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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추억 #01

전지적 엄마 시점: 우리 아이들 키 키우기 프로젝트

by 지언 방혜린

어려서부터 나는 작은 키가 항상 불만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한 번도 키번호 앞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이런저런 생각 끝에 램프의 요정 지니를 만날 수 있다면 딱 한 번만이라도 큰 키로 살아보는 소원을 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했다. 그래서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무의식 중에 나의 이상형은 무조건 키가 큰 사람이었나 보다. '세상에나 이상형이 키 뿐이라니...' 그만큼 철이 없었고 작은 키가 지긋지긋한 핸디캡이었다. 키만 보자면 나는 정확한 이상형을 만났다. 지금 우리 남편은 키가 183cm이다.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하면 농담처럼 "난 아직도 키가 크고 있나 봐" 한다. 부럽다. '단 3cm만이라도 나 좀 주지!!!' 오죽하면 이상형이 키 큰 남자였을까? 결혼해서 아이들만큼은 큰 키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절박했다. 그렇게라도 대리만족을 하고 싶었나 보다. 엄마도 작은데 아이들도 작다는 얘기를 듣는 건 상상하기도 싫었다. 유전적인 조건을 무조건 유리하게 선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시부모님은 두 분 다 키가 작은 편이다. 반대로 우리 친정아빠는 키가 크고 풍채가 좋으시다. '그럼 유전적 요인보다 균형 잡힌 식사를 통한 영양섭취가 문제인데...' 맞다. 고백하자면 어릴 적 나는 심하게 편식을 하였다. 특기 동물성 단백질 고기와 생선이 너무 먹기 싫었다. 돼지고기를 먹을 때는 돼지의 동그란 코가 생각이 났고, 소고기를 먹을 때면 소의 꿈뻑꿈뻑 긴 속눈썹을 갖은 눈망울이 생각이 났다. 아주 작은 멸치조차 눈과 꼬리를 떼어내고 먹었다. 비위도 약하고 입맛도 없는 데다 예민하고, 위가 약해서 자주 체하였다. 키를 키우기엔 너무 안 먹어서 영양실조 안 걸린 게 신기할 정도였다.


출산을 하고 아이들 키우면서 아이들 먹이는 거에 신념 같은 게 생겨버렸다. 우선 모유수유를 둘 다 돐 지나서 까지 완모를 하였다. 다행히 모유는 차고 넘치듯 돌았다. 지금 생각해도 아이들 수유할 때는 정말 행복했고, 특히나 모유를 좋아하던 아들 수유를 끊을 때는 너무 슬펐다. 밴드를 붙이고 엄마 쮸쮸가 아프다 하니 한번 들여다 보고 울면서 내 주위를 하염없이 빙글빙글 돌다 또 한 번 보고 주위를 도는것을 반복해서 정말 그냥 쭈욱 모유를 주고 싶을 정도였다. 엄마쮸쮸가 아프다고 하니 먹으려 달려들지 않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참는 모습이 마음에 아팠던 기억이다. 이유식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아이들 미각을 발달시키려 노력했다. 주변에 이유식을 배달시켜 먹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나는 손수 다 만들어 먹였다.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도 외식을 할라치면 한정식집에 가서 모든 음식과 반찬을 조금씩이라도 맛 보여 줬다. 내 노력 덕분인지 타고난 건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은 뭐든 잘 먹었고, 햄보다는 고기를, 젤리나 과자보다는 과일을 좋아했다. 한 번은 딸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 들어오며 동네 친구엄마가 먹으라고 테이프를 줬다고 가져왔다. 당시 인기 있는 테이프처럼 돌돌 말린 코스트코 풋젤리였다. 이런 먹을 수 없는 것을 주다니 혀로 한번 살짝 맛을 보더니 '퉤퉤' 뱉어버렸다. 굉장히 기분 나빠했다. 지금은 각종 젤리를 없어서 못 먹는 정도로 젤리 덕후가 되어버린 딸. 얼마 전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올해 수능을 본 딸은 키가 170cm이고, 아직도 성장판이 활짝 열려있단다. 이제 고등학교 올라가는 아들은 175cm라서 나름 이번 겨울에 심혈을 기울여 사육하려는 나의 계획이다. 5cm가 목표이다. 어쨌든 이 정도면 나름 선방 정도가 아니라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변에서 쉽게 말하길 아빠가 크니깐 아이들이 다 크단다. '쳇~! 나의 피땀눈물 나는 노력을 모르시는 말씀!!' 많이 빈정상하지만 그냥 넘어간다. 나는 철철이 과일을 사대느라 바빴고, 열대과일이며 새로운 품종의 과일을 열심히 먹이려 노력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우리 엄마는 음식솜씨가 좋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닌데 한식 양식 중식 피자 등등 어떻게 그리 잘했을까? 엄마는 소스를 직접 만들고 돈가스를 재워 파는 것보다 더 맛있게 만들어 주었다. 아침에 TV 에서 하는 요리프로를 보고 응용하여 만들어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퐁신퐁신한 밥통 야채카스텔라는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찹쌀을 섞어 지은 밥을 찌어서 만든 인절미, 양파와 당근을 다지고 파 마늘을 듬뿍 넣어 만든 풍미 좋은 참치동그랑땡, 파인애플과 사과가 잔뜩 들어간 새콤달콤 소스와 곁들인 탕수육, 오븐 없이 큰 팬에 밀가루 도우를 만들어 토핑을 올려 팬 뚜껑을 닫아 익혀만든 피자 엄마가 해주는 모든 게 맛있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이 난다. 한식날이면 큰 2단 찜 솥에 김이 새지 말라고 이음새를 막는 밀가루반죽(밀가루번)을 두르고 오곡밥을 지었다. 고사리, 데쳐말 린 무청나물, 아주까리 잎사귀, 말린 깻잎순, 무나물, 토란대와 같은 각종 나물을 10가지 정도 무쳤다. 야채와 사과, 오이, 김을 부셔 넣고 깨를 잔뜩 넣은 새콤달콤 물김치도 시원하게 만들어 아파트와 상가 이웃들과 나눠 먹었다. 소풍을 갈 때는 김밥을 넉넉하게 쌓주어서 혹시 도시락 못 싸 온 친구와 나눠 먹으라고 준비해 주기도 했다. 그 시절은 아직 소풍도시락을 못쌓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 내가 미각이 발달한 건 모두 우리 엄마 때문이다. 게 아무리 맛나다는 무얼 먹어도 엄마음식 만 못하다. 그 때문인지 나도 맛집을 찾아가 외식을 하면 대충은 비슷하게 집에서 재현 해낸다. 우리 아이들도 내 음식을 더 좋아한다. 물론 내 것보단 할머니 음식을 더 좋아하지만...... 그리고 엄마가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인지 나도 아이들 어릴 땐 항상 우리 집이 주로 모임의 장소였다. 음식을 해서 같이 나눠 먹는 즐거움을 보고 자라 알 수 있었다. 누구든지 우리 집에서 먹는 모든 것들을 맛있다고 해 주니 기쁘고 뿌듯하여 더 초대하고 싶었다.


