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수십 년간 이어져온 오케스트라 활동으로 유명하다. 첫째는 저학년 때 피아노를 배우긴 했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해 2년을 못 채우고 중도 포기해서 오케스트라는 언감생심이었는데, 2학년인 둘째는 아직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비교적 즐겁게 배우고 있어서 언젠가 오케스트라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혼자서만 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바이올린까지 가르칠 계획은 없었다. 그저 기본적인 음악적 소양을 위해 피아노만 배우게 하려 했는데, 1년 전쯤 아이가 스스로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바이올린이었지만, 아이가 처음부터 분명히 말했다.
“바이올린은 배우고 싶지만, 오케스트라는 하고 싶지 않아.”
오케스트라가 유명한 학교라 악기를 배우면 오케스트라도 당연히 해야 할까 봐 부담인 눈치였다.
아이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서 나는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았다. 아이가 싫다는데 굳이 밀어붙일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전공을 시킬 것도 아닌데 그저 즐겁게 악기를 배우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최근 학교 알림장으로 오케스트라 신입 단원 오디션 공고가 뜬 걸 보고, 큰 기대 없이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오케스트라 해볼 생각 있어?”
그런데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엄마가 하라고 하면 하지.”
적극적인 의지도, 단호한 거절도 아닌 반쯤 열린 긍정적인 대답이었다. 우리는 ‘그럼 큰 기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지원이나 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바이올린 선생님께는 오디션 영상 제출까지 남은 열흘 동안 지정곡 하나와 자유곡 하나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아이는 그동안 오케스트라를 염두에 두지 않았던 터라, 오케스트라 예비반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온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오디션 준비가 좀 늦은 터였다.
나는 바이올린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고 그동안은 학원에 맡겨두고 가끔 숙제만 챙기는 정도였기 때문에 아이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이 정도로 오디션을 봐도 되는 건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대를 내려놓고 마음을 비웠는데, 막상 오디션 준비가 시작되자 아이의 태도가 사뭇 진지해졌다. 학원에서 친구들도 함께 오디션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변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아이도 의욕이 생긴 것이다. 나는 솔직히 그 모습을 보며 반가움보다 걱정이 먼저 들었다. 괜히 열심히 하다 떨어지면, 아이가 얼마나 속상해할지 지레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떨어져도 괜찮아. 그렇게까지 열심히 안 해도 돼.”
아이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어쩌면 나 자신의 불안을 숨기기 위한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는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이왕 준비하는 거니까 붙고 싶어.”
그 이후 아이는 연습에 매진했고, 아이의 연습량이 늘어날수록 나는 마음속으로 더 불안해졌다. 손가락이 아프다고 하면 좀 쉬면서 쉬엄쉬엄 하라고 수시로 말리기도 했다. 그럴수록 아이는 스스로 더 욕심을 내며 연습을 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내가 “너 이번 오디션에 꼭 붙어야 해”, “더 연습해야지”라고 아이를 다그쳤다면 오히려 아이의 자발적인 의지는 꺾이지 않았을까. 아이든 어른이든 동기라는 건 누군가의 기대와 압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서 나온다는 걸 실감했다.
주말에도 연습을 이어가던 어느 날, 아이는 결국 울먹이기 시작했다.
“왜 연습을 계속하는데 계속 틀리는 거야?”
초조함과 속상함이 섞인 목소리였다. 마음이 조급해진 상태에서 하는 연습이 잘 될 리 없었다. 몇 번 더 틀리더니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걱정하던 바였다.
원래 인생이 그렇다. 노력한 만큼 바로 결과가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부도, 운동도, 악기도 마찬가지다. 노력과 결과 사이에는 늘 시간이 필요하다. 실력은 계단처럼 오르는데, 우리는 종종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느낀다. 그리고 그 가장 답답한 지점에서 좌절하고 포기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고비를 넘기면 실력이 눈에 띄게 성장한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열심히 하는데 잘 안 돼서 속상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울고 속상해한다고 실력이 느는 건 아니라고. 안 될수록 더 해보다 보면 언젠가는 분명히 잘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고. 아이는 조금 더 훌쩍이다가, 결국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연습을 마무리했다.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짠했다.
짧은 준비 기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아이의 실력은 확연히 달라졌다. 물론 즐겁게, 부담 없이 배우는 시간도 좋지만 이렇게 외부적인 계기로라도 스스로를 끝까지 밀어붙여보는 경험은 한 단계 성장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이가 9살의 어린 나이에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잘 안 되는 순간에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끝까지 해내는 과정을 지켜봤다. 당연히 내심 합격하길 바랐지만, 선발 인원이 워낙 적었고 결과는 알 수 없는 일이기에 혹시 모를 상처를 줄이기 위해 계속 기대치를 낮추는 말을 해두었다. 떨어지더라도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두가 열심히 했지만 뽑는 인원이 적었을 뿐이라고. 되면 좋고, 안 돼도 괜찮다고.
오히려 아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도 안 되면 속상해.”
맞다. 아무리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도, 안 되는 건 속상한 일이다. 아이는 그런 면에서 속상함을 애써 숨기는 어른보다 훨씬 솔직하다. 그걸 막아주고 싶어 애쓰는 게 부모지만, 사실 그 속상함까지도 결국 아이가 스스로 겪어야 할 감정인지도 모른다.
오디션 영상을 제출하기 전날 밤에는, 아이가 열심히 준비해 찍은 영상을 내가 깜빡하고 제출하지 않아 지원조차 못하고 떨어지는 악몽까지 꾸었다. 비록 꿈이었지만 대역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사히 영상을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 동안 마음이 계속 조마조마했다. 내가 그동안 깔아 둔 ‘밑밥’ 덕분인지, 아이는 “결과 나왔어?”가 아니라 “엄마, 나 떨어졌지?”라고 물었다.
그 말에 마음이 또 짠해졌다. 아이의 실망을 최소화하려던 말들이, 혹시 아이 스스로 기대하는 마음까지 접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열심히 하면 꼭 붙을 거라고 믿어주고 용기를 북돋아줬어야 했을까. 뭐가 정답이었을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육아에 정답은 없는 걸 수도 있겠지만...
영상 제출 일주일 뒤 아침, 결과가 발표되었다.
다행히, 합격이었다.
물론 아이가 속상해하지 않아도 돼서 기쁘기도 했지만, 그 과정을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끝까지 노력했기 때문에 더 자랑스러웠다. ‘힘들어도 끝까지 해본 경험’은 합격의 기쁨보다 더 오래, 아이의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