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잠들기 전 첫째가 둘째에게 정말 별것 아닌 일로 심하게 짜증을 냈다. 바로 사과하면 금방 끝났을 일을 고집부리며 버티다 결국 내게 혼나고 한참을 훌쩍이다 잠들었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첫째는 가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감정을 급격히 터뜨릴 때가 있다.
이제 곧 6학년이니 사춘기인가? 싶다가도 워낙 늦된 아이이기도 하고 다른 행동들로 미루어 보면 아직 본격적인 사춘기는 찾아오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첫째는 어릴 때부터 예민한 편이었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감도가 유난히 높은 아이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늘 너무 많은 자극에 피곤해하고 마음에 여유가 부족해 짜증을 내거나 뜬금없이 감정이 폭발할 때가 종종 있었다.
예전엔 쟨 누굴 닮아 저렇게 예민한 건지 궁금했다. 그동안 나는 늘 첫째는 예민한 편이고, 나는 비교적 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나는 감정 기복도 적고, 타인의 말이나 반응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편이니까.
그런데 불현듯 혹시 나도 예민한 사람인 걸까? 그동안 내가 나 자신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큰 관심이 없는 편이라 스스로를 둔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첫째도 마찬가지다. 아이 역시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보다는, 오로지 자기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변화에만 크게 반응한다.
나나 첫째의 예민함은 다른 사람을 향해 열려 있기보다는, 나 자신과 내 세계를 향해 바짝 조여 있는 형태에 가깝다. 바깥에는 무심해 보이지만, 안쪽에서는 작은 변화에도 쉽게 흔들리는 그런 종류의 예민함이다.
스스로의 기질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하니 갑자기 마음속에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정말로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언제나 그렇게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살아왔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가리는 음식이 꽤나 많다. 카페인에 예민해 커피를 거의 못 마시고 해산물의 비린 맛도 싫어한다. 고수나 미나리, 파프리카, 겨자처럼 향이 강한 채소도 못 먹는다.
아직까지도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드는 남편과 달리 나는 잠귀가 밝고, 잠드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작은 소음이나 빛에도 쉽게 잠에서 깬다. 한 번 깨버리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내가 정말 무던한 성격이라면 잠 못 들던 무수한 밤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나는 내가 '둔하지만 약간 날카로운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앞뒤가 안 맞는 조합인 것 같다. 둔한데 날카로울 리가...? 무던한 나인데 왜 이렇게 사는 게 늘 피곤한지 항상 의문이었는데, 인생의 퍼즐 조각이 끼워 맞춰지는 느낌이 늘었다.
평생 내가 무던한 성격이라고 믿고 살았는데 첫째의 기질을 이해하려 하다가 자꾸 나 자신의 기질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아직 어려서 예민함이 밖으로 드러나는 첫째와 달리, 나는 그 예민함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오래도록 눌러왔을 뿐이었다.
타고난 기질과 원가족의 문제로 나는 오랜 시간 짜증과 불만, 화를 안고 살았다. 마음속에는 풀리지 않은 매듭이 많았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만족은 나를 앞으로 밀어붙이는 연료이기도 했다. 만족하지 못했기에 스스로를 더 몰아붙혔고, 멈추지 않았기에 꽤 그럴듯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쉽게 틈을 주지 않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편했다. 늘 가드를 올린 채 경계 태세로 살아왔다. 그런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감정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쿨한 성격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언제나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살았던 것 같다. 이 정도의 긴장과 두통은 다들 그냥 안고 사는 것이라 믿으면서.
그래도 나는 사회화에 성공한 덕분에 잔정은 없어도 딱히 별나지도 않은 적당히 괜찮은 성격으로 포장한 채, 친한 친구에게조차 그런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성격은 결국 함께 사는 가족 앞에서는 숨길 수 없는 법이다.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안정적으로 자란 남편은 (물론 다른 여러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꼬여있는 게 없었다. 내 뾰족한 말에도 쉽게 상처받지 않았고, 다시 뾰족한 말을 내게 되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여전히 우리는 종종 다투지만 이 점만큼은 내가 남편을 인정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남편이 돌려주지 않기에 더 쉽게 짜증을 내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꾸 짜증을 내는 스스로의 모습이 싫으면서도, 마치 참을 수 없는 재채기처럼 불쑥 짜증을 내곤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터뜨리고 나서야 후회한다. 마음 깊은 곳에 오래도록 꼬여 있던 나를 풀어내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서른 중반이 지나 마음공부를 시작하며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깨달음이 한순간에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생각을 바꾸는 연습을 몇 년째 하고 있지만, 긴장도가 높은 기질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도 지금의 나는 과거보다 나 자신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조금 더 너그러워졌다.
그 중심에는 ‘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연습’이 있었다. 처음에는 감사할 일을 찾는다는 것이, 불만과 결핍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낯선 훈련이었지만 의식적으로 시선을 바꾸기 시작하자, 삶의 결이 조금씩 달라졌다. 아이들이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 오늘 하루 큰 탈 없이 지나갔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
지금도 마음이 복잡해질 때면 유튜브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틀어둔다. 스님의 단순하고 명료한 즉문즉설을 듣다 보면 문제를 크게 만들고, 감정을 복잡하게 꼬아온 건 대부분 내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물론 여전히 마음이 엉키는 날도 많다. 여전히 과거의 습관처럼 불만이 먼저 튀어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하고 있는 운동도 꽤 도움이 된 것 같다. 터져나갈 것 같이 머릿속을 꽉 채우던 생각들이 몸을 쓰는 시간 동안만큼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숨이 가빠지고, 근육이 뻐근해지고, 땀이 흐르는 동안에는 온전히 몸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잠이었다. 예전에는 침대에 누워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사소한 소리에도 잠에서 깼고, 한 번 깨버리면 선 잠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잠을 설친 날은 또 이유 없이 짜증을 부리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런데 운동을 하며 깊은 잠을 자는 날이 늘어났다.
잠을 잘 자면 날카로운 마음이 좀 무뎌진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생각을 바꾸고 태도를 고치는 게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마음의 건강에는 몸도 함께 필요하다는 걸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첫째도 언젠가는 자신의 예민한 마음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예민함이 틀린 건 아니지만, 다루기 까다로운 기질이라는 건 사실이니까. 나는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래서 아이가 겪게 될 그 시간이 분명 지난한 여정이 되리라는 것도 짐작이 된다. 마음이 복잡한 이유를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들,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들. 그 모든 시간을 아이 역시 지나가야 할 것이다. 다만 내가 먼저 시행착오를 겪으며 걸어본 이 길이, 아이에게 아주 작은 참고 자료 정도는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