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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19. 2020

#22. 어쩌다 과장


과장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내가 바란 건 월급 인상 그 뿐, 월급만 오른다면야 만년대리라도 만족 하겠다 했다.


반면 사원에서 대리로 가는 길은 매일이 기도였다. “얼른 대리되게 해주세요. 조만간 되겠죠?” 그때도 바랐던 월급 인상은 말할 것 없고, 내겐 없던 직위가 그렇게 탐이 났다.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성과 대리의 조합, “쟈대리.” 버팀의 성과로 마침내 대리라는 소리를 듣고, 나는 기뻤다. 그랬다. 그땐 그랬다.


대리가 과장이 되는 것은 퍽이나 시시한 일이다. 대리나 과장이나, 과장이나 차장이나. 차장에서 부장 진급이라면 모를까.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38살이나 40살 개찐도찐, 대리나 과장도 개찐도찐. 대리 때 맞먹던 과장 생각하면 더욱 별 볼일 없는 것이 그 직위다. 너무 시시해 할 말이 없을 정도인데, 그래도 몇 가지는 떠오른다.


대리가 되고 업에 대한 희망이 줄었다.


‘자아실현의 장’

‘유토피아’

‘지난 십수년 책상에 앉아 눈 부릅뜨고 공부한 것에 대한 보상’


이것은 허와 실의 구분 없던 나에게나 존재하던 이야기였다. 해보니 그렇다. 직장은 철저히 직장이다.


아침이면 눈을 떠 자리에서 일어나 양치와 세수를 한 후 옷을 차려입어 출근을 하고. 하루 대부분을 회사를 위해, 소정의 월급을 위해 일하고. 퇴근 길 유튜브 먹방을 보며 저녁 메뉴를 선택하고. 이 같은 일과를 주에 5번, 월에 20번 반복하고.


오색 찬란 꿈꾸기 대신 무채색의 고루한 루틴이 고용된 삶이라는 걸 알아버린 거다. 도리는 없었다. 무언가를 시도하기에 나는 너무 게을렀다. 타성에 젖어 더는 이 울타리 밖을 나갈 마음이 없기도. 원하는 때 외식 한 번 할 수 있고, 비록 할부지만 갖고 싶던 옷도 사 입으며, 명절엔 용돈이라는 것을 드릴 수 있다는 현실에 불만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저 주말에 하는 친구들과의 맥주 한 잔 속없이 즐거웠다. 이상적 희망이란 7일 마다 찾아오는 주말뿐이랄까. 그러다 이것도 물려졌다. 시시할 것 없는 반복에 질린 거다. 가슴 뛰지 않는 삶, 심장은 늘 열일 중이나 어쩐지 박동하고 있지 않는 듯한 움직임. 살아있는 내게 뛰지 않는 가슴은 마치 생을 잃은 것과도 다른 게 없었다. 그럴수록 꿈으로 가득하던 내가 그립기만 하다.


어른이 되어 갈수록 또 다른 인식의 정도와 새로운 고민을 맞이한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쟈대리”소리 듣는 게 작지만 큰 소원이었는데, 돌아가고 싶어진다. 대리되기 전, 입사 합격도 하기 전, 취업 준비도 하기 훨씬 전인 공부하던 나로. 어림잡아 8년을 이곳에 보낸 탓에 또 다른 나를 꿈꾸는 일이 어쩐지 겁이 나긴 하지만, 그러다 과장을 맞이한 거다. 딴 생각하다.


그랬다면, 저랬다면, 그래서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다른 내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이래저래 어찌저찌하다 과장이 되었다. 크게 달라지는 업무도, 차별화된 대우도, 특별한 내가 된 것 같지도 않은 진급. 어쩌다 과장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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