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은 절대 아니지만 말리지는 않을게

by 서린

둘째는 요즘 가장 좋아하는 색인 민트색에 꽂혀있다. 얼마 전엔 민트색 상의를 입고 나서더니, 민트색 바지는 어딨냐고 물었다. 아무리 민트색이 좋다지만, 청청패션도 아니고 위아래를 전부 민트색으로 맞춰 입는 건 좀 이상해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바지는 흰색이나 베이지가 어떠냐고 은근히 유도해 봤지만 아이는 끝내 옷장에서 민트색 바지를 찾아 입고는 민트 소녀가 되어 나타났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민트색 패딩까지 걸치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민트색 한 벌이 완성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기로 했다. 거울 앞에서 만족스럽게 웃는 얼굴 앞에서, 괜히 어른의 기준을 들이대고 싶지 않았다.


그래, 남들 눈에 이상해 보이든 말든, 네가 좋으면 된 거지. 물론 저게 엄마의 취향일 리 없다는 걸, 아마 다른 집 엄마들도 다 알아볼 거라는 믿음이 기저에 깔려있었다.




그러고 보니 첫째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여섯 살 무렵, 파란색에 집착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첫째의 파란색 사랑은 지금 둘째의 민트색 취향보다 훨씬 더 심해서, 가히 ‘집착’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옷은 물론이고 양말, 칫솔, 장난감까지 파란색이 아니면 안 됐다. 어린이집에서도 파란색 의자가 아니면 앉지 않겠다고 떼를 써서, 선생님이 자리를 바꿔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혼자만 파란색을 고집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엄마는 노랑, 아빠는 초록, 이런 식으로 가족 구성원마다 색깔을 지정해주기까지 했다. 당시 우리는 예민한 기질인 첫째가 안정감을 느끼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않을까 짐작했다.


그 집착은 거의 1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동안 파란색 물건을 찾아 사느라 나는 꽤 진땀을 흘렸다. 그래도 그나마 남자아이들이 비교적 무난하게 좋아하는 파란색이라 다행이었다.


그 시절 첫째의 색깔 집착이 내게도 좋았던 점이 딱 하나 있었는데, 어딘가에서 친척들에게 용돈을 받으면 나에겐 노랑 돈을, 아빠에겐 초록 돈을 나눠주고 자기는 파랑 돈을 소중히 챙겨갔던 것이다. 계산이 빠른 지금의 5학년에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시절의 재밌는 추억으로 남은 에피소드다.




시간은 그렇게 많은 것들을 데려간다. 그렇게 파란색에 집착하던 첫째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내가 사주는 대로 입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고학년이 되어 무난한 검정색이나 회색을 주로 입는다. 예전에는 그렇게 좋아하던 자동차 그림이나 현란한 무늬가 그려진 옷을 이제는 유치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언젠가는 둘째의 민트색 사랑도 그렇게 사라질 것임을 안다. 저절로 사라질 것을 굳이 내 손으로 없앨 필요도 없다. 아이들은 각자의 색으로 자라고 나는 그 색이 바뀌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볼 뿐이다. 아이가 자기 자신의 색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래, 네가 좋으면 됐어.' 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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