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를 한 지 2년쯤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내가 어깨를 쫙 편 채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잖이 놀랐다. 의식적으로 자세를 바로잡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 누가 옆에서 등을 펴라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걷고 있었다.
그 순간이 유난히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내 라운드 숄더와 거북목의 역사가 고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구했기 때문이다. 거의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늘 구부정한 몸으로 살아왔다.
잘못된 자세로 책상 앞에 오래 앉아 공부만 하던 고등학생 시절, 어깨 통증이 너무 심해 울면서 야간 자율학습을 조퇴하고 병원에 간 적도 있었다. 승모근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는데, 얼마나 굳었으면 치료가 끝나고도 침이 빠지지 않아 간호사분이 당황하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한의원을 다닐 게 아니라 발레 학원을 다녔어야 했다. 아니면 최소한 헬스장에서 운동이라도 했어야 했다. 하지만 고질적이고 만성적인 어깨와 목 통증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체력이 꽤 좋은 편이었고 웬만한 건 그냥 참고 견뎌보는 곰 같은 성격 덕분에 교정의 적기를 놓쳐버렸다.
그렇게 20대 내내 만성 통증을 달고 살았다. 늘 아프긴 했지만 죽을 만큼 아픈 건 아니었고, 나는 일상적인 통증에 어느 정도 적응해 버렸다. 너무 심해지면 병원에 가거나 마사지를 받으며 그때그때 버텼다.
그러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제대로 된 운동’을 시작했는데, 그게 필라테스였다. 체형 교정과 재활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며 시작했는데, 몇 달을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늘 함께하던 통증이 사라진 걸 깨달았다. 원래 현대 직장인에게 거북목 하나쯤은 기본 옵션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혼 직후 두 아이의 임신과 출산, 잠 못 자는 육아가 연이어 이어지면서 또다시 5년 가까운 운동 공백기가 생겼다. 20대에는 체력이라도 좋아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는데, 30대에 접어드니 믿었던 체력도 더 이상 견뎌주지 못했다. 지하철 계단을 한 번에 오르지 못하는 저질 체력에 좌절했고, 묘하게 쳐진 듯한 엉덩이까지 모든 것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결국 다시 필라테스를 시작했고, 주 2회 정도 나름 성실히 다녔는데 이번에는 코로나라는 변수가 등장했다.
그렇게 또다시 2~3년을 운동 없이 보내다가, 코로나가 잠잠해질 무렵 회사 근처 문화센터에서 필라테스를 등록하려다 우연히 ‘발레핏’이라는 수업을 발견했다. 그게 나와 발레의 첫 만남이었다. 발레핏으로 시작해 그다음 달에는 발레 수업까지 등록했고, 나는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발레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발레를 배우던 초반에는 발레의 재미를 온전히 느끼기 어려웠다. 동작은 어렵고, 몸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거울 속 내 모습을 견디기가 어색했다(사실은 지금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이 끝나고 나면 마치 물파스를 바른 것처럼 어깨와 고관절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너무나도 중독적이었다. 몸 어딘가에 쌓여 있던 묵은 긴장이 풀리는 기분. 그 감각 하나만으로도 나는 발레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단체로 기합 받는 느낌이던 필라테스보다는 백만 배쯤 재미있었다. 아마도 함께 하는 아름다운 음악과 예쁜 발레복 덕분이었을 것이다.
어깨를 쫙 펴고 있으면 태도까지 달라진다. 몸이 먼저 달라지고, 그다음에 마음이 따라온다. 계속 등을 잡으라고 잔소리해 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수업이 끝난 직후에는 어깨가 한껏 펴져 있다. 나는 주로 점심시간에 발레 수업을 듣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은 발걸음이 유난히 당당하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어디 한 번 다 덤벼봐’ 같은 비장함까지 느껴질 정도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이 있지만, 적어도 내 경험상 자세는 태도가 된다. 구부정한 어깨로 살 때의 나는 늘 조심스럽고 위축되어 있었다. 반면 곧은 자세로 서 있을 때의 나는 조금 더 당당해진다. 몸을 바로 세운다는 건 단순히 외형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주 조금씩 나를 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