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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N Dec 20. 2024

독서육아 #03

책과 함께한 육아 완성은 없어 아직 진행 중...

아이들과의 독서육아에 특별한 방법이나 가이드가 있었던 건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잘 준비하고 시간을 보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많이 남는다. 하지만 같이 책을 읽어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충분히 좋았다. 신기한 건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독후활동을 하고 있었다. 큰아이가 아직 글을 모르는 동생에게 책을 읽어 주기도 한다. 그림 그리는 걸 여전히 좋아하는 딸아이는 책을 보고 인상 깊은 장면이나 주인공들을 그려 내었고, 아들은 그 옆에서 누나를 보고 따라 그렸다. 손에 잡히는 무엇이라도 캔버스가 되었다.

메모지에 낙서를 해 놓았나 싶어 버리려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견우와 직녀를 읽고 베를 짜는 직녀를 사인펜으로 그려놓은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모아 냉장고에 붙여놓고, 식탁유리에 껴 놓고 작은 갤러리를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닿는 게 있다면 무엇이라도 나 또한 관심을 갖고 그 관심이 해소되거나 없어질 때까지 계속 관련 서적을 찾아 주었다. 관심이 사라지지 않고 더 깊어지고 증폭되는지 관찰하여 도와줄 체험이나 견학, 관람 같은  확장된 활동을 찾아보곤 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도움이 되고 성공적으로 이어 진건 아니었다. 어린이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한자를 배우는 아들이 만화 마법천자문에 빠져서 한동안 나는 도서관에 마법천자문 시리즈를 빌리러 다녔다. 한참을 재미있게 마법천자문을 보기에 아들에게 한자 학습지를 해 보길 권유하였다. 나의 사심이 잔뜩 담겨 너무 앞서갔나 보다. 그때 아들이 겨우 5살이었는데... 아들의 속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나만의 욕심이었다. 그때부터 슬슬 한자에 흥미를 잃더니 더 이상 한자에 관심을 두지 않고 만화책조차 보지 않는 시행착오도 겪었다. 아들은 지금도 한자를 제일 싫어한다.


여전히 만화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들과 함께 주말마다 분당 서현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데이트코스로 다니곤 했다. 그 시기에 학습만화의 반란인 듯 모든 분야의 학습만화가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 많은 만화책을 구매하는 건 금전적으로 부담이 많이 되었고, 둘 장소도 없었으며, 딱히 만화책을 오래 소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매주 중고로 새로 나온 만화책을 구매하고 집에 있는 다 읽은 걸 돼팔아야만 책장이 정리가 되었다. 알라딘에서 보물찾기 하듯 새로 나오거나 우리 집에 없는 WHY, WHO시리즈, 재미있는 영어 팝업북이나 챕터북을 찾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만화책을 사야 하거나 아이들이 독서가 폭발하여 책을 자주 사게 되는 경우 또는 충분히 읽고 처분해야 하는 책이 있다면 중고서점을 적극 이용할 걸 권하고 싶다. 요즘은 앱이 잘 되어 있어 집에서 중고책의 매입, 매출 가능 여부나 가격도 알아볼 수 있다. 중고서점에서 보물 찾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 아들에 비해 딸은 대형서점을 좋아했다. 책보다는 주로 새로 나오거나 특이한 모양의 펜 다양한 색상의 펜을 사모으는 재미가 더 큰 듯도 하다. 서점을 가는 것을 싫어 하지만 않는 다면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다. 중고서점이든 대형서점이든 동네 작은 서점이든 책이 있는 곳에 아이들과 자주 갈 수만 있으면 좋았다.


맹모삼천지교라고 맹자의 어머니 급씨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곳을 이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육을 위한 어머니의 노력과 열정이 많은 지분을 차지하나 보다. 그만큼 교육환경이 중요하다는 걸 시사하기도 한다. 아이들 어릴 때 우리 집은 도서관 5분 거리에 살았다. 집에서 나가면 바로 옆이 도서관이고 앞에는 탄천이 흐른다. 처음에는 우연히 들어가서 살다 보니 그런 집이었고, 지금은 의도해서 바로 옆에는 도서관이고 앞에는 수로가 흐르는 곳으로 이사와 살고 있다. 도서관이 가깝다 보니 아이들이 도서관 가는 게 집 앞 놀이터 가듯 자연스러웠다. 아들은 스스로 오며 가며 도서관의 게시판을 확인하여 주말에 좋아하는 영화를 상영하면 가서 보고 오곤 했다. 어린이를 위한 마술 쇼, 작가와의 만남 같은 관심 있는 프로그램을 신청하여 친구들과 함께 즐긴다. 한 여름 너무 더울 때나 한 겨울 엄동설한에도 더위와 추위를 피하러 도서관으로 갔다. 심지어는 놀이터에서 뛰어놀다 급히 목이 말라도 도서관에 가서 정수기에 물을 마셨다. 도서관 가까이 살면서 다양한 책을 더 많이 접하고 사람들이 책 보는 모습에 많이 노출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어쩌다 이벤트성으로 가는 곳이 아닌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공간이 되어 가까이 사는 덕을 톡톡히 보았다.


