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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21. 2020

#23. 업(業)의 의미


“ㅈlㄱㅇㅓㅂ(직업)”

(엔터)


누군가 내게 “직업이 뭐에요?” 혹은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을 때 마다 자동적으로 나오는 대답이 있었다. 나는 모 산업군에 종사 중이며 개중 이만큼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다고. 어떤 때는 ‘나’라는 사람보다 ‘내가 하는 무엇’에 무게가 더 실리기도 했는데, 그럴수록 거추장한 미사여구로 업을 치장해 보였다. 쟈스민 이퀄 업으로 보는 이들 시선에서, 나는 그랬다. (“이들” 중 하나가 나였음도 부정할 수는 없다.) 새로 만나는 사람마다 8년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꿈에서도 읊을 정도였고, 그런 나에게 어떤 순간이 찾아 온듯하다. 나는 왜 이 일을 업으로 삼고 있으며, 의미는 알고나 했던 답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초록창을 켜 뜻을 찾았다. 이럴 땐 검색이 최고지.


직업(職業) : 생계유지를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먹고 살기 위해 소질과 능력에 따라 하는 일이 직업이라면, 우선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종사는 맞았다. 월요일이면 좀비처럼 일어나 가기 싫어도 출근이라는 것을 하고, 오늘 하루 늘어져라 쉬고 싶지만 월급을 담보로 한 회사와의 약속에 떠밀리듯 일하러 가야하는. 휴가 한 번 내려면 일주일은 미루고 벼루다 가까스로 하루 쉬는 인생, 다 밥은 먹고 살라고 하는 거니까. 그러나 하나가 틀렸음을 발견했다. 소질과 능력에 따라 하는 일이 직업이라면, 지난 8년의 반복적 대답 거짓되었음을 사과해야겠구나.


나의 소질과 능력은 공학(工學)에 있지 않다.

사실 국어가 싫어 이과로 도망쳤고, 운 좋게 수학과 과학에 흥미를 느껴 어렵잖게 공학이라는 전공을 택했을 뿐이며, 대학은. 게중 취업에 용이한 곳으로. 그나마 대학교 4년간 배운 지식 써먹으며 벌 수 있어 다행인지도 모른다. 전공과는 단 1의 관련도 없는 업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도 많으니까. 남보다는 운이 좋아 잘 끼워 짜 맞춘 지난날들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치열했고, 열심히였다. 그러나 어쩌면 모두 M사이즈인 내 몸뚱어리에 맞지 않는 S사이즈 옷을 끼워 입으려는 부단한 시도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알아가는 순수한 희열보다 빨간펜으로 그리는 동그라미 채점 하나에 히죽거리던 나를 보면. 잘 하고 있는 줄로 착각하며 지냈다는 사실을, 나의 재능 엉뚱한 곳에서 발견 되었을 때,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간 떠들고 다녔던 나의 직업은 직업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으니까.



요즘 내 상념은 사회계층을 나누는 새로운 기준이 “나의 주된 고민은 무엇인가”가 될 수 있다는 거다. 가장 기본계층이 먹고, 살아가는 일에 대한 고민을 주로 하는 것이라면, 그 다음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 계층. 그런 걸 보면 나는 감사해야 마땅하다. 내가 하는 “업의 의미”에 대한 고민은 아마 먹고 사는 고민보다야 사치스러운 일일 테니. 누구에겐 죄송하며 참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자꾸만 질문이 쏟아져 내린다. 어쩌면 배부른 소리라는 것도 알면서.


“당신은 그 일을 왜 하시나요?”

“당신에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나를 규정하는 업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볼 일이라는 걸. 나는 이제야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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