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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Oct 20. 2023

나의 '좋아요' 리스트

평소 약속이 없는 날이면 부랴부랴 약속을 잡곤 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 도무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항상 무언가로 채워 넣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혼자만의 시간이 귀해졌다. 어떻게든 그 시간을 찾기 위해 애썼다. 어렵게 확보한 시간은 글쓰기, 책 읽기, 멍 때리기 등 내 것으로 가득 채우거나 그냥 비워 뒀다. 그때부터 오히려 “좋다”라고 느껴지는 일상 순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부쩍 많았다. 사실 특별한 이벤트도 대단한 일도 아니다. 그래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기억하고 싶은 소소한 순간들이 참 많았다.


남편과 함께하는 식사 준비가 좋다. 예전에는 음식 준비는 물론 물, 앞 접시 세팅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주말, 많게는 하루 두 끼 집에서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서 남편이 주방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내가 은근히 귀찮아하는 게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어느 날 밥을 안쳐 놓기 시작하더니 도와줄 것이 없는지 직접 살핀다. 내가 고기를 굽기 위해 양념을 하면 프라이팬을 달구고 쌈장을 퍼 둔 다거나 준비된 김밥 재료를 보고 김밥을 말기 시작한다. “요즘 이렇게 같이 식사 준비하는 게 나쁘지 않은데?” 낯간지러워 차마 “좋네. 좋아”라고 직접적으로 표현은 못 하고 은근히 속마음을 내비쳤다. 나의 뜻밖의 반응과 표현에 남편은 ‘이게 좋은가?’ 하면서도 싫지 않아 보였다.


사랑을 확인받는 게 좋다. “엄마, 나는 엄마가 너무너무너무 좋아.” 난데없이 딸이 애교를 부린다. “왜 좋은데?” 이유가 궁금해서 묻는다. “아. 어. 음. 엄마, 살이 부드러워서 좋아. 헤헤”. “어? 또 왜 좋은데?” 아쉽지만 다른 이유는 없다. 살이 부드러워서 천만다행이다. 내가 “잘 자. I love you.”라고 말하면 어느새 딸이 “so much”라고 받아친다. 딸의 애정표현은 횟수의 제한도 시간의 제약도 없다. 수시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며 비비적 거린다. 브레이크란 없는 딸에게 나도 같이 코를 비비며 부둥켜안고 뒹군다. 이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에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유치하게 사랑을 확인하려는 내 모습도 썩 나쁘지 않다.


일정 없이 집에 있는 시간이 좋다. 친구와의 만남, 가족 외출, 각종 경조사 등 늘 약속이 빼곡한 주말도 나름대로 즐겁고 의미는 있다. 다만 약속이 몰리거나 각종 행사가 많을 경우, 정신없이 보내고 나면 지친다. 에너지 충전이 어렵다. 약속에 치이는 기분마저 든다. 끌려 다니는 느낌이랄까? 어쩌다 한 번씩 아무 일정이 없는 주말이면 쾌재를 부른다. 평소보다 늦잠을 자고 남편이 아이와 놀 때 책도 읽고 인터넷 쇼핑도 한다. 밥도 적당히 먹고 싶을 때 먹는다. 쪽 잠까지 잔다. 이보다 더 주도적일 수는 없다. 약속이 없는 주말이면 콧노래가 절로 나오곤 한다. 집에서는 잠만 자고 늘 밖으로 나돌기 바빴던 내가 집에서 나만의 시간을 찾아가는 것 같아 좋다.


음악을 듣는 시간이 좋다. 세상과 단절되어 음악에 빠지는 시간 5분. 곡의 주인공이 되어 다른 세상에 있는 것만 같은 찰나가 좋다. 출근길에는 가사보다는 멜로디에 중점을 두고 템포가 빠른 노래를 선곡한다. f(x)의 ‘Airplane’, ‘Hot Summer’와 같이 몽환적이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EDM 장르가 섞인 곡들이다. 지하철이 역으로 들어올 때 부는 먼지 가득한 바람조차 시원하게 느껴진다. 비행기 탄 사람 마냥 어깨가 들썩인다. 개와 산책할 때는 평소 즐겨 듣는 노래를 랜덤하게 돌린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싸이 ‘비 오니까’, 이소라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김진표 ‘아저씨’. 몽땅 외운 가사 덕분에 더욱 몰입 된다. 최근에 나온 효리언니야의 신곡 ‘후디에 반바지’도 무한 반복 중이다. 평소내가 즐겨 입는 스타일인데다가 시원하고 잔잔한 바람이부는 요즘 날씨에 찰떡이다. 그날의 기온, 습도, 바람 귀에서 들리는 음악이 완전히 하나가 된 느낌일 때 더없이 좋다. 


어느 주말 메뉴가 변변치 않아도 남편과 함께 식사 준비를 하고 키즈카페를 가지 않아도 아이와 교감하며 간지럼 태우며 논다. 불금에 약속이 없어도 개랑 산책하며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듣는다. “뭐 해야 되지? 어디 가야 되지?” 어쩔 줄 몰라 하며 의미 없이 비어 있다고만 생각했던 시간들이 어느새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좋아하는 순간이 켜켜이 쌓여서 일상에 가득하다. 아무 문제가 없다.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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