도서관의 인기 있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려면 온라인으로 선착순 신청이라 신청날짜에 맞춰 미리 알람을 해 놓고 노트북과 핸드폰 데스크탑 앞에서 대기하다가 신청하는 열정맘을 자처했다. 내 마음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아서였을까? 아님 지금보다는 젊었던 나의 손가락이 재빠르게 잘 움직였던 탓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원하는 수업이나 체험 프로그램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는 걸 보니 운이 좋았나 보다. 도서관에서는 끊임없이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하니 온라인으로 선착순 프로그램 신청하는 게 꽤나 치열했다.

지역 도서관이나 학교 도서관, 크고 작은 서점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책과 다양한 프로그램이 많은데 아직까지 잘 몰라 충분히 활용을 못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주로 방과 후에 지역 도서관에서 독서논술이나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모두 좋은 퀄리티에 비해 무료수업이었다. 책과 친해지고 싶고 아이들과 책에 연관되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이런 도서관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참여해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중학생이 된 아들은 지금도 학교의 도서관에 작가와의 만남 같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신청하여 잘 참여하곤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방학이 다가오면 학교도서관에서 준비된 프로그램을 미리 체크하고 방학 중에 이용할 수 있다. 학교 도서관에서는 책을 본 후 독후활동, 연극, 만들기와 같은 연계 수업이 3~4회에 걸쳐 있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여름, 겨울방학시즌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그림책과 연관된 수업을 참여한 게 인상적이라 지금도 기억이 많이 난다. 이를 테면, <선글라스를 낀 개구리>를 읽고 나만의 선글라스 꾸미기

<고양이> 책을 읽고 나만의 고양이가면을 만들어 보고 고양이 흉내놀이

학교 도서관 자원봉사 엄마들이 준비한 구연동화 보고 참여하기 등이 있었다.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아들은 누나를 따라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특혜를 누리기도 하고, 나 역시 학교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신청하여 수업을 보조하거나 구연동화에 참여하는 등 책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날씨가 좋은 봄이나 가을에는 다른 지역이나 유명한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가는 것도 좋다. 우리 가족 최고 애정하는 도서관은 서울 종로구 북촌에 있는 오래된 정독 도서관이다. 서울단풍명소이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이곳의 봄이 더 좋다. 사계절 예쁘고 고풍스러운 정독도서관은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너른 야외에 설치된 그물 침대에 누워 책 읽는 즐거움, 그곳에 누워 뺨에 맞던 바람과 햇살 꽃냄새까지도 기억이 선명하다. 딸아이가 도서관에 신청해 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어린이 도서관에서 아들과 앉아 책보고 있으면 가끔 운전기사를 자처해 동행한 남편이 한쪽에 앉아 큰소리로 코를 골며 졸기도 해 놀라게 했던 웃지 못할 장면도 기억난다. 다른 사람 피해 갈까 서둘러 나와 온 가족 도서관 식당으로 출동했다. 식구 수대로 음식을 시켜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정독 도서관 식당의 저렴한 한 끼. 우리는 주로 돈가스와 라면, 김치찌개를 많이 먹었던 기억이다. 그곳에서의 추억이 소중해서 아이들 조금 더 크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한 번씩은 같이 가볼 것이다. 아들과 딸은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몽글몽글 마음속 추억 여행하듯 동행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독서육아가 성공했냐고 물으신다면 반은 성공이고 반은 아닌듯하다. 내가 아이들에게 독서로 육아를 하면서 또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바란 건 딱 하나였다. 책을 즐기는 어른이 되는 것. 수능시험을 직전에 앞두고 큰아이는 시험이 끝나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제일 하고 싶은 게 책을 좀 많이 읽고 싶다고 했다. 대학교 가서 그림 그리면서 무식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이유였다. 또 고등진학을 앞둔 동생에게 제발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다른 건 몰라도 책을 많이 읽으라는 조언도 했다. 책의 필요성 중요성은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거 녹음이라도 해 놔야겠다며 우스겠소리를 했다. 작은 아이는 아직도 문제집을 사러 서점에 가면 내 카드로 허락도 받지 않고 읽고 싶은 책을 꼭 사 온다. 지금은 책보다는 유튜브를 더 많이 보는 중3이지만 보고 싶은 책이 많아 앞으로 볼 책이 침대 머리맡에 한가득 쌓여있다.


"엄마 내가 요즘 책을 많이 안 읽기는 하지만 이래 봬도 책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야~“


한 번은 책 좀 읽으라는 나의 잔소리에 저런 망발을 내뱉어 한바탕 어이없어 둘 다 웃은 적이 있다. 책이 읽고 싶지만 손끝의 터치만으로 달콤한 도파민을 팡팡 터뜨리는 유튜브의 유혹을 이기지는 못하는 중3이다. 이런 아들과 딸의 고백이라면 반은 성공한 거 아닐까? 나는 아직도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책을 즐기고, 책에서 경험을 쌓고, 위로를 받고, 지식과 지혜를 얻길 바란다. 그리하여 나의 독서 육아는 아직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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