나는 꽤나 빨리 요리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목적은 단 하나 뽑기, 달고나를 실컷 먹고 싶은 마음이었다.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집에 있는 국자에 설탕을 부어 녹여 소다를 털어 넣고 부풀려 뽑기를 만들어 보는 건 너무 재밌는 놀이였지만 국자를 홀딱 태워 혼났던 기억이다. 뽑기가 부풀어 오를 때 옆에 있는 동생이 기다림의 갈증을 참지 못해 젓가락으로 퍼가다 내 팔에 떨어뜨려 생긴 화상 흉터가 아직까지 선명하다. 엄마가 없을 때마다 동생들 먹일 요량으로 이런저런 요리에 도전을 하였다. 밀가루반죽에 각종 야채를 썰어 넣고 고소한 참기름을 반 병을 들이부어 느끼해서 먹을 수도 없는 부침개 반죽을 만들었다. 엄마에게 또 혼난 기억이다. 반죽은 엄마의 심폐소생술에도 소생되지 못해 그대로 버려졌다. 지금생각 해보면 그 당시 참기름이 꽤나 비쌌을 텐데 말이다. 혼나도 멈추진 않아 나의 요리 솜씨는 조금씩 진화했다. 초등 6학년 즈음엔 밥통에 밥을 해놓고 잡지에 나와 있는 요리 레시피를 보고 참치김치찌개를 제법 맛있게 끓일 수 있게 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 였다. 추운 겨울 동이 트기 전에 새벽별 보면서 찬바람을 맨얼굴로 맞으며 남대문으로 물건을 하러 나가는 엄마였다. 엄마가가 집에 오자마자 뜨끈한 국물에 밥을 먹기를 바랐다. 여러 번에 먹을 수도 없는 요리에 도전하여 실패의 고전을 맛보고 처음으로 성공한 참치김치찌개를 엄마가 맛있게 먹었을 때 뿌듯했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시절 요리체험 수업도 없었고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나는 무척이나 능동적으로 요리를 익혀갔다. 그리고 맛있게 먹어준 엄마의 모습과 칭찬이 나의 요리도전과 솜씨를 더 늘게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고, 조리사와 영양사 자격증을 한 번에 붙어 졸업과 동시에 영양사로 근무를 하였다. 요리를 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센스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관심과 노력 학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또 중요한 건 경험치일 것이다. 맛있는 걸 먹어본 잊을 수 없는 맛의 경험, 또 그 당시의 음식을 같이 먹은 사람들과의 행복한 기억과 추억은 생각보다 오래 우리의 마음과 뱃속을 따뜻하게 한다. 음식을 먹을 때의 추억도 좋지만 나를 위해 또 누군가를 위해 만들 때의 기쁨 또한 비할 바 못되게 값지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본 수많은 요리들과 시간 웃음들이 귀해 추억의 페이지를 또 뒤적거려 몇 가지 나눠보려 한다. 그 시절 추억여행에 또 설레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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