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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체험 #02

엄마의 바람: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들로

by 지언 방혜린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나와 같이 오래도록 어린 시절 자연과 함께한 보물 같은 추억이 머리에 가슴에 눈 코 입에 깊이 새겨 저 행복함을 간직하길 바란다. 어린 시절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나는 환경을 활용하여 놀 줄 알았다. 지금처럼 각종 놀거리 먹거리가 풍부하던 시절도 아니었거니와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나는 꽤나 호기심 많은 말괄량이 소녀였던 듯싶다. 주변에 무엇이든지 놀 거리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스스로 노는 법을 잘 모른다. 장난감이 차고 넘치는데도 항상 '심심해 심심해'를 주문처럼 읊조린다. 손에 쏙 들어오는 핸드폰을 터치만으로 종일 보면서 폰을 그만 보라고 하면 그때부터 또 심심하다고 했다. 많이 안타까웠다. 오래전에 카카오스토리에 남긴 메모를 꺼내 보았다.


엄마~ 눈이 온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온 아이들이 창밖을 보며 탄성을 지른다.
밤사이 만개한 벚꽃나무가 정말 눈송이 같기도 했다. 아파트 4층에 사는 우리 집은 사시사철 눈높이에 나무의 색이 바뀌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값비싼 한강의 리버뷰는 아니지만 발아래 끝내주는 벚꽃뷰를 품고 사는 우리 집을 우리 가족은 너무 좋아한다.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담근 레몬청이 맛나게 숙성되어 꽃구경하며 매일 한잔씩 하는 호사스러움을 누린다.
2015. 4. 9 봄날


지금 사는 곳은 집 앞에 나가면 바로 수로가 있다. 인공수로이지만 친 자연적으로 공원과 연결되어 잘 꾸며진 수로는 사시사철 나무의 색을 바꿔 가며 근사한 산책로가 되어주어 너무 좋다. 이 집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 이기도 하다. 도서관이 바로 옆에 있고 수로가 앞에 있어 이 전 살던 곳과 환경이 똑같았다. 죽전에서 김포에 막 왔을 때가 생각난다. 죽전에서 처럼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러 수로에 나갔는데 아들이 정확하게 이야기했다.

여기는 자연적이지 않아서 별로야 싫어! 탄천이 좋아!!

나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들은 느끼고 있었다. 진짜가 아니란 걸. 아이들 어릴 때 살았던 죽전은 바로 앞에 탄천이 흘렀다. 자연 생태가 고스란히 살아있어 여러 종의 물고기뿐 아니라 오리, 왜가리도 볼 수 있었다. 아파트 4층에 살았던 우리는 초여름 비 오는 날 베란다 창을 열어두면 개구리 소리도 들리고, 한여름에 매미소리도 들리는 그야말로 도심 속 시골 전원생활을 만끽할 수 있었다. 탄천은 분당까지 연결되고 잠실까지도 이어져 있어 좀 큰 형아들은 아빠와 함께 자전거로 라이딩 왕복 완주를 도전하는 코스가 되기도 했다. 집 바로 앞에 그리 높지 않은 왕복 한 시간 코스의 대지산도 있었고, 또 조금만 올라가면 가까이에 성남에서 이어지는 불곡산자락도 있었다. 그곳에서 아이들과 만들어 남겨 두고 온 자연 속 추억이 어마어마하다. 아들은 아직도 그 추억을 회상하고 그리워하고 탄천을 기억하고 가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이 너무 귀하다.


내가 예민해서 힘들고 지치다 보니 아이들은 좀 편했음 했는데 열성이 우성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두 아이 모두 예민한 아이가 내게로 왔다. 딸아이 4살 아들 돌이 좀 지난 제주도로 가족 여름휴가를 갔다. 어린아이들 해수욕하기 좋다는 협재해수욕장에 도착했는데 아들이 깊이 잠을 자고 있어 유모차에 앉혀 해변에 돗자리를 깔고 잠이 깨기를 기다렸다. 아들이 깨어나서 드넓은 바다와 모래사장을 보고 좋아할 줄 알았다. 물놀이도 하고 모래성도 쌓고 나만의 계획이 한가득이었는데 아들은 깨자마자 집에 가자고 울고불고 난리다. 모래가 닿는 것도 물에 젖는 것도 싫단다. 그 후로도 아들은 풀장에서는 놀았지만 바다에선 유모차에서 내려오지도 않았다. 야심 차게 준비 한 아들의 첫 바다는 바닷물이 짠지 단지 차가운지 따뜻한지 알아볼 수 조차 없이 후퇴하고 말았다. 한 참 후에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모래가 묻으면 햇볕에 잠깐 누워 바짝 말린 뒤 털어주면 된다고 경험을 시켜 주고 보여주고 나서야 아들은 바다를 조금씩 즐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맞이하길, 받아들일 줄 알고 참을 줄도 아는 아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돈을 주고 체험을 해야 하는 세상이지만 돈을 주고서라도 자연을 체험시켜주고 싶었다.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불곡산 자락, 대지산 등지에서 딸은 2년, 아들은 1년 숲체험 수업을 수강하였다. 예상대로 너무 좋아했고 한 달에 한번 있는 그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처음 딸아이가 숲체험을 하던 시절 숲으로 들어간 아이를 기다리며 매번 기록을 해둔 다이어리 메모를 들춰보았다. 일 년 열두 달을 자연과 함께했을 아이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자연학교 발대식-자연을 사랑하는 아이로키 우고 싶은 마음에 벌써부터 너무 기대되는 앞으로의 시간들이다.

