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발레를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by 서린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걸 알게 된 우리 발레학원 원장님이 언젠가 발레 이야기도 꼭 써달라고 하셨을 때, 나는 아마 그 얘기는 눈물 없이는 못 쓸 거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취미로 발레에 입문한 지 이제 겨우 3년을 꽉 채운 나는 발레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발레에 대해 아는 것도 많지 않다. 하지만 나는 남이 보기에도, 내가 생각하기에도 반박불가 '발치광이'다.


지금은 주 5회로 줄었지만, 많을 때는 주 7회 매일 발레를 했을 정도로 나는 발레에 미쳐있다. 심지어 그 줄어든 주 5회도 발레 좀 더 잘해보겠다고 발레 보강운동으로 바레(barre)수업을 주 3회 추가하면서 줄어든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원래 미친다는 건 그런 거 아닐까 혼자 생각만 할 뿐.


사실 나로서는 내 삶의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해 버린 발레에 대한 글을 쓰지 않고 버틸 재간도 없다. 발레를 못해도, 발레에 대해 아는 건 없어도 내가 발레를 하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건 그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발레에 대한 첫 글로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영화가 있다.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원제: 10 Things I Hate About You)』라는 영화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매우 잘 만든 하이틴 무비이다.


무려 20년 전에 봤던 영화인데도 여자 주인공 캣이 남자 주인공 패트릭을 향해 자작시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직역 - 내가 널 싫어하는 10가지 이유)"를 발표하장면만큼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주인공 캣의 자작시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내가 널 싫어하는 이유를 줄줄이 읊는데도 그 이유 하나하나가 절절한 사랑 고백처럼 들리는 그 마법 같은 시를 나도 애증의 발레를 상대로 한 번 써보려고 한다.


분명 발레를 싫어하는 이유만 늘어놓는데도 발레를 향한 어쩔 수 없는 사랑 고백처럼 들린다면, 그건 안비밀이다. 쓰다 보니 어쩐지 신이 나서 이유를 10가지도 훨씬 넘게 써버렸지만, 시적 허용이라고 치는 걸로.




내가 발레를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10 Things I Hate About Ballet)


센터만 하면 갓 태어난 기린처럼 후들거리는 게 싫고,

턴 돌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움츠리는 것도 싫어.


선생님의 파드샤는 고양이인데 나는 오랑우탄인 것도 싫고,

분명 쉬워 보이는데 내가 하면 하나도 안 쉬운 게 싫어.


할 때마다 아픈 스트레칭도 싫고,

발레를 잘하려면 꼭 해야 한다는 근력 운동은 더 싫어.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치는 어색함도 싫고,

워머를 껴입어도 가려지지 않는 군살도 싫어.


겨우 오른쪽 성공했는데 왼쪽은 감도 안 오는 게 싫고,

"왼쪽은 오른쪽이랑 반대로 하면 돼요"라는 말도 싫어.


우아한 운동인 줄 알았는데 5분 만에 땀범벅인 게 싫고,

스몰점프 한 번에 헥거리는 저질 체력도 싫어.


다리를 신경 쓰면 팔이 제멋대로 인 게 싫고,

팔까지 신경 쓰면 갈비뼈는 다 벌어져 있는 것도 싫어.


다리는 안 올라가면서 눈치 없이 올라가는 승모근도 싫고,

그냥 펴기만 하면 되는데 끝내 안 펴지는 무릎도 싫어.


실력은 안 되면서 장비만 고수인 내가 싫고,

그러면서 신상 발레복은 자꾸 사는 내가 싫어.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도 늘지 않는 내 실력이 싫고,

포기하려고 할 때쯤 좀 늘었나? 희망을 품게 하는 것도 싫어.


분명 어제까지 잘 됐던 동작이 오늘은 안 되는 게 싫고,

늘 땐 천천히 늘면서 좀만 쉬면 금방 후퇴하는 것도 싫어.


발레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싫고,

어제도 힘들었고 오늘도 힘든데 내일도, 모레도 힘들 걸 알아서 싫어.


발레를 매일 하면서도 매일 지지리도 못하는 내가 싫고,

매일 못하면서도 매일 가서 즐거워하는 내가 더 싫어.


…하지만 제일 싫은 건, 발레를 싫어할 수가 없다는 거야.


조금도, 아주 조금도, 전혀.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