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도 Mar 18. 2022

생명이잖아

귤의 눈물

 집에 올라가기 위해 둘째 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우리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슥 검은 봉지를 든 할아버지가 우리 옆으로 오셨다. 귤이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미소 지으며 듣던 할아버지는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귤이에게 봉지를 펼쳐 보이시며

이거 볼래? 오늘 낳은 건데 청계 닭 알이야~

너 한번 키워 봐라.

 귤이 두 손에 3알을 건네주시고는 부랴부랴 내리셨다.

귤이는 당황스러워하며

엄마 어쩌지? 다시 드려야 하나. 어떻게 키우지?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반면 나는

오~ 그럼 유정란이겠다.

라고 말하며  프라이를 상상했다. 청계 알이니 왠지 더 맛있을 것 같았다.


집에 들어온 귤이는 청계 알을 손으로 살포시 잡고 이걸 어쩌지 하며 울상을 지었다. 느낌이 심상찮다.

귤아. 이거 못 키워. 알 부화하려면 부화 기계도 있어야 하고...

하지만 생명인걸. 이건 씨가 있는 알이라잖아.

수많은 알을 맛있게 먹던 넌 어디 가고 갑자기 생명 얘기를 할까. 슬슬 부담이 밀려왔다. 할아버지의 키워봐라 란 말씀이 뇌에 단단히 박힌 모양이다.

그렇게 귤이는 잘 때까지 청계 알을 보며 훌쩍거렸다. 학원을 다녀온 첫째 밤이도 귤이 와 합류해 저축한 돈으로 기계를 사자고 외쳐댔다. 난 냉장고에 넣지 못하고 플라스틱 통에 알들담아 부엌 한편에 놓았다.

 오늘 아침, 아무 생각 없이 계란을 삶았다.

(실은, 아이들이 학교 가면 청계 알은 프라이 해먹을 생각이었다.) 식탁에 놓인 삶은 달걀을 본 두 아이는 사색이 되었다. 그들의 퍼러둥둥해진 얼굴색을 보며 이거 진심이구나란 생각에 알을 품는 나의 미래가 스쳤다.

아니야 아니야. 냉장고에 있던 거야.

휴~

두 아이는 안도의 쉼을 쉬고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말했다.


폭신한 것 깔아주고 스탠드 불을 가까이 쬐어주면 어떨까?

30도 정도 되면 된다는데...

귤이 말한다.

아빠, 진짜 똑똑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어깨가 으슥해진 남편은 나에게

그 있잖아요. 이케아에서 산 미니 스탠드 그걸로 해보면 어때요?

라고 말한다. 프라이로 먹으려던 나였지만  빠질 수 없단 생각에

아~ 난 전기담요 생각하긴 했는데...

라고 말했다. 그래.. 이렇게 될 일이었다.

결국 우리는 스탠드를 이용해 품어보기로 했다. 깨어날지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생명이 우리 집에서 숨 쉬게  되려나?

휴. 귤이로 인해 키우게 된 물고기도 결국 내가 키우는 셈이 되었는데...  그렇지만 한번 해보지 뭐~

너무 밝을 것 같아 검은 천을 덮어주었다. 깨어날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티스트 웨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