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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소중한 너에게

너라는 꽃의 씨앗을 정확히 심으렴.

by 방혜린 Mar 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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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 봄이에게 

    

봄아 기억나니? 

화실에서 선생님이 네 그림을 보시고 엄마에게 연락을 하셨어. 

네가 그림을 잘 그려서 선생님도 감동을 받았다며 집에 돌아가면 이야기 나누고 칭찬을 많이 해주라고. 

그리고 며칠 후 핸드폰으로 네 꽃 그림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셨어.    

  

“꽃을 예쁘게 잘 그렸네~”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미알못(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잖니. 

선생님 연락도 있고 해서 영혼은 살짝 서랍 속에 넣어두고 칭찬을 했었지.


엄마 보여? 내가 나팔꽃으로 사람의 일생을 표현했어.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더니 꽃봉오리를 맺고 무럭무럭 자라서 꽃을 활짝 피웠다가 서서히 시들고 결국 떨어지고 말지    

엄마가 네 그림을 알아봐 줘서 기뻤던지 들뜬 목소리로 종알종알 그림 설명을 해주었어. 

그때 겨우 9살이던 네가 저런 생각을 어떻게 한 건지 신기하고 조금은 놀랐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단다.      

네 말대로 꽃도 사람도 삶은 유한하단다. 

씨앗에서 싹을 트고 성장하여 꽃을 피워 후대의 결실인 종자를 맺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과정은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지. 

생을 유지하는 조건도 각양각색이지. 

활짝 피어나는 시기도 다 다르지만 또 어떤 꽃은 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리기도 한단다. 

꽃이 피려면 다양한 조건도 잘 맞아야 해.

때로는 그게 대자연이든 사람이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어. 

활짝 피었다고 한들 끝일까? 

후대를 위한 씨앗을 남기고, 고유한 향기를 남기고,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어 기억 속에 오래 살아가기도 하지. 어쩔 수 없이 꽃도 사람도 외부에 의해 가치를 평가받게 되고 한 시대를 한 시절을 맘껏 뽐내다가 서서히 시들어 생을 마감하게 된단다.    

  

유난히도 꽃을 좋아하는 널 위해 오늘은 너를 꽃이라고 생각하고 엄마가 너에게 얘기해 볼까 해. 


어떤 식물이든 씨앗이 심어지고 그 씨앗에서 싹을 틔워 꽃을 피우지.

장미를 심었는데 튤립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심은 씨앗대로 식물은 자라나는 법이야. 

일반적으로 전문가가 아니라면 씨앗을 보는 것만으로 어떤 꽃을 피울지 알 수는 없을 거야. 

그래서 보통 씨앗을 고를 때는 씨앗의 정보를 정확히 확인을 해야 해. 

우선 품종명을 확인하고, 심고 싶은 꽃의 씨앗을 심어야겠지?   

   

사람이 태어나서 자아가 형성되고 좋아하는 것이 생기기 시작해서부터 마음속에 작은 꿈의 씨앗이 심어진단다. 

나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나를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야. 

그래야지만 내가 심은 꿈의 씨앗이 내가 원하는 꽃으로 멋지게 피어날 테니깐......  

   

나를 정확히 안다는 건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지? 

이는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하여 알아간다는 것은 내가 아는 나뿐만 아니라 내가 모르는 나. 

더 나아가 내가 아닌 모든 것 까지도 이해를 해야만 진정한 나를 아는 것임을 의미하는 거야. 

결국 나를 알아야 나 외에 것도 알 수 있다는 중용 

즉 양극을 모두 품는 전체론적 사고임이 이해되는 시작인 것이지.      

우리는 자칫 나만을 고찰하고 탐색해야만 나를 잘 알 수 있다는 편견에 사로잡혀있어. 

그런데 잘 생각해 보렴. 나는 혼자로만 존재하는 개채가 아니고 유기적으로 존재하는 관계 속에 나이지. 


그 관계는 

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너.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 속의 너, 

또 사람이 아닌 사물과의 너, 

여러 상황 속에 너, 

너와 너를 제외한 이 세상 모든 것들까지도 알아야 진정한 너를 안다는 뜻이기도 해. 

그러니 사람은 죽을 때까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이지.   


우리가 나를 정확히 아는 건 왜 중요한 걸까? 

    

어려서부터 너는 미술을 좋아했고, 좋아하다 보니 오래 했고, 많이 했어. 

자연스럽게 그림 그리는 사람이 꿈이었고, 그 꿈은 마음속에 씨앗으로 심어져 너의 꿈은 지금까지도 그림작가이지. 대부분 엄마 주변사람들이 꿈이 있는 너와 빨리 꿈을 찾은 딸이 있는 나를 부러워했던 거 너는 아니? 

