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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14. 2020

#19. 헤어졌어도 출근은 해야 하니까(30일차-해탈)


열반의 경지에 올랐다.

그 자식과 나, 지나간 ex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과 집착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해탈에 이르렀다. 지난 연애는 30일짜리였다. 내 너를 만나며 마음 고생한 일 떠올라 울부짖던 한 달도 아깝지만, 이제는 정말 빠이 쨔이찌엔. 잘 가라.


쿨한 척 해도 사실 말도 못하게 오르내리던 시간이었다. 울다, 통곡하다, 짖다, 멍하다, 분노하다, 욕하다, 웃다, 먹다, 후회하다. 시간에 따른 심리 변화 굴곡 롤러코스터 급이라 그 사이 이별의 아픔 공유하기도, 솔로 됨 축하 받기도 했다. 바람 잘 날 없던 날들. 그럼에도 미련이 남아 차단은 미뤄뒀는데, 오늘은 용기가 생긴다.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시면 차단한 전 남친이 보내는 메시지를 받을 수 없으며, 친구 목록에서 삭제됩니다.”

“ㅇㅇ넵. 차단 부탁해요.”


서서히 나로 돌아온다.

부장님 몹쓸 개그에 “그건 좀 노잼인데요. 푸하하하”하며 재미없음을 노잼이라 말하게 되었고, 리드미컬한 업무 처리로 이전의 효율 되돌아오고 있다. 놈을 완전히 잊어간다. 잔잔해진다.


“알음아, 이거 언제쯤 송금 되?”

“...어? 어 잠깐만.”


‘애가 정신이 나갔네. 나갔어.’


회사 후배 알음이 맛이 갔다. 그리고 걔한테 지난 내가 보인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 잿빛을 한 피부 톤, 부은 눈. 새벽 내 뜬 눈으로 핸드폰만 보고 있었는지 애가 퀭하네. 못 봐주게 안쓰러운 칙칙한 얼굴로 핸드폰이랑 화장실만 들낙인다. 조금 먼저 경험해 본 나는 알 수 있다. 지난 밤 이별을 맞았구나.


첫 연애, 처음해본 이별. 극악무도 잔인한 것이 헤어짐이라는 사실을 첫 경험한 알음. 그 아이를 보며 잊고 있던 그때 알음알음 떠오른다. 뜬 눈으로 울다 잔인한 출근을 맞이한 겨울 어느 날. 조금만 참다 설날에 말하지 하필 주중에 헤어지자고 해가지고는. 슬픔에 때와 장소를 가려야 했던 직장인 내가, 너에게도 보인다.


어떤 위로는 하지 않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걸 알기에, 그저 지켜봐 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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