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발레를 좋아하는 이유를 수십 가지도 댈 수 있지만, 얼마 전 지젤 공연을 보다가 (특히 군무 장면을 보다가) 여러 이유가 필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이 발레에 매료되는 이유는 결국 단 하나, ’아름다움’으로 수렴된다.
나는 발레가 아름답기 때문에 좋다. 무용수들의 몸선이 아름답고, 의상이 아름답고, 동작이 아름답고, 음악이 아름답다. 발레의 모든 것이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아는 만큼 더 크게 느껴진다.
내가 발레를 배우기 전에 발레 공연을 볼 때는 단순히 ‘와, 잘한다, 예쁘다’ 수준의 감탄이었다. 그 감탄에도 분명 진심은 담겨 있었지만, 내가 발레를 몸소 배우면서부터는 그 감정의 깊이가 달라졌다.
무대 위에서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아라베스크와 피루엣, 가볍게 날아가듯 도약하는 그랑 제떼에 감탄하면서도, 무대 뒤에서 어린 나이부터 반복되었을 연습과 통증, 수많은 실패들을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저토록 우아하고 가벼운 움직임이 나오기까지 쌓였을 인내의 무게를 짐작하는 순간, 감탄은 경이로움으로, 경이로움은 존경심으로, 그리고 이내 깊은 감동으로 바뀐다.
지금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무대 위에 선 저들의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 잔인한 사실을 생각하면 내 발레 열정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꺾여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애초에 도달할 수 없는 목표라면, 이렇게까지 노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몸으로 어설프게 흉내나 내느니, 저들의 완벽한 춤을 눈으로 향유하기만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도 이상하게 발레 공연을 보고 있으면, 나는 오히려 당장 클래스를 들으러 가고 싶어진다. 그 마음은 언제나 나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무대 위 무용수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끌리는 것은 사실 그들의 완벽함 자체가 아니라 그 완벽을 향해 기꺼이 몸을 던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의 러시안 남자친구로도 대중에 알려진 전설적인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Mikhail Baryshnikov)는 “발레에서의 완벽함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이다.(Perfection in ballet is a journey, not a destination.)”라고 말했다.
발레에서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완벽한 테크닉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완벽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노력의 흔적이다.
인간은 고정된 재능을 증명할 때보다, 성장 가능성을 믿을 때 더 큰 동기를 느낀다고 한다. 발레 공연을 보며 내가 감동을 받고 용기를 얻는 이유 역시, 내 눈에는 이미 완벽해 보이는 저들도 여전히 완벽을 향해 끝없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정상급 발레 무용수들의 인터뷰를 봐도, 자신의 춤에 100% 만족한다고 답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경력이 쌓이고 깊이가 깊어질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더 눈에 들어온다고 하니 정녕 발레의 길은 끝이 없나 보다. 그래서 나도 도달할 수 없음이 분명한 목표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그 방향으로 한 걸음씩 묵묵히 나아갈 수 있다.
나의 발레는 그들의 발레만큼 아름답지 않지만 우리는 같은 아름다움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다. 그리고 나는 묵묵히 밟아가는 그 과정 자체가 아름답다고 느낀다. 완벽에 도달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사실, 오히려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끝없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 그게 발레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