요즘 많은 아이들은 꿈이 없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지. 

그야말로 맹목적으로 공부를 하니 그 공부는 누구를 위한 공부이며 무엇을 위한 공부일까? 

그 공부가 효율이 오를 리는 만무하지. 간혹 공부 그러니까 배우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그 또한 흥미를 잃거나 목적성을 상실하여 잘하던 공부를 안 하거나 사춘기라는 이름으로 엇나가기도 하지. 여기서 공부는 학교정규 교육과정 속에 공부를 말하는데 학습하고는 다른 의미란다.


충분히 나를 탐색하고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며 씨앗을 심듯 꿈이라는 희망을 마음에 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정해진 틀에 맞춰 따라가기만 하니 안타까울 때가 많단다. 

그렇다고 학생의 본분인 정해진 과정 속의 공부를 소홀히 하라는 뜻은 아니야. 

다마 나를 찾고 알아가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너만의 몫이라는 거지. 

그러니 공부도 너를 알아가는 탐색도 균형을 잡아 이루어져야 할 것이야. 

그래서 결국은 공부가 그 자체로써의 목적이 아닌 너를 알아가고 너라는 꽃을 피워낼 수단으로써의 공부가 되어야겠지.


사실 고백하자면 엄마는 어린 시절 나를 알아보는 시간을 충분히 갖진 못했었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 방황도 하고 허비하는 시간이 많았어.  

모든 선택이 최고라기 보단 최악을 피하는 쪽이었어.

행복하다기보다는 불행하지 않는 쪽이었지.

항상 미련이 남았었어. 아직도 내가 무얼 가장 좋아하는지 원하는지 잘하는지  모호하고 답답할 때가 종종 있단다. 나는 봄이 네가 무의미한 방황으로 시간을 소비하는 걸 최소화했음 하는 바람이야.   


씨앗에서 싹이 나고 생장을 시작하는 걸 발아라고 하는데 발아율이 높을수록 싹을 틔울 확률이 높다는 뜻이니 씨앗을 살 때는 발아율을 꼭 확인해야 한단다. 그 말은 모든 씨앗이 다 싹을 틔우는 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지. 어린아이들에게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라고 묻는 다면 대통령, 의사, 선생님, 소방관등 다양한 꿈을 이야기하지만 크면서 그 꿈을 실현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지. 

대부분은 성적에 맞추어 진학을 하고 어릴 적 꿈은 바다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처럼 흩어져 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지. 

오랜만에 만난 어릴 적 친구들이 일률적으로 연금이 보장되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으로 전략해 버리는 거 흔한 일이지.

요즘은 어린아이에게 너는 커서 무엇이 될래? 

너의 장래희망 꿈은 무엇이니? 

물으면 공무원이라고 대답한다고 하니 그 꿈을 키우는 게 재미있고 흥이 날까?  

   

나를 알아야만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알 수 있겠지?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만 꼭 잘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잘할 가능성은 높아지겠지?

내가 잘하는 걸 해야만 꼭 행복하다고 할 순 없지 만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지겠지?

그러니 나를 정확히 알고 내가 피우고자 하는 꽃의 씨앗을 심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란다.  

   

어릴 때 생각나니? 앞 베란다에 화단을 꾸며 식목일날 학교에서 나눠준 방을 토마토 씨앗을 

잔뜩 심고선 매일 물을 주고 가꾸어 주었었어. 

처음에 싹을 틔우더니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다가 어느 순간 식물들이 마르고 시들어 결국은 모조리 죽고 말았어. 그다음 해도 그 다다음해도 엄마는 식물 키우는 걸 성공하지 못하고 죽이고 말았단다. 

그런데 그 이유가 너무 물을 많이 주어 과수분으로 죽었다는 건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지. 

때론 과한 관심과 관리가 독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식물을 잘 키우는 식물도사가 되었다고 자칭 말을 하지만 사실 무심한 듯 한 관심이 그 비결이라면 믿어 질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의 게으름이 식물을 키우기에 적합함이더라.    


씨앗에는 생명력이 있고 그 생명력을 유지하여 잘 길러내기 위해서는 적당한 온습도와 환경이 맞춰져야 하지. 이제 막 스무 살 성인이 된 너는 온실 같은 부모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들판에 심어지게 될 거야. 

마음에 심은 씨앗을 발아시켰으니 너라는 꽃을 키우려는데 들판에서 태양이 물이 땅이 환경이 너만을 위해 맞춤형으로 제공되지만은 않을 거야? 

그러면 환경이 니 조건에 딱 부합되지 않는다고 불평불만만 하고 있어야 할까? 

결국 네가 심은 씨앗이 니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니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단다. 


사랑하는 딸 봄아 다음번에는 니 스스로 살아남는 힘 자생력에 대해 이야기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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