선하기만하다.


어제, 사귀던 사람과 헤어졌다. 켁. 이별은 주중과 주말을 가려 찾아오지 않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나인 투 식스, 사무실 어디에 앉아 메일과 처절한 씨름 벌여야 하는 나에게 수요일 맞이한 헤어짐은 악 중 악인 걸 모르는 모양이다. 사적인 나는 어떨지라도, 공적인 그곳에 나, 깨끗하게 밝게 자신 있게 웃고 있어야만 하는 것도 잊었는가 보다. 직장인인 내게 주중 맞이한 헤어짐은 여간 곤욕이었다.


티끌 같았다.

아주 작은 질문으로 시작한 얘기 불씨가 되 화(火)로 번져 이별의 재가 되었을 뿐이다. 아마, 그 자식은 불씨만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너랑 더는 못 사귀겠다. 연락하지 마라. 알겠나?”

“어?”

“연락하지 마라고. 뚜뚜뚜뚜.”


 만난 마냥 화를 냈고, 화를 입은 나는 수화기 너머 어버버 대다 일방적 이별을 당했다. 사고를 통해 말이라는 걸 뱉어야 했는데, 멈춰버린 회로 덕 말을 잃었던 것 뿐이다. 어버버 속 하고 싶던 말이 있었다. 참아 온 건 난데 짜증은 늘 네 거냐고, 게다가 나는 오늘 너에게 차였다고. 이별 앞 1분짜리 분노, 정적이 흘러 결국 나는 울었다. 엉엉. 만나며 앓게 만든 사람이라 참으로 잘된 일로 여기면서도, 헤어짐그게 아니었다.


불과 10분 사이 여자친구 자격 박탈이다. 극에서 극으로 치닿은 사이, 남보다 못한 남과 여가 된 거다. 좋거나 나빴던 흔적 모두 휴지통 행이어야 하고, 묻고 싶은 일 떠올라도 더는 참아야 하며, 그렇게 자국만 남기고 떠나 간 자식. 전에 해본 이별과 닮아 있어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가슴에 먹먹함 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실감할수록, 헤어짐으로 인한 일련의 과정 생생할수록 울음은 거세졌다.


자다 놀란 동생이 기어 나왔다.

왜 우냐는 물음에 헤어졌다 하"에이. 뭐야." 하며 싱거운 미소와 사라졌다. 슬픔은 오롯이 혼자의 몫이 되었다. 헤어짐이 그렇다. 젊은 날 많고 많은 경험을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 연애 한 번이면 이별도 한 번 따라오는 것, 그것이 반복 되 이별에도 공식이 만들어지는 것. 나도 해봤고 너도 해봐 “뭘 그런 거 가지고 울어. 나도 다 해봤어 그거. 안 죽어. 혼자 죽는 척 하지마. 그거 아냐, 똥차 가고 벤츠 온 뎄어. 알아서 꺼져 준 똥차한테 감사해라.”라며 너스레 떠는 친구 앞 피식대는 일. 잘 알지만, 새벽 내도록 소리 내 울었다.


옆 집의 컴플레인 약간 신경 쓰였지만, 개의치 않고 울부 짖었다. 지칠때까지 울었나 보다. 곧 탈수증상이 오고, "습습습 어~습습습 어" 하는 템포 섞인 숨소리로 물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다시. 방음도 되지 않는 이불 덮고 악을 쓰며 울다 부엌에 가 물 한 컵 마시고 다시 이불로 들어가. 마시고 질질 짜고를 새벽 3시까지 반복했나보다. 출근 5시간 남았다. 헤어져도 출근은 해야 하니까. 몇 시간 못자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번쩍 정신 들어 내일 다시 울기로 하고, 훌쩍이며 이만 눈을 감았다. 숨이 고르지 못해 잠이 오질 않는다. 나쁜새끼. 자야되는데 잠이 오질 않아. 잠이 오지....잠이....잠....ㅈ..



같은 날 아침.

눈이 퉁퉁하다. 깜빡거리기 쉽지 않을 만큼 부었다. 야식으로 먹은 라면으론 설명 되지 않는 붓기다. 사무실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올 게 빤하다. 난감한 그 순간, 어떤 설명으로 가볍게 넘겨야 할지 고민한다. 라면, 모기, 밤새 본 새드무비, 그냥 살 찜. 소란스런 아이디어로 잠시 울적함에 벗어났다.


어떻게 씻고, 가까스로 버스를 타 출근은 했다. 습관은 무섭다.


“쟈대리 무슨 일 있어? 밖에 자주 오가네.”


밤새 쏟아냈던 눈물 아직 남아있나 보다. 부산에서 온 박대리 말투만으로 어제 들은 통보 "연락하지 마라고. 알겠나?"가 떠올라 왈칵 쏟아져 버릴 것 같다. 그럼에도 여기선 울 수 없다. 이곳은 직장이니까. 그리하여 피신의 장소 화장실로 뛰쳐갔다.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변기 위 앉아 울다, 마음 추스르다, 사무실로 복귀했다, 다시 화장실로 뛰쳐 갔다가. 대여섯 반복하니 퇴근이다. 피 마르던 9시간이 종료됐다.


새로운 장르의 헤어짐을 맞이했다. 직장인의 주중 이별. 양껏 슬퍼할 수 없어, 슬픔에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극한 이별이다.


이전 16화 #16. 욕하던 그가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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