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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체험 #01

빨간 머리 앤이 소환한 나의 소꿉친구

by 지언 방혜린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상냥하고 귀여운 빨간 머리 앤 외롭고 슬프지만 굳세게 자라.'


- 만화 빨간 머리 앤 주제곡


내 어릴 적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꼽자면 단연 빨간 머리 앤 이다. 나는 지금도 빨간 머리 앤이 좋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앤이 나한테 말을 걸어오는 듯 손이 자연스레 책장에 꽂힌 빨간 머리 앤에게 간다. 빨간 머리 앤을 읽으며 좋아하는 문구에 형관펜으로 칠을 한다면 그냥 책 한 권 통으로 형광칠을 하는 게 나을 정도로 어느 문장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자연을 사랑으로 대하는 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앤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상상 속으로 나를 기꺼이 초대한다. 앤이 하나뿐인 단짝 친구 다이애나와 숲 속 아지트에서 깨진 찻잔 세트로 하는 소꿉놀이는 나의 로망이었다. 시장에 갔던 매슈아저씨가 사준 초콜릿을 자작나무 숲 '한적한 숲 속'에서 나눠먹으며 행복해하던 앤이 너무 부럽고 사랑스러웠다. 특히 나의 어릴 적 소꿉친구가 생각나는 장면을 소개해볼까 한다.

정원은 온갖 꽃들로 무성했지만 길도 나무들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정원에서 앤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다이애나에게 속삭였다.


[중략]


"그럼, 우리 영원한 친구가 되겠다고 맹세하자!"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음, 원래는 흐르는 강물 위에서 해야 하는데, 그냥 이 길이 강물이라고 생각하자. 이제 손을 잡고, 내가 먼저 할게.

'난 해와 달이 있는 한 나의 단짝 친구 다이애나 배리에게 진심으로 대할 것을 맹세합니다.' 이번에는 네 차례야."

다이애나도 빙긋이 웃고 나서 그 '맹세'를 똑같이 따라 했다.


- 루시 모드 몽고메리 <<빨간 머리 앤>>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오자마자 친구 윤이와 단짝이 되었다. 누구에게 소개를 받았는지 어떻게 친해지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같은 반도 아니었고, 같은 동네에 사는 것도 아니었다. 학교는 우리 집에서 버스로 6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윤이는 학교 근처가 집이었다. 그런데도 운명처럼 급속도로 친해져서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서 만나고 방과 후에 서로의 집에도 놀러 갔다. 3학년으로 진급하면서 우리는 같은 반이 되었다. 우연이 잦으면 필연이라고 우리가 평생 친구가 될 운명이었는지 윤이 부모님이 우리 동네에 갈빗집을 차리시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때부터 매일을 붙어 다녔다. 기억으로는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고, 둘 다 예쁘장하니 비슷하게 생겨서 반장 부반장을 1학기, 2학기 나눠가며 하고, 똑순이 들로 통했다. 당시 우리 초등학교에는(그 당시 국민학교) 매 월말에 월말평가 시험을 봤는데 전 과목 평균 95점을 넘으면 빨간색 최우수 뱃지를, 평균 90점 넘으면 파란색 우수 뱃지를 상장과 함께 수여하였고, 우리는 한 달 내내 자랑스럽게 가슴에 뱃지를 달고 다녔다. 방과 후에는 우리 집 한번 윤이네 집 한번 돌아가면서 하교하자마자 동아전과를 펴놓고 방바닥에 엎드려 같이 숙제를 하고, 공부도 하며 선의의 경쟁을 하였다. 숙제를 말끔히 다 해놓고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해가 지고 나서도 서로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으며 마치 자매처럼 지냈다.