2월의 숲-우리 딸은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잠깐이라도 자연과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끼도 새싹도 너무너무 이쁘다. 우리 딸도 자연도 사랑스럽다♥


3월의 숲-진달래차와 목련 머위잎 진달래꽃간식 자연의 간식이 너무 맛나더란다. 주말엔 집 앞 대지산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진달래꽃 따다 화전 만들어 주기로 약속했다.


4월의 숲-오감으로 느끼는 봄. 수수꽃다리 꽃망울 들여다보기 벚꽃냄새도 맡아보고, 동그란 방석모양 양지꽃도 보았데요. 빨간 새잎을 뽐내는 친구 4월 숲의 전령사 진달래꽃도 만났더래요. 내가 잘 몰라서 보여주지 못하는 자연을 온몸으로 오감으로 느끼고 왔길 바란다.


5월의 숲-숲체험 자연학교에서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주제로 부모님 참여 공개수업이 있었다. 가장 좋았던 건 거울에 비추어 보는 숲이었다. 거울에 반사되어 숲 속의 숲이 계속 있어 좋았다.

6월의 숲-자연 숲 체험 학교 '죽은 나무가 살아났어요'라는 주제였다.

7,8월의 숲-숲 속 계곡에서 물속 친구 만나기, 물속생물 친구되기


9월의 숲-"잎사귀박물관" 잎사귀 데칼코마니기법으로 만든 멋진 손수건을 나에게 선물하였다.


10월의 숲-'단풍숲의 비밀'이란 주제로 가을 숲 걷기를 하며 오감으로 가을 숲을 느끼기

11월의 숲-'곤충들의 겨울나기'라는 주제로 나무에 옷을 입혀주고 왔다.


12월 겨울습지에서 놀자


1월 2월 철새 탐조, 자연과 함께 한층 성숙한 우리 딸


1년간 매월 한 번씩 숲체험을 한 딸은 이듬해 환경지킴이활동으로 자연학교에 참여하였다. 자연보호 캠페인도 하고, 인식개선 활동과 산을 오르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Plogging, 걸으면서 쓰레기 줍는 활동)도 하였다. 지난해 숲체험을 통해 사계절동안 네 번의 옷을 갈아입은 산을 더 풍성하게 즐기는 듯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숲에 다녀오면 매번 주저리주저리 수다쟁이가 된다. 자연과 더불어 유치원 단짝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고 내려오는 딸아이에게도 나와 같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추억이 생겼길 매번 바랐다.


아들 또한 유치원 친구 넷을 그룹을 지어 1년간 숲체험 수업에 참여시켰다. 아들은 수업이 끝나고 산에서 내려올 때는 긴 막대기를 하나 주워 지팡이 삼아 산신령처럼 내려왔다. 바닷가에서 모래가 묻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며 진상을 부리던 아들은 곤충을 만져보거나 관찰하는 활동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참여했고, 지금은 바닷가에 가면 수영복이 없어도 자동입수를 해서 뒤처리 하느라 내가 바쁘다. 이래저래 엄마는 힘들다. 그래도 나는 히죽히죽 행복의 웃음이 새어 나온다.

집 바로 앞 왕복 한 시간 코스의 대지산은 우리 셋의 헬스장이자 놀이터였다. 처음 아이들과 대지산을 올랐을 때가 생각난다. 걱정과는 달리 발발발 산을 잘도 올라가는 아이들을 독려하려 대지산 날다람쥐 두 마리가 출몰했다며 중개를 해주니 아들과 딸은 둘이 경쟁이라도 하듯 축지법 쓴 듯 엄청 빨리 올라간다. 늙어가는 애미는 따라가기 벅찼다. 초여름 대지산에서 만난 새빨간 산딸기가 반가웠다. 산 정상즈음에 마련된 운동기구도 하고, 훌라후프도 하고 평상에서 잠깐씩 숨도 돌린다. 재빨리 내려오면 분명 든든히 저녁을 먹고 올라갔는데 허기진 배가 야식을 부른다.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져 바싹 말라 산 전체가 온통 포근한 낙엽 침대이다. 그곳에 누워 복식호흡 연습하다 빵 터진 우리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두껍게 쌓여 아무도 밟지 않은 퐁상퐁상 낙엽을 밟는 소리와 느낌, 짙은 우디향 머금은 가을냄새가 가슴깊이 새겨져 지금도 심장이 따뜻한 느낌이다. 겨울엔 등산 전에 쪄놓고 나온 고구마 먹으러 집으로 되돌아오는 발걸음이 바빠져 40분이면 산꼭대기 정상을 찍고 내려오기도 했다. 산에 갔다 와도 온기가 남아 있는 따뜻한 고구마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이들은 가족이 캠핑을 시작하면서 자연 속에서 누구보다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아이들도 나처럼 저 모든 것들의 기억이 선명할까? 기억이 하나도 없어도 상관은 없다. 다만 앞으로도 쭈욱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책임 있는 어른으로 잘 자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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