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입에 밥이 들어가는 밤

토요일 밤의 콩나물밥

by 지언 방혜린

요즘 한창 기말고사를 치르고 있는 K-고딩 아들은 이른 아침 집을 나서면 학원, 독서실, 스터디카페를 전전하며 하루를 보낸다. 공부가 잘 안 되는 날은 밤 12시에, 잘 되는 날은 새벽 1~2시에야 집에 돌아온다. 그러니 자연스레 삼시세끼를 밖에서 해결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나 역시 요즘 ‘코치’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아들 얼굴을 오래 들여다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코치 연수를 받느라 하루 종일 집중을 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들어온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긴장이 풀어지면서 숨죽은 파김치가 되었다. 체력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잠시 쉰 다는게 다 저녁 잠이들어 버렸다.


그대로 두었으면 내일 새벽에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깊은 잠에 빠져든 나를 깨운 건 아들이었다. 아들이 토요일 저녁 오랜만에 집에서 공부를 한다고 일찍 귀가한 것이다.

집으로 들어오면서 큰소리로 나를 부른다.


“엄마, 밥~”


예전에 아들에게 “엄마 이름을 ‘밥’으로 개명할까?” 하고 농담을 던졌다가 둘이 한참을 웃은 적이 있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처럼, 나 역시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물 먹은 솜방망이처럼 꼼짝도 못 할 것 같던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빠르게 스캔한다.

콩나물 한 봉지, 표고버섯, 계란등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 어린 시절, 열심히 집밥을 지어 먹였음에도 역시나 우리 아이들 키운 많은 지분을 차지한 식재료는 계란과 김 그리고 콩나물이다. 냉장고에 이 ‘3종 세트’가 떨어지지 않게 채워져 있어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그 습관은 지금도 이어져 마트에서 장을 볼 때면 계란 김 콩나물은 언제나 기본값이다.


시간은 어느새 밤 9시. 늦은 저녁이니 자극적이지 않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좋겠다 싶어 콩나물밥으로 정했다. 콩나물을 데쳐 한 김 식혀두고 데친 물로 밥을 짓는다. 갈아진 고기를 볶아 고명으로 올릴 고기 소보로를 만든다. 표고버섯도 볶아두고, 계란후라이 반숙까지 하면 모든 메인 준비는 끝. 양념장에는 생 들기름을 듬뿍 넣어 만들어 풍미를 더한다.


비빔밥은 언제 어디서나 믿고 먹을 수 있는, 참 안정적인 메뉴다. 집에서 만들어도, 밖에서 사 먹어도 크게 실패할 일이 없다. 든든하고 영양까지 보장하는 완성형 일품요리. 밥이 완성되어 가자 “안 먹겠다”던 가족들이 하나둘 식탁으로 모여든다. 늦은 저녁 겸 야식으로 즐긴 콩나물비빔밥. 맛있게 먹어주는 얼굴을 보니 음식 할 맛이 난다.


경기가 좋지 않아 계란과 우유마저 소비가 줄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콩나물은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에게 가장 만만하면서도 푸짐한 식재료다. 콩나물무침은 물론이고 콩나물찜, 콩나물잡채, 오뎅김치콩나물국, 김치콩나물죽, 콩나물국밥, 콩나물불고기까지 변주와 응용이 끝이 없다.


하루 종일 겨울비가 촉촉이 내리던 토요일 저녁, 콩나물 한 봉지로 우리 가족의 식탁에 또 한 페이지의 추억을 더했다. 내일은 마트에 들러 떨어진 콩나물을 다시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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