어느 날 우리 집 옆에 방치 되어진 큰 공터에 방방이(일명 트램폴린)가 생겼다. 백 원에 십 분을 탈 수 있는 방방이는 인심 좋은 아저씨가 운영하셨는데 기분이 좋으시거나 아이들이 붐비지 않을 땐 10분 더, 10분 더 서비스를 팍팍 주셨다. 운이 좋으면 백 원에 한 시간도 태워주셨다. 한편에는 천막 가판대를 두어 달고나 뽑기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키즈카페나 다름없이 그곳에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방방이를 한참 타고 내려오면 땅에 발이 닿아도 부웅거리고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다리 느낌이 요상했다. 우주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우주인이 우주에서 걷는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방방이를 다 타고나면 시간 순서대로 내려오는 친구들을 기다렸다가 3층 아파트, 오징어게임, 다방구등을 하며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놀아서 씻을 때 땟국물이 나와도 아무렇지 않았던 그 시절엔 지금처럼 황사먼지 미세먼지와 세균을 막기 위해 365일 마스크를 쓰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조 차 할 수 없었다. 우리 동네에선 약속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방방이가 북적북적 아이들의 모임터가 되었다. 이른 봄 어느 날 갑자기 생긴 방방이는 뜨거운 여름, 선선한 가을을 지나 조금 쌀쌀해진 초겨울까지 우리 동네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하루 이틀 천막이 닫혀있고, 불이 꺼져 있고, 문 닫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더니 하루아침에 방방이가 사라졌다. 마치 신기루 같이 방방이와 천막이 그곳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휑하니 이상하고 쓸쓸했다. 겨울이 깊어지고 추위가 매서워 더 이상 하교 후에 친구들과 밖에서 놀지도 못하게 되어 그 공터는 한동안 잊고 지냈다.


새 봄이 찾아오고 해가 점점 길어지면서 친구들이 다시 저녁에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지만 예전 방방이 터가 아닌 우리 동네 아파트 놀이터에서 모였다. 놀이터를 가려면 공터를 지나가야만 지름길인데 방방이 아저씨가 사라지고 임시 거쳐로 쓰던 나무판자 한 칸 집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평소에는 개의치 않던 그 나무판잣집에 하루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윤이에게 그 집을 가보자고 했다. 문도 허술하고 나무판잣집 안에는 아저씨가 채 챙기지 못한 세간이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윤이에게 그곳을 깨끗이 치우고 아무도 모르는 우리의 아지트를 삼자고 제안을 했다. 우리는 방과 후에 매일 그곳에 가서 청소를 하고 꽃도 꺾어다 꽂아 놓고, 나름 소중한 물건들도 가져다 놓았다. 아저씨가 버리고 간 간촐한 그릇들도 정리를 하고, 돗자리도 깔고 제법 아늑해졌다. 그때부터 윤이와 나는 그곳에서 소꿉놀이를 했다. 앤과 다이애나처럼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고, 간식도 나눠 먹으며 놀았다. 판잣집에 가기 전에 동네 외각 뒷동산 어귀에서 까마귀머루열매, 민들레 꽃, 각종 이름 모를 풀을 따서 소꿉놀이 재료 거리를 수집해서 갔다. 가는 길에 집집마다 대문 앞에 심어진 사루비아 꽃 꿀도 따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봄이면 넝쿨장미도 흔했고,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맨드라미도 흔했다. 숲 속 자연의 모든 게 소꿉놀이 재료였다. 동산으로 들로 채집하러 다닌 자연의 소꿉놀이 재료가 철 따라 바뀌었다.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빨간 벽돌을 돌로 갈아 고춧가루를 만들었고, 모래보다 곱고 촉촉한 짙은 브라운색 흙에 물을 뿌려 대접에 꾹꾹 담아 거꾸로 뒤집어 내어 초콜릿케이크도 만들고 꽃으로 꾸몄다. 형형색색으로 한가득 상을 차려놓고 한바탕 놀고 나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지금 아이들은 소꿉 장난감뿐 아니라 싱크대, 냉장고, 가스레인지까지 모형으로 나온다. 불도 나오고, 물도 나오고 내 진짜 살림보다 더 정교하고 예쁜 장난감이 한살림 가득이다. 그런데 하나도 부럽지가 않다. 나는 진짜를 해봤거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 보면 너무 소중한 추억이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방과 후에 아지트로 출동했는데 나무판잣집이 없어졌다. 우리 물건들도 일부는 없어지고 일부는 공터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네 어른들이 미관상 보기 좋지 않거나 위험해 보여 신고를 해서 철거를 한 듯싶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아지트에서의 소꿉놀이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우리의 앤과 다이애나 놀이도 끝이 났다. 윤이와 나는 꽤 오래 같은 반인 것 같았지만 사실 3학년 때 딱 한번 같은 반이었고 4, 5학년때는 줄 곧 다른 반이 되었다. 그리고 5학년 가을 윤이는 인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 가기 전날 밤 새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전학을 와서 단 한 명 단짝친구 윤이와만 친했던 나는 윤이가 전학 가고 심심하고 무료하게 학교를 다녔다. 심지어 성적도 떨어졌다. 나중에 만나 들은 얘기로는 윤이도 그곳에 이사 가서 전학생 왕따가 너무 심해 점심시간 도시락도 혼자 먹고 그마저도 먹지 못한 날이 많을 정도로 적응하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나는 윤이와는 3~4년에 한 번씩 전화통화를 했다. 윤이가 신통하게 이사 갈 때 적어 준 우리 집 유선전화로 잊지 않고 전화를 걸어왔다. 아직도 기억난다. "여보세요? 거기 린이네 집 맞죠?" "윤이니??"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한 것도 아니었고 우리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 만나지는 못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한두 번 정도 만났고 너무 반가웠고 신기했고 좋았지만 그 만남이 자주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다고 우리의 연락이 끊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윤이는 그렇게 나의 결혼식과 우리 딸 돌잔치에도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고, 나도 윤이의 결혼식에서 축하를 해주고, 우리의 마지막 만남은 십 수년 전 목동의 한 뷔페식당 윤이 아들의 돌잔치에서였다. 언제든 연락하면 닿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지만 자주 연락하는 사이가 되지는 못했다. 그렇게 나는 윤이가 늦게 결혼해서 아들 하나 낳고 목동 어디쯤에서 잘 살고 있으려니 했다.


