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활활 타오르던 나의 발레 열정이 최근 들어 슬그머니 가라앉았다.
발단은 이러했다.
최근 구정 연휴에 친정에 아이들과 내려갔다. 어차피 봄방학이기도 해서 아이들은 외갓집에 며칠 더 머물다 오기로 하고 우리 부부만 먼저 서울로 올라왔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장기화된 독박육아에 결국 병이 나버리신 시어머님을 대신해 아이들을 친정에 일주일 맡긴 이후로 처음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주어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일간의 자유. 물론 출근은 해야 했지만, 어쨌든 자유였다. 아이들을 두고 올라오는 KTX 안에서부터 마음이 들떴다. 몇 년 만에 주어진 황금 같은 '자유부인'의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없다고 해서 갑자기 거창한 계획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결국 더 하고 싶은 건 발레 밖에 생각나지 않는 내가 스스로도 좀 황당했지만, 어찌 되었든 그동안 못 들었던 클래스도 듣고 원 없이 마음껏 발레를 해보기로 했다.
나는 주로 회사 근처에서 점심시간에 발레 수업을 듣는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은 워킹맘이다 보니 저녁 시간만큼은 아이들과 보내고 싶어서 그동안 평일 저녁 수업은 웬만하면 듣질 않았는데, 아이들이 없는 동안은 점심 수업도 듣고 저녁 수업까지 들었다.
토요일엔 아이들 학원 스케줄을 챙기느라 발레를 간 적이 없는데 토요일도 점심부터 오후까지 수업 2개를 연강 했다. 일요일엔 오전 발레 후 곧장 마사지까지 받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아이들이 없는 동안 작정한 듯이 전공생 마냥 주구장창 발레만 하는 나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그렇게 발레 열정을 불태우는 동안 내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너무 쉬지 않고 달리느라 무리가 됐는지 몸이 계속 피곤했다. 그래서 그런지 수업을 들을 때도 오히려 몸이 더 잡히지 않아서 되던 것도 안 되는, 평소보다 더 엉망인 상황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이렇게까지 애쓰는데 오히려 더 어설퍼지는 나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노력의 양과 결과의 질이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용히 마음을 긁었다.
발레에 한해서 나는 원래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편이라 잘되든 안되든 큰 스트레스 없이 그냥저냥 발레를 즐기는 편이었는데 이번엔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따라주지 않는 몸 사이의 괴리는 가끔 이렇게 마음을 가라앉힌다. 취미발레인들 사이에서 쓰는 말인 '발태기(발레+권태기)'까지는 아니었지만, 마음속 불꽃이 강불에서 약불 정도로 줄어든 느낌이었다.
이 와중에 발레로 도배된 나의 알고리즘은 나보다 더 늦게 시작했는데 훨씬 더 잘하는 것 같은 취발러들의 영상으로 나를 이끌어 마음을 더 착잡하게 만들었다. 나는 왜 열심히 하는데 제자리일까. 나의 열심이 충분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열심히 하는 나'에 심취해 기대치만 높여놓고 필요한 휴식은 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인 욕심이 원인이었을까.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렇게 가라앉은 마음을 안고 나는 또 발레를 간다. 갈까 말까 고민하지 않고 그냥 간다. 배고프면 밥 먹듯이, 밥 먹고 나면 양치하듯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간다. 설레지 않아도, 기대를 내려놓고 그냥 간다. 옛날엔 '10년쯤 하면 내 발레도 좀 볼만해질까?' 생각했는데 요 며칠은 '아무래도 볼만해지려면 30년은 해야겠네' 생각하면서 간다.
안타깝게도 나의 재능은 발레에 있지 않아 언제나 짝사랑 모드이지만, 묵묵히 꾸준히 노력하는 것만큼은 나의 재능이다. 젊을 땐 그게 재능인지 몰랐는데 마흔이 넘어 인생을 길게 보니 그것만한 재능도 없는 것 같다.
그 유명한 『그릿(Grit)』에서 앤절라 더크워스가 "성공은 재능이 아니라 열정과 끈기의 결합"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엔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남아 조용한 승자가 된다.
무릎 통증을 극복하기 위해 69세에 시작한 근력 운동으로 시니어 보디빌딩 우승까지 한 78세 몸짱 할머니. 60세에 퇴직한 후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10년씩 공부해 3개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언어 봉사활동을 하는 90세 할아버지.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대부분 늦었다고 생각하는 시기에도 묵묵히 오랜 시간 자신만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감동이 있다.
그래서 한때 유행어였던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에서 더 나아가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는 말에 더 공감이 간다. 발레를 향한 내 마음은 수시로 꺾이지만 그래도 나는 꺾인 마음을 안고 다시 바 앞에 선다. 발레 재능은 타고나지 못했어도 노력하는 재능은 타고난 덕분에 꾸준히 하다 보면 그래도 어느 순간 예전보다 조금씩 나아진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우리가 흔히 천재라고 부르는 이들마저도 단순히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을 노력으로 꽃 피운 사람들이다. 사람마다 제각각 타고난 재능의 크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재능의 종류나 크기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크든 작든 그 재능을 열심히 다듬어 꽃 피우는 건 나의 영역이다.
누군가의 꽃은 크고 화려할 수도 있고, 누군가의 꽃은 작고 앙증맞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어떤 꽃의 씨앗을 골랐느냐가 아니라, 꽃을 피우는 과정 그 자체이지 않을까.
나의 불꽃은 강불에서 약불로 줄어들었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계속하다 보면 지금 가라앉은 마음도 다시 부풀어 오르는 날이 올 거라 믿으며 나는 오늘도 그냥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