김포에 이사 와서 반년쯤 되었을까 아들이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포장마차에서 호떡이 먹고 싶단다. 우연히 들른 호떡집에서 호떡 포장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데 옆에 어떤 여자분이 말썽꾸러기 아들을 어르고 달래며 어묵과 호떡 먹기에 바쁘다. "준이 그럼 안 돼요~ 준아~준" 나는 속으로' 내 친구 윤이랑 얇고 여상스러운 목소리가 비슷하다, 어라, 내 친구 아들 이름도 준인데...' 생각했다. 곁 눈으로 살짝 옆을 보니 생김도 윤이다. 그래도 십 년 넘게 못 본 사이라 확신이 서질 않고 또 이곳 김포 호떡집 포장마차에서 만날 일인가 싶어 주저하고 머뭇거렸다. 그런데 또 너무 궁금해 답답하기도 했다. 설마 설마 내가 그 여자분에게 물었다.

"저 혹시 윤이세요?"

지금 생각해도 질문이 너무 웃긴다. 윤이도 한눈에 나를 알아보았다. 알고 보니 윤이는 나보다 빨리 이곳에 신도시가 생기면서 이사 왔다고 했다. 그것도 지척에 있는 우리 아파트 바로 옆 아파트에 산다고 한다.


'이럴 수가 이런 게 정말 운명인가?'


우리 둘 다 어리둥절 한바탕 웃고 조만간 만남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며칠 후 윤이는 와인을 한병 들고 아들과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날도 우린 앤과 다이애나의 소꿉놀이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동안 쌓인 수다를 한바탕 쏟아내고 새벽 1시가 넘어서 집으로 귀가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의 집에 내 친구 윤이가 산다. 늦게 아들을 낳아 키우고 있는 윤이는 지금도 종종 학교생활이 궁금할 때마다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본다. 그렇지만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하고 지내 지지는 않는다. 가까이 윤이가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속 따뜻한 기운이 한가득 차오르는 기분이다. 어릴 적부터 들어놓은 종신 보험처럼 든든하다. 내 어린 시절 보물 같은 소중한 기억의 실체인 운명 같은 친구.

생각해 보면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아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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